커크 더글러스, 로렌스 올리비에, 진 시몬스, 피터 유스티노프 출연
11일 밤 9시 40분 EBS1

사진='스파르타쿠스' 포스터
사진='스파르타쿠스' 포스터

[문화뉴스 우주은 기자] 11일 EBS '세계의 명화'에서는 '스파르타쿠스' 2부를 방영한다.

1960년 미국에서 제작된 '스파르타쿠스'는 스탠리 큐브릭이 연출을 맡았으며 커크 더글러스, 로렌스 올리비에, 진 시몬스, 피터 유스티노프 등이 출연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1953년 '공포와 욕망'로 데뷔했으며 이후 '킬러스 키스'(1955)와 '킬링'(1956) 등의 스릴러를 통해 주목받았다. 

그가 탄탄한 입지에 오른 것은 커크 더글라스 주연의 전쟁영화 '영광의 길'(1957)을 완성한 후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군을 배경으로 군내부의 심리적 갈등을 통해 반전을 주장한 이 작품은 아카데미 여러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며 찬사를 받았다.

이어 큐브릭은 다시 커크 더글라스와 함께 로마 시대 노예의 반란을 그린 서사극 '스파르타쿠스'(1960)로 흥행에 대성공을 거두게 되지만, 그 자신은 스튜디오의 간섭이 짙었던 작품이라 하여 이를 외면한다. 이후 중년남자의 애정행각을 그린 그의 최초 영국영화 '로리타'(1961)를 만들고 연이어 영화를 발표하면서 탁월한 테크니션으로 인정받게 된다.

2부 줄거리

원로원 내에서 크라수스와 팽팽히 대치 중인 그라쿠스는 크라수스의 세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크라수스의 심복인 글라브루스의 부대를 노예군 토벌대로 보내고 대신 자신의 제자인 시저에게 로마 수비대를 맡겼지만 글라브루스의 군대는 전멸하고 크라수스는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다. 그러나 원로원은 진압에 성공하면 제1집정관으로서 독재권을 준다는 조건으로 크라수스에게 진압을 의뢰한다. 한편, 크라수스의 노예였던 시인 안토나이누스는 스파르타쿠스의 부대에 합류, 참모를 맡는다. 스파르타쿠스의 계획은 해적의 배를 입수해 노예들을 모두 고향으로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라쿠스의 주선으로 노예군에게 배를 제공하기로 한 해적들이 크라수스에게 매수되고, 고립된 노예군은 크라수스군과 정면으로 대치, 궤멸당한다. 스파르타쿠스를 찾지 못한 크라수스는 바리니아와 그녀의 아기를 데리고 온다. 6,000명에 이르는 포로가 십자가에 못박히고, 마지막 안토나이누스와 함께 있는 자가 스파르타쿠스임을 직감한 크라수스는 그 둘에게 사투를 벌이게 한다.

주제

'스파르타쿠스'는 로마 제국을 뒤흔든 노예 반란 사건을 다룬 제작비 1200만 달러의 스펙타클 고전 명작으로 초호화 배역진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자유를 향한 인간의 갈망과 뜨거운 사랑이 서사 영웅담으로 다채롭게 펼쳐진다. 하지만 이러한 전통적인 영웅담 안에 패배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1950년대 할리우드는 그 스스로의 부피와 무게로 사멸 직전에 이른 공룡이 돼갔다. 규모의 경제학만이 이곳을 지배하는 유일한 지침이었으며, 공룡이 제국의 비유가 된다면 제국은 다시 할리우드의 비유가 됐다. 할리우드가 사로잡힌 것은 크기의 강박관념이었다. 그때 그곳에서 모두가 ‘시대극’을 찍기 위해 한결 같이 모여들었던 것은 정말 우연이 아니다. 할리우드 황금시대의 절정기에, 뉴 프런티어 정신의 낙관주의가 시작하는 그곳에 도착한 스파르타쿠스는 패배를 향해 달려간다. 그는 비록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결코 멈출 수 없다. 큐브릭은 한 번도 낙관적이었던 적이 없다. '스파르타쿠스'는 역설적으로 큐브릭이 진보적 자유주의자의 낙관주의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증명하는 영화다.

감상 포인트

스탠리 큐브릭은 개인적으로 '스파르타쿠스'를 자기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만큼 스튜디오의 호된 간섭 하에서 제작됐고 그 자신의 생각을 마음대로 펼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태가 이렇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제작사인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제작 통제와 장면 삭제가 결정적이었다. 매카시즘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스파르타쿠스'의 시나리오 작가 달턴 트럼보에 따르면 당시 유니버설 사장 에드워드 뮬은 이 영화가 스펙터클이 아니라 제작비 3-400만 달러의 역사물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원로원 안의 갈등을 현실 정치에 빗대 표현하는데 관심이 많았고, 결과적으로 '스파르타쿠스'에 1,200만 달러나 쏟아 부을 줄 몰랐던 것이다. 주연 배우이자 기획자였던 커크 더글라스의 생각은 또 달랐다. 그는 로맨스와 노예 반란이 절반씩 들어간 영웅담을 원했다. 이런 환경에서 스탠리 큐브릭은 로마 제국을 무너뜨릴 수도 있던 노예 반란군의 역사를 제대로 그릴 수 없었고, 로마군과의 전투 장면이 대폭 줄어들었다. 영화 연구자 던컨 L. 쿠퍼는 '시네아스트'에서 이 영화의 감독판은 스파르타쿠스의 노예 군대가 승리하는 전쟁 장면들을 새로 찍어 넣어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나마 202분 분량의 '스파르타쿠스' 마지막 시사본은 1975년 유니버설에 의해 폐품 처리됐고 198분 버전이 남아있는 가장 긴 편집본이 됐다. 1960년 당시 이 영화의 상영시간은 184분, 7년 뒤 영화는 161분으로 더 줄었다. 그리고 1991년 로버트 A 해리스가 컬러와 사운드를 보완한 198분 편집본을 부활시켰다. 해리스의 편집본에는 로렌스 올리비에가 토니 커티스의 시중을 받으며 목욕하는 유명한 장면이 되살아났다. 이 장면은 제작 당시 동성애를 암시한다는 이유로 삭제됐던 것. 올리비에가 “난 굴(여자)과 달팽이(남자) 양쪽 다 즐기지”라고 말하는 이 장면은 그의 사후에 복구된 탓에 앤서니 홉킨스가 목소리 연기를 대신했다. 우여곡절이 많지만 '스파르타쿠스'는 후대에 새로운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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