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철도의 밤', '비에도 지지 않고' 등 동화와 시 써낸 문인
주목 못 받고 일찍 세상을 떠났으나 일본의 국민 시인으로

사진= Unsplash, Galen Crout 제공
사진= Unsplash, Galen Crout 제공

 

[문화뉴스 이유민 기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등 일본의 여러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문인,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 두 편을 소개한다.

미야자와 겐지는 일본의 문인이자 교사였다. 1933년에 다소 젊은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작품은 사후에 주목받았다. 특히 유명한 것은 만화 '은하철도 999'의 원작 격인 동화 '은하철도의 밤'인데, 이 작품은 희생이 등장하는 많은 일본의 창작물에 영향을 미쳤다. 지금은 일본의 국민 작가라고 불릴 정도로 명성이 높다.

그의 문체는 정적이면서도 꾸밈이 과하지 않아 읽을 때 부담스럽지 않다. 특히 고향 이와테 현의 배경을 향토적으로 아름답게 그려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또 동시에 우주나 과학에 관심을 보인 그의 풍부한 어휘력도 느낄 수 있다. 다만, 읽을 때 한국인으로서 일제강점기 당시의 아름다운 일본 전원을 묘사한다는 이유로 어려운 감정을 느낄 수도 있겠다. 문학을 읽을 때면 작가의 사회적인 배경과 생애에 신경쓰게 된다. 성추문을 일으킨 작가의 작품을 읽지 않거나, 표절 시비가 붙은 작가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읽기가 의무가 아닌 사회에서 이런 감정을 억지로 눌러가면서 텍스트를 읽을 필요는 없다.

그의 시 일부에 드러난 구절이 많은 사람에게 울림을 전달할 수 있을 듯해 소개한다.

가뭄 든 때에는 눈물 흘리고

추위 든 여름에는 버둥버둥 걸으며

모두에게 바보라 불리고

칭찬도 받지 않고

고통도 주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네

- '비에도 지지 않고' 中

'비에도 지지 않고'의 결심에 가까운 어조를 읽으면 맨 처음에는 '그가 너무 결연한 것은 아닌가' 싶을 수도 있다. 겐지가 생전 출판한 시집에 실린 이 시는, 처음에 실린 서문을 읽으면 훨씬 와닿게 된다. 그는 자신의 시가 '그대로 펼쳐놓은 심상 스케치'라고 말했다. 즉 겐지의 마음과 삶을 담아 그대로 표현한 작품이다.

겐지는 유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가업을 물려받지 않고 가난한 삶을 선택했다. 그러다 여동생을 병으로 잃고 괴로워했다. 제국주의가 짙은 일본의 현실을 향한 슬픔도 느꼈다. 또한, 불교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농업학교 교사 생활도 했으며 동시에 농민예술론도 써냈다. 꾸준히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복잡다단하고 곤궁한 상황 속에서도 그가 희망적인 말투를 쓸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 지점이다.

특히, '비에도 지지 않고'는 그가 병상에서 쓴 시다. 시를 읽으면 신비하게도 겐지의 병세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사람이 큰 마음의 변화를 통해 길게 이어질 소망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소개되지 않은 시 초반부에 '튼튼한 몸'을 바라는 부분이 있지만 건강은 잘 살고 싶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바람이지 않은가. 오히려 강조되는 지점은 다른 사람을 돕고 평화롭게 살아가고 싶어하는 화자의 일상적 바람이다. 그는 급성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꾸준히 글을 쓰고 삶을 사랑했다.

그가 중요한 사람의 삶을 오래 사랑하는 방식은 여동생을 기리는 시뿐만 아니라 동화에서도 보인다. '은하철도의 밤'은 책 말고 1985년에 만든 애니메이션으로도 알려졌다.

'은하철도의 밤'에서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가난한 '조반니'는 또래집단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한다. 조반니에게 소중한 사람은 하나뿐인 친구 '캄파넬라'. 어느 날 조반니는 하늘을 누비는 은하철도를 만나게 된다. 열차에는 캄파넬라가 타고 있었고, 그 길로 두 사람은 함께 우주로 떠난다. 두 사람은 새잡이 아저씨, 천국으로 가는 남매 등 많은 인물을 만나고 많은 것을 배운다. 그러나 캄파넬라와 갑작스레 헤어져 열차에서 내린 (꿈에서 깬) 조반니에게는 이상한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랑하는 친구 캄파넬라가 자신을 따돌린 인물을 구하려다 물에 빠져 세상을 떠나게 된다. 조반니는 캄파넬라가 은하 바깥으로 가버린 것 같다고 느낀다.

슬프게도 이 작품은 미완이다. 그러나 밝혀진 본문까지만 읽어도 겐지가 성장하는 조반니를 얼마나 안타깝고 소중히 바라보는지 알 수 있다. 큰 상실을 겪은 조반니의 삶이 본문의 한 지점과 이어져 희망적인 메시지를 가느다랗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행복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떤 괴로운 일이라 해도 그것이 옳은 길로 나아가는 중에 생긴 일이라면 오르막도 내리막도 진정한 행복으로 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겠지요.

이런 말을 들은 조반니는 작품의 후반부에 '모두의 행복'을 찾으러 가겠다고 말한다. 겐지가 조반니에게 거대한 슬픔과 바쁜 현실을 안겨주면서도 행복을 자꾸만 상기시킨 까닭은, 괴로운 상황에 놓인 누군가가 죽지 않기를 바라서가 아니었을까?

뮤지컬 '은하철도의 밤' 포스터 / 사진=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제공
뮤지컬 '은하철도의 밤' 포스터 / 사진=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제공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은 지금도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85년 작 애니메이션 '은하철도의 밤'은 애니메이션 역사에서 길이길이 꼽히는 명작이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원작을 바탕으로 뮤지컬 2인극을 재창작하기도 했다. 전집, 걸작선, 시집, 동화책 등이 다양하게 출간되기도 했다.

특히 '주문이 많은 요리점' 같은 작품도 재미있고 독특하고, 긴 호흡으로 쓴 '진공용매' 같은 시도 번역시를 읽어보고픈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 '고전', '명작'으로 꼽히는 각종 문학들은 읽을수록 풍부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힘을 건네준다. 이런 작품들은 각종 미디어에서 인용되고, 오마주되고, 다시 읽히곤 한다. 그러나 '오래됐다', '어렵다'는 이유로 널리 읽히지 않는 작품들도 많다.

그에 따라, 이 기사는 최근 다시 주목받는 작품들에 접근하기 쉬운 발판처럼 쓸 수 있도록 기획됐다. 이 기획에는 기사를 읽는 5분 사이, '세 줄 요약 해주세요' 대신 '더 읽어보고 싶어요'를 선택하는 독자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소소한 마음이 담겼다.

이번 기사에 실린 두 인용문은 위에서부터 각각 읻다 출판사의 '봄과 아수라'(정수윤 옮김, 2022) 소와다리 출판사의 '은하철도의 밤'(김동근 옮김, 2015)을 인용했다.

다음 주에는 국가정원과 박람회 등으로 주목받은 순천 출신 작가,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소개한다. 지는 해가 아름다운 순천은 '무진기행'의 배경 모델이 된 것으로도 알려져 있는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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