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엔 끝이 없다. 88세 어르신 초등검정고시 입학.

 춘천 동면 만천리 대룡산 끝 집에서 태어났다, 59년 허인구를 이야기 할 때 많은 분들이 학력을 보고 좋은 부모에게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은 은수저 정도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 나 역시 부모님 세대들 만큼 힘들진 않았지만 당시에도 배움이란 절실한 의지를 갖지 않았으면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태어나 보니 아버지는 대학교 일학년이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학생이 아이를 낳았으니 꽤나 일찍 결혼했나 생각할 수 있지만 아버지는 집안 형편이 안 좋아 중고등학교를 친구들보다 5~6년 늦게 진학하셨다. 사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그 시절은 중,고등학교는 커녕 초등학교도 못 간 사람이 많았다. 중, 고등학교를 나오는 것 만으로도 학력이 굉장히 높은 편이었고 대학교까지 갔다면 거의 엘리트나 다름없는 세상이었다.

반딧불 학교 졸업생 작품
반딧불 학교 졸업생 작품

당시는 6·25 직후라서 전쟁 피해를 복구하고,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정부에서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농촌은 그야말로 온 가족이 농사일에 매달려야 겨우 입에 풀칠할 수 있을까 말까 한 어려움에 놓여있었다.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아버지는 초등학교 졸업 후 바로 중학교로 가지 못 하고 농사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농사를 지으면서도 고학을 하며 학업의 꿈을 버리지 않으셨다.​고등학교 역시 스스로 벌어서 다녀야 했기 때문에 중학교에 이어 주경야독, 아니 주독 야경을 했다. 고등학교는 춘천농고 임학과를 다니셨는데 방과 후 미군 부대 하우스 보이로 일하면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뒷바라지 하시느라 양장점 점원으로 십 리 길을 출퇴근 하시다 출근길 고갯마루에서 나를 낳으실 정도로 생활력이 강하셨다. 부모님 손을 떠나 외가집 누나 손에 컸으나 나는 단 한번도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배움이 절실한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행복하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내가 금강장학회(1969년 9월 19일 2,000만 원 설립 자본금을 토대로 강원도 출신으로 학자금 마련이 곤란한 우수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 위한 장학기금)에 목숨을 걸었던 이유도 고향에 진 빚을 보답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대학 입학하자마자 강원학사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강원학사는 강원도가 강원도 출신 학생들에게 서울에서 편안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든 기숙사다. 1975년 6월 100명이 기숙할 규모로 전국 최초로 건립되었으며 당시 명칭은 ‘새강원의숙’이었다.

반딧불 초등학교 입학 축하 백설기
반딧불 초등학교 입학 축하 백설기

나는 대학 입학을 하면서 곧바로 ‘새강원의숙’에 들어갔고 ​​​​​​군대를 갔다 와서도 복학생 신분으로 졸업을했다. ​​​​‘새강원의숙’ 정문에는 “고향과 부모에게 부끄러운 자식이 되지 말자!”는 슬로건이 쓰여 있었다. 나는 기숙사 정문에 들어설 때마다 그 슬로건을 바라보면서 항상 부모님과 고향 생각으로 학교 생활을 했다.​ ​

허인구 전 G1 방송 사장이 축하말씀을 전하고 있다.
허인구 전 G1 방송 사장이 축하말씀을 전하고 있다.

오늘 허인구 전 G1방송 사장이  인생 2막 반딧불 초등학교 입학식에 참석했다. 출판을 앞둔 허인구 사장의 자서전 초고가 떠올라 소개했다. ​고령 인구가 많아지면서 노인에 대한 복지는 많이 좋아진 것이 사실이다. 

입학식 기념사진(시진 남궁 은)
입학식 기념사진(시진 남궁 은)

그러나 일제 식민지를 거쳐 한국전쟁까지 경험해야 했던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배움의 시기를 놓친 뒤 생활고에 시달리느라 한글마저 익히지 못하고 힘들게 인생을 살아오신 분들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철원군 평생학습 강당에서 열린 입학식은 특별하다. 어르신들을 위한 인생 2 막 반딧불 초등학교 입학식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입학증서 증정 (철원군수 이현종)
입학증서 증정 (철원군수 이현종)

반딧불 초등학교는 2017년 지역 평생 활성화 지원 공모 사업에 선정되어 2018년 2022년 2023년 운영했고 내년 2024년 4월 검정고시를 목표로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한다.철원군민 누구나 지원이 가능하며 올해 입학생 21명 중 최고령이 88세고 80세 이상이 8명, 70세 이상 11명 67세, 69세 2명이다. 70 세 이상도 78세,  79세가 다수다. 

입학생 총 21명 중 입학증서 전달
입학생 총 21명 중 입학증서 전달

입학증서 전달식과 함께 시작된 입학식 축사에서 철원군수(이현종)는 '무엇보다 건강하시기를 당부하며 자주 가깝게 자주 뵙는 분들이라 이런 사연이 있는지 몰랐다고 언급한 뒤 워낙 인품이 훌륭하신 분들이라 더 이상 배우지 않으셔도 되는데 기왕에 시작하셨으니 꼭 꿈을 이루시라고' 당부했다.

인생 2막 반딧불 초등학교 수업 시간은 철원군 군탄1리 경로당(수요일, 일요일 13시30분~16시30분)과 유곡리 경로당(화요일, 토요일13시30분~16시30분)수업이 진행된다고 한다.

꽃향기가 좋다며 웃으시는 입학생

입학식이 끝나고 허인구 전 G1 방송 사장은 내이야기고 우리 어머니 이야기라고 했다. 나 역시 백설기 한덩어리 꾸역꾸역 먹으며 어머니를 생각했다. 내년 꽃 피는 사월 졸업 하신다니 꽃다발 한아름 안고 졸업식에 참석하고 싶다.

문화뉴스 / 남궁은 fabre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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