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악화일로(惡化一路)로 치닫는 출산율을 반전시키기 위해선 여성 고용이 안정돼야 한다는 국회 입법조사처의 분석이 나왔다. 국회 입법조사처(전윤정 입법조사관)가 지난해 12월 29일 펴낸 ‘20~30대 여성의 고용·출산 보장을 위한 정책방향’이라는 보고서를 보면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는 1970년 9.2건에서 2022년 3.7건까지 무려 5.5건이나 줄었다. 합계출산율도 1970년 4.5명에서 2022년 0.78명으로 무려 3.72명이나 떨어졌다. 국내외 연구들은 출산과 고용의 관계에 있어, 단기적으로는 출산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 크지만, 장기적으로는 고용이 출산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게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결국 안정적인 일자리가 특히 20~30대 비혼 여성의 혼인과 출산 의사를 높여 중장기적으로 출산율을 높인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20대와 30대를 거치며 여성의 고용률은 남성에 비교해 크게 뒤처진다. 이를테면 지난해 20대 여성의 고용률은 62.8%로 20대 남성 고용률 57.9%보다 높았지만, 30대로 넘어가면서 역전된다. 30대 남성 고용률이 89.1%에 이르는 데 반해, 30대 여성 고용률은 64.4%에 머문다. 20대에 불안정한 일자리에 입직(入直)한 뒤 30대에 노동시장을 이탈하는 여성 고용의 흐름이 나타나는 것이다. 보고서는 “30대에 들어서면 남성은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에 들어가고 대부분 안정적인 정규직에 입직하는데 반해, 여성은 안정적인 고임금에 입직하는 경우가 아니면 출산과 육아로 인한 고용단절을 경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남성에 견준 여성의 노동시장 경험은 ‘이른 불안정성’을 특징으로 한다. 여성의 경우, 비정규직 비중이 30~34살에서 25.5%로 가장 적은 수준을 기록한 뒤 이후 연령부터는 비정규직 비중이 꾸준히 늘어나는 모양새다. 반면 남성은 45~49살(18.5%)까지 낮은 비정규직 수준이 유지되다가 50대 이후부터 비정규직이 늘어난다.

입법조사처는 “기혼 여성의 출산장려와 초기 아동 양육지원 정책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던 저출산 정책의 방향을 이제는 전환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한다. 만혼 때문에 출산율이 낮다는 것은 옛말이 되었고, 여성들이 아예 결혼과 출산을 외면하는 ‘중세 유럽 흑사병’ 수준의 인구감소에 직면한 현실에는 처방도 달라져야 한다는 논리다. 보고서는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서 여성 노동참여율이 높을수록 합계출산율이 함께 높아지는 추세를 근거로 제시한다. 정부가 일·가정 양립지원정책을 펴면서 여성들이 더는 ‘아이냐? 일자리냐?’의 선택에 내몰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25~49세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83%를 넘는데 합계출산율은 2022년 1.79로 유럽 국가 중에서도 높은 편이다. 독일은 통독 이후 급락한 출산율을 2021년 1.58로 반등시켰다. 기존 가족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고 2017년 여성의 고용을 유지하고 노동시간에 대한 자율권을 주면서 동일노동·동일 임금 원칙을 철저히 보장하는 성평등 정책을 도입한 결과다.

하지만 한국의 현안인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2030 여성이 경험하는 노동시장의 성차별적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만 한다. 출산 적령기인 30대 여성 고용률은 남성보다 25%포인트나 낮고, 비정규직 비율은 높으며, 남녀 간 임금 격차는 오랜 시간 OECD 최악이다. 남녀 간 근로소득이 연간 평균 약 2,000만 원의 격차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근로소득은 남성의 60% 수준에 그쳤다. 한국은 1996년 OECD 가입 이래 27년째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다. 지난해 기준 30대 남성 고용률은 90%에 육박하지만, 30대 여성 고용률은 54.6~64.4%에 그쳤다.

30대에 들어서면서 남성은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에 들어가는 반면 여성은 25~29세 사이에 고용률이 가장 높았다가 30대에 하락하고, 40대 이후에 다시 상승하는 ‘M자형’ 패턴을 보였다. 지난해 전체 임금근로자 중에서 남자는 정규직이 70.2%, 비정규직이 29.8%인데, 반면 여자는 정규직이 54.5%, 비정규직이 45.5%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여성의 고용과 출산을 보장하기 위한 양성이 평등한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과 전략을 구체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라며 “이중노동시장 완화 및 성별 격차 해소, 젠더 중립적인 일·가정 양립제도 정착과 사회정책 보편화, 양질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립 등이 필요하다”라고 제안했다.

경쟁·압력이 심하고 구조적 차별이 만연한 노동시장에서 여성은 경력단절과 가사·돌봄노동 부담을 걱정한다. 내년 합계출산율은 사상 최악인 0.65명으로 전망되고 있다. 올해 30만 명대로 감소한 초등학교 신입생은 내후년엔 20만 명대로 급락할 것이라고 한다. 올해 취학 통지서를 받은 학생은 41만 3,000여 명이지만, 해외 이주나 건강상 이유로 실제 입학하는 아동은 대개 대상자의 90% 수준에 그치는 것을 감안하면 올해 주로 입학하는 2017년생 아이들 숫자가 35만 명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올해는 처음으로 40만 명대가 무너질 것으로 보인다. 이대로는 2062년엔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이 세계 최고가 되고, 경제 규모와 사회안전망 축소를 넘어 국방까지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CNN이 보도했듯이 50만 명의 병력 수준을 유지하려면 연 20만 명이 입대해야 하는데 2023년 출생아 수는 남녀 포함 23만 명에 불과하다.

정부는 저출산 해결 방안으로 육아휴직급여 확대 등을 내놓고 있지만 기존 가족중심주의에 바탕을 둔 ‘출산 인센티브’ 수준에 그칠 뿐이다. 여성들이 마음 놓고 출산과 육아라는 본연의 권리와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여성 노동자의 관점에서 저출산 완화 정책을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직도 여성이 일과 가정 사이에서 양자택일(兩者擇一)을 요구받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 이젠 양자택일에서 벗어나 여성들에게 일과 보육이 양립하고 직장과 가정이 병존할 수 있게 해줘야만 한다. 그래야 직장 일을 하면서 큰 어려움 없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다. 노동시장에서 성차별적 인식·문화 등이 제대로 개선되지 않고 있는 점이 저출산이라는 사회문제로 표출되고 있음도 유념해야 한다. 성차별적인 노동시장의 관행을 고치고, 성별에 따라 직종을 분리하는 이중구조를 완화하고, 출산·양육으로 인해 직장 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인구절벽(Demographic cliff)이나 인구지진(Age quake)의 재앙(災殃)에서 출산율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릴 수 있는 비상한 해법을 담은 과감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갈수록 악화일로로 치닫는 위기의 출산율을 높이려면 여성 고용 안정부터 담보하길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사진=박근종
사진=박근종

(현, 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전, 소방준감, 서울소방제1방면지휘본부장, 종로·송파·관악·성북소방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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