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에 온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Kristalina Georgieva)’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한국 기업문화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 한국의 남녀 경제 활동 참여에 있어 지나치게 격차가 벌어져 성장을 갉아먹고 있다는 지적이 있어서다. 저성장 해법을 찾는 우리나라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적절한 대안으로 귀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지난해 12월 14일 정부서울청사 별관 국제회의장에서 ‘세계 경제와 여성의 권한 확대(Empowering women in the global economy)’를 주제로 열린 세계여성이사협회(WCD) 특별포럼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통해 “한국이 근로 시간의 성별 격차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수준으로 축소하는 경우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8%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말했다. “여성이 남성 대비 임금을 31% 적게 받는다”라는 점도 강조했다. 결국 “더 많은 여성을 일하게 하는 것이 국가의 소득을 올리고 기업을 강하게 만들어 모두에게 더 나은 미래를 가져오게 된다”라는 게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총재의 권고 핵심이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지난해 12월 1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진행된 국내 취재진과의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은 2011년 49%에서 현재 55%로 6%포인트 상승했지만, 여전히 성별 격차는 선진국 중 가장 심하다.”라고 전제하고 “남녀 간 경제활동참가율 격차는 18%, 임금 격차는 31%에 이른다”라며 “이런 격차를 완화하는 문제가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려는데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2021년 기준 한국의 15∼64살 성별 고용률 차이는 17.5%포인트다. OECD 회원국 평균 14.7%포인트보다 높을 뿐 아니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7번째로 높다. 한국 여성 고등교육 수준이 OECD 최고임에도 불구하고 가사와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성별 임금 격차 탓에 경제 활동 참여가 저조한 것이다. 한국 여성 경제 활동 참가율은 2021년 53.6%, 2022년 55.1%로 증가세가 이어지고 지난해 11월 말 기준 56.0%에 달하지만, 선진국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성별 임금 격차(중위값 기준)도 OECD 평균 11.9%의 3배에 가까운 31.1%다. 한국은 1996년 OECD 가입 이래 회원국 중 성별 임금 격차 1위를 줄곧 유지하고 있다.

유리천장 문제도 심각하다. 우리나라 100대 기업의 전체 임원 중에서 여성은 고작 6%인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 CEO는 단 4명에 불과했다. 세계적인 스타 여성 CEO가 등장하고 있지만, 국내 대기업 현실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여성 국회의원 비율도 올해 기준 19.1%로 OECD 평균 33.8%에 한참 못 미쳤다. 지난해 11월 23일 글로벌 헤드헌팅 전문기업 ‘유니코써치’가 매출액 상위 100개 기업의 올해 반기보고서를 토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여성 임원은 439명이다. 사내이사, 미등기임원, 오너(Owner)일가 등을 포함한 전체 7,345명 임원의 6%를 차지했다. 10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2019년 3.5%에서 2022년 5.6%, 2023년 6%로 조금씩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미미하고 유약한 수준이다. 무엇보다 이들 중 CEO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정애 LG생활건강 사장, 최수연 네이버 대표, 최연혜 한국가스공사 사장 등 4명에 불과했다.

반면 지난해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천(Fortune)’이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의 여성 CEO 비율은 10.4%에 달한다. 국내 100대 기업 중 여성 임원이 존재하는 기업은 총 72사로 저지난해와 같았다. 주요 대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을 보면 삼성전자가 6.2%(72명)였고, 현대차는 4.4%(21명), LG전자는 4.1%(12명) 등이었다. 아모레퍼시픽이 전체 임원 56명 중 여성 비율이 25%로 가장 높았고 이어 CJ제일제당(23.6%), 네이버(19.8%), 롯데쇼핑(16.5%), LG유플러스(15.1%), KT(10%)의 순으로 여성 임원이 10%를 넘었다. 글로벌 기업 중에서는 메타(옛 페이스북) 35.5%, 애플 23%, 인텔 20.7%, 대만 TSMC 10% 등의 순으로 여성 임원 비율이 높았다. 이어진 패널토론에서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국내 1,000대 기업 CEO 중에서는 여성이 단 2.4%이며, 이중 창업자와 혈연관계가 없는 여성은 0.5%에 불과한 수준”이라는 발표도 나왔는데, 최수연 대표는 “여성 CEO를 CEO이기 이전에 여성으로 인식하는 분위기를 벗어나려면 결국 여성 CEO가 더 많아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해 3월 6일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Glass Ceiling Index)’에서도 한국은 조사 대상 29국 가운데 최하위로 평가되기도 했다.

최근 통계청의 인구추계에 따르면, 생산가능인구는 줄어들고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라 사회의 잠재성장률도 낮아지고 있어 이런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사회 진출만이 그 정답이라는 의견이 대내외적으로 지배적이다. 물론 최근에 여성의 사회 진출이 과거에 대비해서 증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아직도 부족한 상태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세계 100대 여성 골프선수 중에서 33명이 한국 여성”이라며 “‘여성 골프’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더 많은 여성이 노동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기업과 정부의 지원도 중요하다”라면서 여성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으로 ▷일과 가정에 대한 책임을 양립할 수 있게 하는 직접적인 지원(Direct support) 정책, ▷유연한 노동 시장(Nimble labor markets), ▷사회적 관습 개선(Updated customs)을 제시했다. 또 핀란드와 스웨덴과 같은 ‘탄력 근무제’와 남성의 육아휴직 확대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우리 정부도 남성 육아휴직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눈치를 주는 회사가 더 많고,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의 경우 그림의 떡이다.

1999년 등장한 ‘위미노믹스(Womenomics)’가 24년 만에 진정한 의미를 되찾고 있다. 2000년대 초중반 경기를 부양하려는 각국 정부가 위미노믹스를 통해 달라진 여성 소비자의 위상을 치하하거나 ‘유리천장’을 깬 극소수의 여성 고위직을 전면에 내세우는 데 그쳤다면, 이제는 진짜로 ‘여성의 자리를 내놓으라’는 것이다. 몇 년 전 미투 운동을 촉발한 미국 할리우드에서는 최근 들어 “타임스 업(Time’s up│시간이 됐다)”을 외치고 있다. 아직도 여성 인력에 대한 제약과 차별이 적지 않다. 2021년 우리나라 20대 여성 고용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3.1% 포인트 높지만 30대는 11.4% 포인트 낮다. 출산과 육아로 경력 단절을 강요받는 한국 여성의 현실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12월 14일 발간한 ‘출산율 제고를 위한 정책제언’ 보고서에서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와 출산율을 동시에 높이려면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일과 가정의 양립 지원, 여성 친화적 기업문화 등이 더 확대 돼야 한다. 이제 일하는 여성의 경쟁력에 나라의 미래가 달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사상 처음으로 1%대로 떨어졌다. 저출산으로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추락한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려면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 증대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일찌감치 2021년 OECD는 노동인구 부족으로 7년 뒤인 2030년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0%대로 떨어져 38개 회원국 중 캐나다와 함께 ‘공동 꼴찌’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14일 발표한 ‘장래 인구추계 : 2022~2072년’ 보고서는 50년 뒤 우리나라 총인구를 3,622만 명대로 예상했다. 생산연령(15~64세)은 총인구의 71.1%에서 45.8%로 추락하고,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17.4%에서 47.7%로 절반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이 그제 내놓은 ‘한국경제 80년(1870~2050) 및 미래 성장전략 보고서’도 충격적이다. 생산성을 높이지 못하면 2030년대부터 경제성장률이 0%대로 떨어지고, 2040년대부터는 마이너스 성장으로 진입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인구 감소와 생산성 저하로 인한 저성장 고착화를 경고하는 비관적인 시나리오가 단지 예측으로 그치지 않을 것 같아 불안하다.

미국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로스 다우서트((Ross Douthat)’는 지난해 12월 2일‘한국은 소멸하는가?(Is South Korea Disappearing?) 라는 칼럼에서 “한국은 선진국들이 안고 있는 인구 감소 문제에서 두드러진 사례 연구 대상국”이라며 “흑사병 창궐로 인구가 급감했던 14세기 중세 유럽보다 더 빠른 속도로 한국의 인구가 감소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고, ‘조앤 윌리엄스(Joanne Williams)’ 미국 캘리포니아대 법대 교수는 지난 7월 EBS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한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8명’이라 한 말을 듣고 놀라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라며 머리를 부여잡아 화제가 됐다. 지난 10월 4일 ‘한국은 왜 망해가나(Why Korea is Dying Out)’라는 제목의 영상을 게재했다. 출산율이 빠르게 감소하고 있어 현재 젊은 인구가 100명이라면 2100년에는 그 숫자가 6명으로 줄어든다는 의미”라면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면 100년 안에 한국의 청년 94%가 줄어든다. 노인의 나라가 되는 것”이라고도 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이미 현재 인구수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2.1명의 3분의 1 수준에 그치고 있고 OECD 평균 합계출산율은 1.58명(2021년 기준)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조만간 0.6명대까지 하락한다면 사회의 붕괴 속도는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질 것이다. 이번 ‘장래 인구추계 : 2022~2072년’ 보고서에선 2024년 0.68명, 2025년 0.65명까지 떨어진다고 예상했다. 역대 최저치인 2022년 합계출산율 0.78명도 감지덕지해야 할 상황이다. ‘국가적 자살’이란 말이 나오는 낮은 출산율은 절대 방치해선 안 되는 숙제다. 세계적 권위의 인구학자 ‘데이비드 콜먼(David Coleman)’ 영국 옥스퍼드대 인구학 명예교수(77세)가 지난해 5월 17일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 주최한 심포지엄(저출산 위기와 한국의 미래 │ 국제적 시각에서 살펴보는 현실과 전망) 주제 발표자로 참석해 “한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달성했지만, 그 대가로 이를 물려줄 다음 세대가 없어졌다.”라며 “이대로라면 2750년 한국이라는 나라는 소멸(Extinction)할 수도 있다.”라고 다시 한번 경고했다.

정부는 여성 인력 활용을 위한 실효성 있는 방안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인구 문제는 이제 인구절벽(Demographic cliff)의 ‘인구감소 시대’를 넘어 인구지진(Age quake)의 ‘인구소멸 시대’를 치달리며 위기감을 높이고 있다. 그러함에도 정치권은 말로만 위기라 할 뿐 실효적·효과적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인구절벽, 지방소멸, 초등학교 폐교라는 말은 이미 너무 익숙하다 못해 식상하고 진부하고 비루한 용어로 퇴색되어 버린 지 오래다. 이사회에 여성 이사 1인을 의무적으로 포함해야 하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제165조의20(이사회의 성별 구성에 관한 특례)을 신설하여 자산총액 2조 원 이상의 상장사는 여성 이사를 최소 1명 이상 두도록 의무화해 시행되면서 기업의 여성 사외이사 수가 늘었지만, 우리 사회에 여성 리더는 여전히 소수에 머무르고 있다. “공공기관의 여성 고위직 확대를 위해 공공기관에도 여성 이사 의무화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결국 여성의 경제 활동을 늘리는 것이 국가 소득은 물론이고 출산율을 높이는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도 ▷저렴하고 유연한 보육 서비스, ▷양육에 관한 남편의 적극적인 역할, ▷친가족적인 사회적 규범, ▷유연한 노동시장 등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더 많은 여성을 일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추락한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려 모두에게 더 나은 미래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위기의 대한민국 여성을 일하게 해야 한다.

사진=박근종
사진=박근종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현, 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전, 소방준감, 서울소방제1방면지휘본부장, 종로·송파·관악·성북소방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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