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4대 시중은행 중의 하나인 KB국민은행 콜센터는 하청노동자 240여 명의 고용승계를 진행하면서 육아휴직자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근무 중인 8명을 해고하려다가 언론 보도 후 한발 물러섰다. 육아휴직 중인 여성 상담사들이 용역업체로부터 ‘육아휴직자 고용승계 불가’ 통보를 받은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해고를 당했다가 다행히 고용승계가 이뤄져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일부 상담사는 출산을 앞뒀다는 이유만으로 재차 직장을 잃을 위기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초저출산으로 국가의 명운이 기울어가고 있는 위기 가운데, 아이를 낳아 기르면 쫓아내려는 회사가 아직도 존재한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특히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들이 이런 상황에 많이 놓이게 되는데, 정부가 손 놓고 방기하고 방치한다면 국민을 향해 “아이를 낳으라”라고 주문을 할 자격이나 명분마저도 잃게 될 것이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1월부터 상담사 인력 감축을 유도해 왔는데 정년을 맞거나 퇴사로 일하는 사람이 줄어도 더는 충원하지 않고 자연감소를 시키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콜센터 협력업체를 6곳에서 4곳으로 줄였고 계약이 해지된 2곳의 상담사 240여 명은 해고 위기에 몰렸다. KB국민은행 측은 “인공지능 상담이 늘고, 코로나19가 지나간 이후 영업점에서 대면 영업을 잘 진행하면서 콜센터 콜 수가 줄었다.”라고 이유를 들고 있다.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측은 “실제 사용자인 국민은행이 상담사를 직접 고용하라”라고 외치면서 KB국민은행 본사 앞에서 노숙 농성을 벌였다. 여론 압박이 거세지자 KB국민은행은 지난해 12월 14일 고용노동부에 고용승계 입장을 밝혔다.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국민은행은 육아 휴직한 직원이 퇴직하면 3년 뒤 다시 채용 기회를 주기도 해왔던 터다.

노조에 의하면, KB국민은행 콜센터 직원들을 고용승계 하기로 한 용역업체 ㈜ K휴먼스가 지난달 26일 육아휴직자 및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사용하는 상담사들은 고용승계가 불가하다고 공지했기 때문에 이에 따른 대응으로 노조는 “육아휴직과 육아기 단축근무 사용자들이 갑자기 정상 출근을 해야 하고, 자녀를 맡길 곳이 없으면 퇴사할 수밖에 없다”라며 분노했다. 이런 사실이 보도되고 난 뒤에서야 용역업체는 입장을 바꿔 전원 고용승계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나마 노조가 있어서 대응할 수 있었지만, 노조가 없는 비정규직들은 이런 일을 당해도 외부에 잘 알려지지도 않는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부는 지난 1월 4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출산과 양육으로 줄어드는 소득을 보전해주는 부모 급여를 올해 최대 100만 원으로 증액하는 등 출산·육아 친화적인 사회 분위기를 조성한다. 부모급여 및 육아휴직급여 확대, 중소기업 일자리 평가 시 ‘육아 친화 경영 배점’ 확대 등의 새해 저출산 대책을 공개했다. 인구 위기에 대응하고자 예산·세제 우선순위의 재조정을 통해 저출산 대책을 뒷받침함으로써 결혼과 출산, 육아에 친화적인 사회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우선 혼인·출산에 따른 증여재산 공제를 확대한다. 혼인 전후 혹은 자녀 출생 후 2년간 직계존속이 재산을 증여했을 때 공제 한도를 기존 5,000만 원에서 1억 5,000만 원으로 늘린다. 부모급여 지원금은 기존 ‘0세 아동 월 70만 원·1세 월 35만 원’에서 ‘0세 월 100만 원, 1세 월 50만 원’으로 확대한다.

자녀 출생 초기 양육비용을 덜어주기 위한 ‘첫 만남 이용권’ 금액은 현재 200만 원에서 둘째 아이부터는 300만 원으로 늘어난다. 현재 1,030곳인 시간제 보육 제공기관은 2,315곳으로 2배 이상으로 확대한다. 맞 돌봄 문화 확산을 위한 ‘3+3 부모 육아 휴직제’는 ‘6+6’으로 확대 개편한다. 생후 18개월 내 자녀를 둔 부모가 동시에 혹은 순차적으로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첫 6개월간 육아휴직급여를 월 최대 450만 원까지 지급한다. 휴직수당 지급 방식은 ‘일부 차감 및 복직 후 환급’에서 ‘휴직기간 중 완전 지급’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한다. 하지만 아이를 낳으면 직장을 잃는 현실이 그대로라면 이런 대책들이 무슨 소용이 있을지 모르겠다.

현행 「남녀고용평등과 일ㆍ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제19조(육아휴직)와 제19조의2(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그리고 제19조의3(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중 근로조건 등) 과 제19조의4(육아휴직과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의 사용형태) 와 같은 법 제37조(벌칙) 등에서 육아휴직이나 육아기 단축 근로를 이유로 해고나 불리한 처우를 할 경우 사업주를 처벌하게 돼 있지만, 비정규직 고용승계 여부는 법에 명확한 규정이 없다. 고용노동부는 행정해석으로 “육아휴직을 사용해도 고용승계를 해줘야 한다”라고 보고 있으나,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자 심각성이다. 직장갑질119는 “고용보험 가입 노동자 중 산전후 휴가와 육아휴직 사용 전후 퇴사한 경우, 해당 회사를 상대로 특별근로감독을 벌여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정부가 ‘모성과 부성을 차별하는 회사는 아예 문을 닫도록 만들겠다’라는 정도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줘야만, 그나마 초저출산 위기 탈피의 발판이라도 구축될 것이란 의견도 존재한다.

최근 5년간 육아휴직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등 모성보호제도 위반 행위가 2,000건 가까이 신고됐지만, 기소율은 극히 낮았다. 지난해 12월 13일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올해 8월까지 모성보호제도 위반 신고는 총 1,857건 접수됐다. 유형별로 보면 육아 휴직을 허가하지 않거나, 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 등 불리한 처우를 한 경우 등 육아 휴직제도 위반이 965건(52.0%)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근로시간 제도 위반 359건, 출산전후휴가제도 위반 183건, 육아기 근로시간단축제도 위반 158건, 배우자출산휴가제도 위반 70건, 생리휴가제도 위반 56건 순이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0월 30일 육아휴직 등 모성보호제도 위반 온·오프라인 신고 내용 유형 및 조치 현황을 공개하며 “6개월 동안 220건이 접수돼 203건에 대해 시정하도록 하고, 17건에 대해 사실관계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모성보호신고센터 운용은 지난해 3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발표한 저출생 대책 중 하나로, 모성보호제도와 이를 활용할 수 없는 현실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문제 상황을 신고받아 근로감독 강화 등을 하겠다는 취지였다. 신고 사례를 제도별로 보면 육아휴직(40.9%) 관련 신고가 가장 많았고,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17.3%), 출산휴가(9.1%)가 뒤를 이었다. 위반 행위 가운데는 휴가(휴직) 사용을 이유로 불리한 처우(32.7%)를 한 경우가 많았다. “육아휴직 이후 퇴사를 종용”했다거나, “사업주가 육아휴직을 이유로 퇴직을 권고”했다는 신고들이다.

「근로기준법」 제74조(임산부의 보호) 제1항에서 “사용자는 임신 중의 여성에게 출산 전과 출산 후를 통하여 90일(한 번에 둘 이상 자녀를 임신한 경우에는 120일)의 출산전후휴가를 주어야 한다. 이 경우 휴가 기간의 배정은 출산 후에 45일(한 번에 둘 이상 자녀를 임신한 경우에는 60일) 이상이 되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제5항에서는 “사용자는 임신 중의 여성 근로자에게 시간외근로를 하게 하여서는 아니 되며, 그 근로자의 요구가 있는 경우에는 쉬운 종류의 근로로 전환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최근 4년 8개월(2019년∼2023년 8월) 동안 무려 2,000건에 육박하는 모성보호제도 위반 사건 가운데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경우는 고작 168건(9.0%)에 불과했다.

고용노동부가 과태료를 부과하거나 시정지시를 내린 경우를 합쳐도 겨우 322건(17.3%)에 그쳤다. 육아휴직을 부여하지 않거나 사용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면 사용자는 처벌을 받는다. 출산전후휴가 종료 후에는 휴가 전과 동일한 업무 또는 동등한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직무에 복귀시켜야 하는 데 이를 위반한 경우에도 같은 법 제114조(벌칙) 제1호에 의거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 진다. 신고 사례 가운데는 아예 “출산휴가 90일을 부여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출산 전후 휴가 미부여는 같은 법 제110조(벌칙) 제1호에 의거 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 원 미만의 벌금형에 처해 지게 되는 위법 행위다.

무엇보다도 정부와 지자체가 앞다퉈 초저출산 극복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현실에선 출산·육아 때 직장에서 눈치를 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 7일 고용노동부의 ‘2022년 기준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 의하면 면 기업 인사담당자의 30%가량은 출산휴가가 필요하지만 전혀 사용하지 못하거나 일부만 사용했다고 답했다. 육아휴직도 필요할 때 모두 사용했다는 응답은 52.3%에 그쳤다.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이 어려운 이유는 동료의 업무 가중, 직장 분위기, 대체인력 문제, 추가 고용 인건비 부담 등을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육아휴직을 승진 기간에서 제외하는 업체도 적지 않았다. 육아기에 필요한 근로시간단축제도, 가족돌봄휴직제도 등은 모른다는 응답이 30% 이상이었다. 아이를 낳으려면 회사나 동료의 눈치를 봐야 하고, 승진에서도 불이익을 당하는 후진국형 기업 문화가 여전한 셈이다. 한미글로벌은 셋째를 출산한 직원은 즉시 특진시키는 제도를 도입했고, 신입사원 공채 때 자녀 있는 지원자에 가점을 준다고 한다. 롯데그룹은 2012년 여성 자동육아휴직제를 도입해 2017년 이를 2년으로 늘렸고,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도 시행 중이다. 롯데 임직원 출산율은 2명이 넘는다.

특히 주목할 것은 고용노동부가 상시근로자 5인 이상 사업체 5,038곳을 대상으로 진행한 이번 실태조사에서 자녀 양육을 위해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모른다’라고 답한 사업체는 29.4%였다. ‘잘 안다’라는 응답은 36.6%, ‘어느 정도 안다’와 ‘들어본 적 있다’라는 응답은 각각 19.9%, 14.2%로 조사됐다. 가족돌봄 등을 위한 휴직·휴가·근로시간 단축 제도에 대해서도 ‘모른다’라는 응답이 39~46%를 차지했다. 난임 치료휴가 역시 사업체의 42%가 알지 못했다. 육아휴직의 경우 ‘모른다’라는 답변은 12.9%였으나 ‘필요한 사람도 전혀 사용 불가능하다’라는 답변이 20.4%에 달했다. 출산전후휴가는 ‘모른다’라는 응답이 5.8%에 불과했다. 하지만 출산 전 퇴직이 20.7%, 출산 직후나 출산휴가 도중·종료 후 퇴직이 5.2%를 차지해 여전히 많은 사업체에서 여성의 경력단절이 일어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가정 양립 제도는 사업체 규모가 작을수록 인지도와 사용 가능 정도가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의 경우 100인 이상 사업체는 모른다는 응답이 0%였으나 5~9인은 35.3%로 나타났다. 근로자가 관련 제도를 사용하기 어려운 이유는 ‘동료 업무 가중’이 가장 많았고, ‘사용할 수 없는 직장 분위기나 문화’가 뒤를 이었다. 한미글로벌, 롯데그룹, KB국민은행, 삼성, SK, 현대차, LG, 포스코 등 대기업 수준으로 지원을 하면 우리나라 저출산 극복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 중소기업에 그런 지원책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법에 보장된 육아휴직조차 못 쓰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대·중소기업 간 출산지원 격차를 해소할 세심한 정책적 배려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육아 단축근무 시 지원하는 동료 업무분담 지원금이나 육아휴직 지원금 같은 정책들을 더욱 확대하고 현실화해 당당한 육아휴직 문화 정착에 힘써야만 한다.

서울 성동구는 출산을 장려하고 육아휴직 제도를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자동육아휴직제’를 도입한다. 자동육아휴직제는 출산휴가 후 별도의 신청 절차 없이 육아휴직 사용을 의무화하는 것으로, 육아기 직원들이 일·가정 모두를 양립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남·녀 구분 없이 본인이 육아휴직을 원하지 않는 경우에만 예외를 적용함으로써 자유로운 육아휴직 사용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또 ‘배우자 출산휴가 의무사용제’도 시행한다. 남자 공무원은 배우자가 출산한 경우 단태아는 출산휴가 10일, 다태아는 15일을 부여하여 사용기간 내에 모든 출산휴가를 사용하도록 한다. 임신·육아기 직원에게는 모성 보호시간 및 육아시간 사용을 권고하여 워킹맘과 워킹대디 모두가 행복한 일터를 조성해 나갈 계획이다. 차제에 롯데그룹처럼 모든 사업체에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도 적극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 고용노동부는 “모성보호제도 사용에 따른 피해자를 신속히 구제할 수 있도록 노동위원회와 계속 협의하고, 모성보호제도를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 근로감독을 강화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어 “육아휴직 지원금 지원, 육아기 단축 동료 업무부담 지원금 신설, 대체인력 활용 지원서비스 강화 등을 통해 기업 지원도 확대해나가겠다.”라고 덧붙였다. 생각은 행동으로 옮겨졌을 때만 빛나고 눈부심을 가져온다. 기대해 본다.

사진=박근종
사진=박근종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현, 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전, 소방준감, 서울소방제1방면지휘본부장, 종로·송파·관악·성북소방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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