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일: 2024.02.15
캐스팅: 민경아, 최재림
장소: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좌석: 6열 중앙

"사랑하고 사랑했던, 행복하고 아팠던 두 사람의 이야기"

보통의 러브 스토리는 한 방향으로 흐른다. 첫 만남에서 이별로, 혹은 첫 만남에서 영원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이야기는 사랑하는 두 사람의 시간이 같은 곳으로 나아가는 내용인 셈이다. 그러나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는 완전히 다른 방식을 택한다. 여자 주인공 캐시의 시간은 이별부터 첫 만남으로, 남자 주인공 제이미의 시간은 첫 만남부터 이별로 향한다. 같은 무대에서 다른 시간의 사랑을 말하는 두 사람, 캐시와 제이미의 이야기는 그렇게 각자의 시곗바늘을 타고 흐른다. 

젊은 나이에 이미 유명한 작가가 된 제이미와 꿈을 위해 무던히 노력하던 캐시. 시작은 달랐지만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같았던 그 시간, 제이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애정이 가득한 눈동자로 서로를 바라보며 둘은 진심으로 상대의 성공을 축하했고 끝없는 열정을 응원했다. 그리고 맞이한 결혼. 헤어지기 아쉬워 10분만 더 함께 걷자며 손을 꼭 잡던 연인은 어느새 평생을 함께 걸어가기로 약속한 부부가 된다. 결혼 후 제이미는 더 높은 곳을 향해 달렸고 캐시는 '제이미의 아내'로, '주인공을 꿈꾸는 배우'로 살아간다. 두 사람의 속도는 달라지고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노력으로도 좁히지 못할 간극 끝에서 서로의 손을 놓아버린 그때, 캐시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 그 시간 서로의 꿈이었던 우리에게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 그 시간 서로의 꿈이었던 우리에게

엇갈린 시간 속에서 서로를 추억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사랑의 환희로, 혹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는 기존의 어법과는 다른 독특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캐시와 제이미의 사랑을 더욱 특별하게 그려낸다. 쓸쓸한 이별에서부터 두근대는 첫 만남으로 되돌아가는 캐시의 시계와 운명 같은 시작부터 지칠 대로 지쳐버린 끝으로 향하는 제이미의 시계는 같은 기억, 다른 감정을 말하며 사랑의 이면을 극대화한다. 사랑한다 해도 언제나 같을 수만은 없는 서로의 마음은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으로 표현되며 미묘하게 변화하는 관계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이 사랑 이야기를 완성하는 것은 오케스트라의 풍부한 선율로 구현된 아름다운 넘버들이다. 부드럽게, 그러나 단조롭지는 않게 흐르는 넘버들은 관객들이 캐시와 제이미의 이야기에 온전히 귀 기울일 수 있도록 한다. 90분의 러닝타임을 채우는 모든 노래가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과 느끼는 감정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사랑이라는 하나의 여정 안에 스며있는 모든 감정을 이토록 부드럽게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멜로디 자체도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한글로 번역된 가사가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 곡의 템포에 정확히 맞아떨어지면서도 섬세하게 느낌을 살린 가사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송스루 뮤지컬인 만큼 번역 과정에 상당히 고난이 많았을 텐데 작품과 넘버를 한 층 빛내는 한글 가사를 탄생시킨 것에 대해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무대의 회전 장치는 마치 시곗바늘을 가져다 놓은 듯한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이 길쭉한 바늘은 이별을 앞둔 둘이 앉은 벤치가 되기도, 따뜻한 온기를 나누며 함께 걷던 길이 되기도 하며 자유자재로 두 사람의 시간을 바느질한다. 무대는 비교적 좁은 규모에 바 형태의 특이한 회전 구조를 결합해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또한, '시간'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도 함께 담아낸다. 여기에 여타 구조물과 조명도 효과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작품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과 전하려는 메시지를 잘 부각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 그 시간 서로의 꿈이었던 우리에게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 그 시간 서로의 꿈이었던 우리에게

작품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캐시와 제이미, 두 주인공은 거의 무대 밖으로 벗어나지 않는다. 이는 곧 두 배우 다 90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무대를 온전히 지키며 관객들의 시야 안에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2인극, 송스루 뮤지컬인 만큼 소화해야 하는 분량도 상당하다. 감정 소모도, 체력 소모도 엄청난 작품으로 정평이 나 있어 배우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는데 민경아, 최재림 두 배우는 걱정이 무색할 만큼 뛰어난 가창력과 연기력으로 환상적인 무대를 선사했다. 특히 캐시 역의 민경아 배우는 극이 시작되는 첫 넘버부터 깊은 몰입감을 보여주며 관객들을 순식간에 매료시켰다. 최근 대극장에서 무게감 있는 역할을 주로 맡아 온 최재림 배우의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비교적 친숙한 톤의 연기 역시 인상 깊었다. 캐시와 제이미를, 그들이 나눈 감정과 추억을 그대로 흡수한 듯한 두 배우의 모습이 작품을 위해 달려온 노력의 크기를 짐작게 했다. 

함께 한 시간, 사랑하고 미워했던 나의 너에게.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는 지나온 사랑에게 바치는 헌정 시 같은 작품이다. 같은 시간을 걷다가 이제는 다른 시간을 추억하게 된 지금의 그들에게 이 작품은 어딘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사랑했던 그 사람은 없지만 그 사람을 사랑했던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 그렇게 사랑은 추억이 된다.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는 가슴 뛰던 사랑의 추억의 상자를 열어주는 열쇠와 같다. 서로의 미소 하나에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던 그 순간을 기억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 작품이 전하는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한편,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는 오는 4월 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된다.

문화뉴스 / 강시언 kssun08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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