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칼럼] 서민 ‘주거 사다리’가 흔들리고 서민 ‘주거안전망’이 무너지고 있다. 매수세 감소와 공급 부족으로 아파트 전셋값이 다시 오르고 있는 반면 빌라는 전세 기피에 월세가 치솟고 있기 때문인데다 고금리와 공사비 상승으로 건설 시장이 위축되면서 임대주택 공급에도 찬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장기화된 고금리에 매매 수요가 전세로 옮겨가고, 전세사기에 수요자들이 연립·단독 등 비(非)아파트 전세를 기피하면서 서민·저소득층의 ‘주거 사다리’가 흔들리고, 공공이 직접 짓거나 공공의 지원으로 민간이 공급하는 임대주택 모두 당초 계획보다 공급 속도가 크게 더디다 보니 전세사기 여파와 전셋값 오름세로 임대차 시장이 불안한 가운데 임대주택 공급이 부진해지면서 서민·저소득층의 ‘주거안전망’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비(非)아파트에 대한 규제 완화로 수요 회복을 예고했으나, 냉각된 시장 분위기에 단기적인 회복은 어려울 전망이다.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이 내림세를 지속하는 가운데 서울에서도 아파트 가격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청년층 영끌족이 몰려 매매시장을 주도했던 ‘노도강(노원·도봉·강북)’이 직격탄을 맞았다. 실제로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5단지아파트’ 전용면적 31㎡는 지난 2월 2일 4억 6,000만 원에 팔렸다. 지하철 7호선 노원역 역세권으로 재건축을 추진 중인 아파트지만 지난 2021년 8월 최고가(8억원) 대비 반 토막이 났다. 고점 대비 절반 가량 하락한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대대적인 부동산 규제 완화와 주택 공급 의지 피력에도 고금리 장기화와 주택경기 불확실성에 수요자들의 관망세가 짙어지는 모양새다. 한국부동산원이 지난 2월 15일 발표한 “2월 둘째 주(2월 12일)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지난주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전주보다 0.04% 하락하면서 12주 연속 내림세를 이어갔다. 지난주(-0.06%) 대비 낙폭이 축소됐다. 올해로 범위를 넓히면 0.35% 하락했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도 0.03% 떨어졌다. 지난주(-0.05%)보다 내림폭은 줄었다.

한편, 고금리와 공사비 인상으로 건설사들의 부담이 커지면서 공공 임대주택마저 공급이 급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층이나 저소득층의 주거 안전망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지자체 등이 공급한 공공 임대주택 착공 건수는 7,398채로 2022년 1만 5,815채보다 무려 53.2%나 급감했다. 정부의 ‘1·10 공급대책(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에 포함된 기업형 임대 활성화 방안 역시 제대로 추진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지방자치단체 등의 공공임대주택 착공 건수는 7,398채로 2022년 1만 5,815채보다 무려 53.2%나 급감했다. 지난 2월 18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세의 약 90%에 공급되는 ‘청년안심주택’ 인허가를 받은 현장은 지난해 9곳 3,099실에 불과했다. 2022년 인허가 실적 23곳 6,591실의 절반도 안 되는 수치다. 2년 전인 2021년 인허가 실적 44곳 1만 6,089실과 비교하면 무려 5분의 1 규모로 쪼그라들었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청년안심주택 부지는 인허가를 받은 지 5년이 다 돼 가는데도 아직 첫 삽조차 뜨지 못하고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동아일보 이축복 기자의 취재에 따르면 서울시는 2019년 4월 이곳에 12층 높이 186실 규모로 임대주택을 지을 수 있도록 인허가를 내줬다. 서울시 조례에 따르면 사업계획승인 고시일부터 2년 내 착공을 하지 않으면 해제 대상이 된다. 서울시는 “건설 경기가 좋지 않다는 공감대가 있어 착공이 늦어지더라도 직권으로 인허가를 취소하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 고금리 등으로 주택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전반적인 건설업 불황으로 이어져 청년, 서민을 위한 공공 주도의 임대주택 공급마저 차질을 빚고 있다.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사업도 고사 직전에 이르렀다. 최근 사업자 공모 4건이 취소되는 등 표류하고 있다. 지난 1월 28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이 사업의 신규 공모 물량은 1만 3,359가구로 2년 전인 2021년 4만 1,270가구에 비해 무려 67.6%나 감소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작년 기업형 임대 출자액은 4,374억 원으로, 2년 전(6,669억 원)의 3분의 2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민간 제안’, ‘공공택지’, ‘정비사업 연계’ 등 세 가지 방식 중 재건축·재개발 조합이 참여하는 정비사업 연계 방식은 3년 전부터 공모 물량이 끊긴 상태다. 더 큰 문제는 공모 이후 실제 착공으로 이어지지 않는 현장이 많다는 점이다. 공모부터 본사업까지 인허가 기간이 늘어지며 각종 정책 불확실성에 직면했다. 택지를 분양받는 경우를 제외하면 이 사업은 대부분 비주거 용지를 주거 용지로 바꾸는 인허가 작업을 통과해야 한다.

이렇듯 임대주택 공급이 불안한 것은 부동산 PF 위기 등 건설업 불황 탓도 크지만 오락가락하는 정책도 한몫했다. LH가 기존 주택 등을 사들여 시세의 70% 이하로 공급하는 매입임대주택 실적은 지난해 4,610채로, 당초 목표치인 2만 476채의 22.5%에 그쳤다. 취약계층을 위한 임대주택 공급목적으로 얼마 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민간아파트 수십 채를 한꺼번에 샀는데, 미분양 아파트를 분양가보다 비싸게 샀다는 ‘고가 매입’ 논란이 일어나는 비판에 지난해 4월부터 매입 기준을 ‘원가 이하’로 강화했다가 매입 실적이 급감했다. 여론 눈치를 보고 급하게 무리한 기준을 내세웠다가 서민 주거 불안만 부추긴 셈이다. 참여연대는 지난 1월 18일 발표한 논평에서 “최초 분양가보다 15% 할인해도 수차례 미분양된 주택을 LH공사가 추가 할인없이 매입하는 것은 사업을 잘못한 건설사의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는 조치”라고 밝혔다.

또한 일부 현장에서는 사업 시행자가 보유한 임대주택 물량을 시세가 아닌 감정평가액 그대로 팔겠다며 서울주택도시공사(SH) 문을 두드리고 있다. 자금난에 허덕이면서 단기 현금 흐름 확보를 위해 손해를 보고라도 물량을 넘기겠다는 것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우선협상대상자까지 선정한 ‘공공지원 민간임대’ 현장도 잇달아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 건설사들이 사업 참여를 꺼리는 이유로는 공사비 인상 영향이 가장 크다. 지난해 12월 기준 건설 공사비 지수는 153.26으로 3년 전에 비해 무려 25.8% 올랐다. 우선협상권을 반납한 한 건설사 관계자는 “공사비 인상 폭이 조율 가능한 정도를 넘어섰다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서민 주거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임대주택 공급이 급감하면서 공사비 인상애 따른 정부의 특단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한편 지난해부터 서민들의 주거 사다리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전세사기와 역전세난 등으로 빌라(연립·다세대 주택) 수요가 줄어들면서 빌라 공급이 급감했다. 지난해 전국 빌라 인허가 물량은 1만 4,785채로, 1년 전보다 67.8% 줄었다. 빌라는 서민층의 핵심 주거 사다리다. 서울만 해도 주거 형태의 30%가 빌라다. 지난해 하반기 들어서는 빌라뿐 아니라 모든 주택의 인허가, 착공, 준공 물량이 트리플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빌라 기피 현상은 통계로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울 내 빌라의 전세가율은 평균 68.5%로 전년 같은 기간 78.6% 대비 10.1%포인트 떨어졌다. 빌라 주요 수요층인 청년·1인가구들이 월세로 몰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빌라 대신 아파트로 옮기려는 수요가 급격히 늘었는데 아파트 입주 물량은 감소하면서 아파트 전월세 시장도 덩달아 불안해졌다. 최근 들어 전국 아파트 전셋값이 지난해 8월 상승세로 돌아선 이래 석 달 넘게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서울은 24주 연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이면에는 ‘빌라포비아’가 깊게 자리한다. 빌라는 아파트보다 가격이 더 떨어지면서 역전세난의 십자포화를 맞은 바 있다. 시세 산출이 상대적으로 불투명해 전세사기의 집중 표적도 됐다. 그 바람에 세입자들이 빌라를 극도로 꺼리는 풍조가 생겨난 것이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강남구 삼성·대치·청담동 내 비아파트를 토지거래허가 대상에서 해제했다. 2년 거주의무기간이 사라지면서 빌라 투자 심리를 자극할 것이란 기대가 나왔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연간 10만 채 공급을 목표로 내세웠지만, 지난해 실적은 건설·매입·전세임대 등을 합쳐도 고작 7만 채 수준에 그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LH가 공급한 공공주택은 1만 321호(건설형 기준)로 연간 목표 8만 8,000호 대비 11.7%에 불과했다. 특히 ‘공공분양’의 경우 2023년 공급 목표는 6만호 였으나, 실제 공급은 3,185호에 그쳐 목표 대비 5.3%만 공급됐다. 건설형이 아닌 매입형 공공주택의 경우 2023 년 기존주택 매입임대가 4,610호, 공공리모델링이 953호가 공급됐을 뿐이다. 이는 지난 6년간의 평균과 비교하면 기존주택 매입임대의 경우 연평균 1만 5,130호 대비 30.5%, 공공리모델링의 경우 연평균 2,856호 대비 33.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임대주택의 경우 2023년 전체 3만 570호가 공급됐는데 이는 지난 5년간의 연평균 공급 물량의 약 80% 수준이다. 공급 세대별 특징을 살펴보면 일반 공급은 늘어난 반면, 청년과 신혼부부 대상의 공급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정부의 공공주택 공급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이러한 공공임대주택 공급 부족을 단순하게 부동산 PF 위기 탓으로만 돌릴 일만은 아니다. 서민들을 위한 값 싸고 품질 높은 다양한 형태의 주택의 공급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매입임대사업 확대를 위해서는 건설원가 이하 대신 시장가격 이하로 조정하거나 주택을 공급한 건설사의 마진 캡을 씌우는 형태로의 전환하는 고민도 긴요하다. 민간 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선 공공이 적극적으로 공급을 늘려 완충 역할을 해야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민간이 진행하는 임대주택 사업이라도 공공성이 높은 경우 지원을 확대하는 등 보완책을 강구해 공급을 늘리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아울러 빌라 전세 시스템에 대한 신뢰 구축과 공급 부족에 상승하고 있는 아파트 전세가율이 몇 년 뒤 다시 투기로 이어지지 않도록 세심한 대책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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