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아침 7시 50분 KBS1 방송

[문화뉴스 고나리 기자] KBS 1TV '인간극장'이 5일 '엄마의 102번째 봄' 2부를 방송한다.

제주 섶섬이 보이는 보목마을엔 치매에 걸린 김성춘(102) 씨와 딸 허정옥(64) 씨 부부가 산다.

6년 전, 전에 없던 혼잣말을 늘여놓고, '오늘이 며칠이냐?'를 반복해 묻던 어머니는 치매 4급을 진단받았다. 하루는 말없이 사라진 어머니를 찾아 119에 신고한 적도 있을 정도. 해가 지날수록 어머니의 치매 증상이 심해지자, 정옥 씨는 주간 보호에 보냈던 어머니를 집에서 모시기 시작했다.

마침 은퇴를 앞두고 있었던 정옥 씨는 '요양원 보내지 말아 달라'는 어머니의 소원을 지킬 수 있었다. 20년 전, 서귀포 시내에 살다 섶섬이 보이는 집에 이사 온 것도 온전히 어머니를 위해서였다.

해녀였던 어머니에게 바다가 추억을 선물해 주고, 살아갈 기운을 불어넣어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덕분에 볕이 좋은 날이면 어머니는 이른 아침부터 '섶섬 지기'가 되어 대문 앞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기 바쁘다.

102세 어머니와 살며 늘 맞닥뜨리는 게, '이 시간이 다시 올까, 마지막은 아닐까' 하는 순간들이다. 정옥 씨는 그날부터 작은 습관 하나를 만들었다. 바로 하루에 한 번, 어머니의 사진을 찍는 것. 다행히 카메라만 보면 고운 미소를 보이는 어머니 덕분에 어머니로 가득찬 사진첩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재산이 되었다.

어머니는 2남 7녀를 키우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던 사람이었다. 대포 바다를 주름잡던 상군해녀였던 어머니는 새벽부터 물질에 나가기 위해 바다를 오가면서도 여름이면 오름을 누비며 고사리를 캤다.

'너희는 큰 사람이 돼라'는 어머니의 신신당부...덕분에 그 시절로서는 드물게도 뭍에 나가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이제 자식들 다 키웠다' 생각했지만, 어머니는 환갑을 넘긴 나이에 미국 이민을 선택하셨다. 미국에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는 아들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17년간 어린 손주들을 돌보며 미국 생활을 이어갔다.

그동안 정옥 씨는 은행에서 일하면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다. 지인의 소개로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남편 김수운(72) 씨를 만나 결혼하고 서로를 닮은 아들까지 가지게 됐지만, 남은 공부가 있었던 수운 씨는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고, 정옥 씨는 홀로 남아 아이를 키우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녀가 고향으로 돌아온 건 서귀포에 한 대학이 생기면서다. 이곳에 교수로 임용된 정옥 씨는 평생 교육원장과 대학원장을 역임하며 당당히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아갔다. 그 무렵, 미국에 계시던 아버지의 부고 소식이 들려왔고, 정옥 씨는 어머니를 모시고 와 제주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돌아온 남편과 함께 어머니를 모신 지 10년쯤 지난 어느 날 밤. 어머니께서 혼자 자기 무섭다며 부부를 찾아왔다. 그때부터 수운 씨는 모녀에게 방을 내어주고 따로 잠자는 중이다. 정옥 씨에게 일이 생겨 집을 비운 날이면 어머니에게 밥을 차려드리고 말벗이 돼드리는 든든한 사위다.

100세 어머니를 모시며 '돌봄이 무엇인지'를 경험하고 있다는 정옥 씨는 자연스럽게 노인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어떻게 하면 어머니의 하루를 더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을까'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공부는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에 이어사회복지사 자격증 준비로까지 이어졌다.

최근엔 연구원을 설립해 노인 복지 증진을 위해 힘쓰고 있으며, 혼자 사는 노인들을 방문해 말벗이 돼드리기도 한다.

어머니를 모시면서 근처에 살고 있는 자매들과도 더 가깝게 교류하게 됐다. 시간이 날 때면 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을 한 아름 안고 찾아오는 자매들. 작년엔 다섯째 딸 허정심(66) 씨의 진두지휘 아래, 집 앞 작은 텃밭에 배추를 심었다. 밭일에 익숙한 어머니에게 작은 심심풀이라도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그런 자매들이 있기에, 정옥 씨는 오늘도 한시름을 놓는다.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초고령화 사회. 치매 어머니를 모시는 60대 딸의 이야기를 통해 '돌봄'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사진= KBS '인간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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