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수기' 넘어 '견제와 감시'로…본격적인 변화 필요

금융지주 사외이사, '거수기' 논란 속에서 변화 모색 / 사진 = 연합뉴스 제공
금융지주 사외이사, '거수기' 논란 속에서 변화 모색 / 사진 = 연합뉴스 제공

[문화뉴스 최병삼 기자] 5대 금융지주의 사외이사 안건 찬성률이 100%에 달한 가운데 사외이사제도 거수기 비판이 다시금 도마에 올랐다. 금융당국에서는 은행의 지배구조가 글로벌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하며 모법관행을 마련했지만 아직 근본적인 개편이나 지배구조의 근본적인 개선이 부족한 상태로 보인다.

5대 금융지주가 공시한 ‘2023년 지배구조 및 보수체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5대 금융지주(KB,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의 사외이사들이 지난해 결의된 162건의 안건 중 단 한 번의 반대표도 행사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각종 거래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제때 인식·측정·감시·통제해야 하는 '리스크 관리 위원회'에서도 사외이사 활동 내역란에는 ‘특이사항 없음’ 또는 ‘특이의견 없음’만 기재돼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안건에 대한 찬성률이 100%라는 사실만으로 사외이사제도의 효용성을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좋은 지배구조를 갖춘 기업들은 이사회 개최 약 1주일 전에 이사들에게 안건에 관한 사전설명을 진행하고, 필요한 경우 실무진과의 별도의 만남을 통해 깊이 있는 설명과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다.

이 과정에서 발견된 문제점이 있는 안건은 이사회에 상정되지 않거나 수정되어 상정되므로, 실제로 이사회에 상정된 안건에 대한 찬성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오히려 이사회에서 안건이 부결되는 것은 사전 준비가 부족했다는 신호일 수 있다.

하지만 손실이 수 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되는 홍콩 ELS와 해외 상업용 부동산에 관련해서도 5대 금융지주 보고서를 통틀어 단 두 차례만 언급됐다는 점은 비난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현재 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은 경영진의 의사 결정에 대해 충분한 견제와 감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찬성 '거수기'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국내 은행의 지배구조가 글로벌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하며, '은행지주·은행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을 제시했다.

이 모범관행이 담고 있는 30개 원칙은 △사외이사 견제와 감시기능 개선 △최고경영자 선임과 승계절차 △이사회 독립성 강화 △이사회와 사외이사 평가체계 개선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모범관행은 '자율적 개선'을 원칙으로 하지만 금융당국은 정기검사에서 활용하는 '경영실태평가'에 모범관행 준수 정도를 반영해 지배구조 개선을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또한 8개 금융지주와 16개 은행에 ‘은행지주 및 은행의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 로드맵을 3월 중순까지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현재 금융권에서는 전반적으로 사외이사 수를 늘리고, 여성 사외이사 비중을 높이는 모양새다. 올해 주주총회를 통한 사외이사 선임이 마무리되면 4대 금융지주의 사외이사 32명 중 약 31.3%에 해당하는 10명이 여성으로 구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사회의 근본적인 개편이나 지배구조의 근본적인 개선이 부족한 상태로 보인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금융지주 사외이사 중 임기 만료를 앞둔 23명 중 16명이 올해 주주총회를 통해 재선임될 전망이다. 

또한 교수나 연구원 등 학계 출신이 여전히 많아 이사회의 다양성과 전문성 측면에서 변화가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올해 4대 금융지주 주주총회에 재선임 안건이 상정되지 않은 사외이사 7명 중 학계 출신은 4명인데, 신규 추천된 사외이사 후보 9명 중 학계 출신도 4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지적에 금융권은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사외이사 구성을 큰 폭으로 바꾸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한다.

특히 현재 금융지주 이사회의 구조상 사모펀드나 외국인 대주주들이 사외이사를 추천하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복잡하며, 이로 인해 기존의 체제를 변화시키기 어렵다고 전한다. 

또 금융지주 사외이사는 같은 그룹 내 자회사를 제외하면 사외이사 겸직이 불가능한 데다 최근 사외이사 책임이 강화되면서 새로운 인물을 찾기 어렵다며 사외이사 겸직금지 조항, 사외이사 역할·책임 강화 등도 ‘구인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했다.

문화뉴스 / 최병삼 기자 press@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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