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아트센터에서 명료한 피아노 리사이틀로 각인!”

공연일시: 45() 저녁 730분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

최근 지방 클래식공연장에서 이처럼 명료한 피아노 리사이틀이 있었던가.

러시아 출신의 명피아니스트로 급부상중인 다닐 트리포노프가 지난 45일 금요일 저녁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의 BAC Prime Classic Series 피아노 리사이틀로 서울에서 가진 자신의 4월초 두 번의 리사이틀 보다 더 명료한 연주회를 클래식 관객들에게 선보여 개인적으로 매우 인상깊다.

다닐 트리포노프는 지난 41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Decades'라는 주제로 Storytelling같은 연주회를 가진데 이어 42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부천아트센터와 같은 레퍼토리로 연주회를 가졌었다. 부천아트센터에서의 다닐 트리포노프의 리사이틀이 이처럼 전례없이 선명한 아티큘레이션을 보여주듯 명료하게 다가온 까닭은 우선 마지막 국내에서의 연주회인 탓에 부담감없는 홀가분한 타건이 두드러졌고 1천명 내외의 관객과 함께 하는 부천아트센터의 아늑하고 편한 어쿠스틱도 큰 작용을 한 것 같다.

때문에 추후 피아니스트 연주의 명료한 타건을 기대한다면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을 지인들한데 추천하고 싶을 만큼 이날 다닐 트리포노프의 피아노 리사이틀이 매우 명료하게 다가왔다.

선명한 아티큘레이션으로 서울에서의 두차례 연주회보다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더 명료한 연주회를 펼치고 있는 러시아의 명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 (사진: 부천아트센터)
선명한 아티큘레이션으로 서울에서의 두차례 연주회보다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더 명료한 연주회를 펼치고 있는 러시아의 명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 (사진: 부천아트센터)

선명한 아티큘레이션, 다닐 트로포노프 연주의 특징

서울 롯데콘서트홀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의 두차례 다닐 트리포노프 피아노 리사이틀과 부천아트센터에서의 리사이틀 올해의 트리포노프 내한공연의 세차례 연주회를 필자는 다 현장에서 함께 했는데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의 리사이틀이 유독 인상이 깊다.

-필리프 라모의 새로운 클라브생 모음곡집 가단조, RCT5'는 서울 연주회와 달리 상당히 침잠된 분위기로 이어져 이채로웠다. 프로 연주자에게 너무 어렵다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2번을 트리포노프는 더 확신에 찬 연주를 들려주어 앞서의 서울에서의 두차례 리사이틀보다 트리포노프의 부천에서의 리사이틀은 내게 더 명료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전반부의 트리포노프의 마지막 연주곡 멘델스존의 엄격변주곡, 작품번호 54’는 한국에서의 자신의 마지막 연주를 의식해서인지 홀가분한 타건으로 이끌어가는 듯 싶었고 엄격의 의미가 오버랩됐다. 좀더 사려깊은 관객들과의 관계 제스처는 2013년 첫 내한공연에서 조우했던 트리포노프의 구부정한 연주스타일과 많이 대비돼 더욱 성숙해지고 어른스러워진 다닐 트리포노프의 스타일의 변화가 선명히 감지됐다.

후반부의 다닐 트리포노프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9함머클라이버연주는 최근 이처럼 명료한 피아노 리사이틀을 수도권 클래식 공연장에서 들어본 기억이 있었던가 자문해볼 정도로 명료한 피아노 연주회의 정점을 보여주는 듯 했다. 특히 트리포노프의 함머클라이버” 4악장의 연주 마무리는 이런 명료한 피아노 타건의 절정과 방점을 찍는 듯 해 트리포노프의 명료한 피아노 리사이틀의 인상이 올해 그의 내한공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개인적으로 꼽고 싶다.

역대 다닐 트로포노프의 내한 피아노 리사이틀과 달리 ‘Decades'라는 주제로 스타 피아니스트가 선보이는 20세기 음악특강을 펼쳤던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의 첫 번째 올해 그의 국내에서의 리사이틀도 매우 인상적 연주회로 많은 클래식 관객들에게 기억에 남을 듯 하다.

Storytelling 화법 비슷하게 몇십년(Decades)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번 리사이틀에서 트리포노프는 자신이 살았던 1990년대를 제외한 20세기를 십년 단위로 끊어서 관객들을 위해 친절하게 조명한 것. 알반 베르크의 피아노 소나타, 작품번호 1’부터 1900년도의 작품 하나, 프로코피예프의 풍자, 작품번호 17’1910년도에서 하나, 벨라 바르톡의 야외에서1920년도에서 하나, 이렇게 총 9개의 20세기 음악이 마치 지난 세기 작곡양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언어없이 알아보는 강의 같은 연주를 트리포노프는 들려줬다. 헝가리의 명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가 최근 2-3년동안 내한 피아노 리사이틀에서 선보였던 두어차례의 렉처형 연주회의 엄청난 감흥 못지않았다.

1부 마지막 연주곡이었던 메시앙의 아기 예수를 향한 20개의 시선중 아기 예수의 입맟춤에서부터 리게티의 무지카 리체르카타중 I-IV', 슈톡하우젠의 피아노 소품 IX', 존 에덤스의 차이나 게이트’, 마지막으로 존 코릴리아노의 오스티나토에 의한 환상곡역시 1부 연주곡들과 마찬가지로 1940년대에서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2시간 듣는 완벽한 20세기 음악사 요약으로 쉼없는 피아노연주의 향연을 펼쳐 관객들로선 트리포노프 연주의 새로운 스타일을 확실히 체감하는 시간들이 됐다.

진폭 더욱 확대된 트리포노프 연주 레퍼토리들의 반경

내가 다닐 트리포노프의 연주를 처음 본 것은 그가 만 22세였다고 볼 수 있을 20136월의 예술의 전당 IBK홀에서의 공연이었는데 랑랑 스타일의 화려한 쇼맨십 대신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이며 피아노 연주에 몰입하는 정통 피아노 연주가다운 Orthodox한 스타일을 보였던 기억을 안고 있다.

10년전인 2013612IBK홀에서의 공연에서 스크리아빈의 피아노 소나타 3번을 연주하기 위해 속사포처럼 성큼성큼 들어와 힘찬 타건으로 피아노 연주에 몰입하기 시작한 이후 트리포노프의 연주는 자신이 피력한 대로 2부 전체 연주가 끝날 때까지 마치 바다 위에서 파도를 타고 서핑하는 것처럼 본능적이고 자유롭게 연주를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매 곡마다 인상적인 조형감으로 마무리하며 관객과 이런 상태에서 연주를 공유하고자 하는 그의 모습이 무척 행복해보였다. 20대의 열혈 기질은 스크리아빈의 피아노 소나타 3번의 1악장에서 두드리는 듯한 도발적인 베이스에서부터 느껴졌고 2악장은 탐식하는 듯한 연주로 원초적이고 충동적인 활기를 이끌어갔다.

차이콥스키의 감상적 왈츠 작품번호 51역시 웅장하고 광대한 선율을 느끼게 하는 피아노 협주곡 대신 전체적으론 차분한 음색으로 꽤 조용히 엄숙한 분위기를 제시해 트리포노프의 사려깊은 곡 해석을 엿보게 했다. 18개의 피아노 소품들중 연주한 세개의 소품 역시 품격있게 트리포노프의 예술적 기교를 느껴볼 시간이 되어 주었는데 스트라빈스키/아고스티 발레모음곡 불새는 당초 인터미션 시간에서 변경돼 연주된 것으로 트리포노프의 전 연주곡들 가운데서 청중에게 가장 불협화음적 요소를 느끼게 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올해의 연주회에서 더욱 성숙해가는 트리포노프의 피아니즘을 많이 느껴볼 수 있었다는 관객들의 평들에서 지난해 2023218일 토요일 오후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트리포노프가 가졌던 지난해의 리사이틀 연주곡들, 차이콥스키의 어린이를 위한 앨범에서 시작해 슈만의 판타지’, 인터미션 이후에는 모차르트의 환상곡 다단조와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가 연주되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은 스크라빈의 피아노 소나타 5으로 고전과 낭만, 20세기 초반에 쓰인 작품이 뒤섞인 프로그램에서 다닐 트리포노프는 음악의 그라데이션을 연주회장에서 연출하고자 했던 것 같다.

기술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가장 투명한 상태를 지향하는 차이코프스키에서 음악의 살을 덧붙이는 슈만,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깊은 모차르트를 만나고 미세한 묘사의 극한을 탐구하는 라벨의 모음곡을 감상하고 이어 한치앞도 알 수 없이 시작해 극한으로 치닫는 스크라빈의 작품까지 연주하는 것을 보고서 조금씩 짙어지는 음악의 세계, 그런 연주회를 다닐 트리포노프는 그려내고 있었다.

이날 다닐 트리포노프의 피아노 리사이틀에서 전반부에 내게는 첫곡 차이콥스키의 어린이를 위한 앨범, Op. 39'가 슈만 풍의 간소한 작품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24개의 소품이다보니 연주의 집중은 두 번째곡 슈만의 판타지에 쏠렸다. 슈만의 판타지, 환상곡 다장조 Op.17은 일반적으로 슈만의 피아노 독주를 위한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히며 초기 낭만주의 시대의 중심 작품 중 하나이다. 랩소딕하고 열정적인 첫 번째 악장, 장엄한 행진을 기반으로 한 장엄한 론도의 중간 악장, 느리고 명상적인 피날레 악장의 연주가 매우 환상적이고 열정적으로 전달되는 다닐 트리포노프의 첫 악장부터의 연주로부터 그의 연주의 다이내믹한 새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후반부 연주 레퍼토리들에서 내게 특히 인상적인 연주였던 것은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 M. 55'였는데 라벨의 모든 피아노 곡들 중 연주하기도 가장 어렵고, 음악성도 가장 높은 곡이다보니 연주 난이도가 극히 높으면서도 예술적인 탁월함이 뛰어나고, 잘 연주했을 때에는 피아니스틱한 효과를 크게 얻을 수 있는 명곡인 점에 비춰 물방울이 튀어오르는 모습과 파도치는 잔잔한 물결이 피아노로 구현되는 첫 대목이 순결한 아름다움의 정수를 느끼게 한 것 같다.

(: 음악칼럼니스트 여 홍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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