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법인 국립극단의 김윤철 예술감독 김우진 작 박정희 연출의 이영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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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목포시 남농로 95(용해동) 바닷가 언덕에 있는 목포문학관에는 세 개의 건물로 나누어져 있고, 김우진, 박화성, 차범석 문학관이 별도로 건립되어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맞은편에는 목포문화예술회관이 있고, 연극계 원로이자 명배우인 김성옥이 예술감독으로 재직 중이다.

우리나라에 근대극을 최초로 도입한 김우진, 최초의 여류소설가 박화성, 사실주의 연극을 완성한 차범석, 이 3인의 복합문학관이 바다가 바라보이는 언덕에 자리를 잡았고, 주변경관이 절경이다.

유품으로는 김우진 144점, 박화성 1846점, 차범석 4809점의 유품 및 관련자료를 상설전시하고, 김우진 문학제, 목포문학상 공모전, 차범석 연극공연, 박화성 문학페스티벌이 연례행사로 개최되고 있다.

김우진은 1897년 안동 김씨의 후예인 목포의 갑부요 개화사상가이자 목포 개항 당시 무안 감리 (務安 監理)를 지낸 김성규(金星圭 1863-1936)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호를 초성(焦星) 또는 수산 (水山)이라 하고 목포공립 보통학교(지금의 북교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18세에 일본 구마모또(態本)농업학교에 입학하였고 19세에 곡성(谷城)출신 정점효(鄭點孝)와 결혼하였으며 그 후 1924년에 와세다대학(早稻田)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그는 농업학교 시절에 시작(詩作)에 심취하였고 대학시절부터는 연극에 손을 대기 시작하여 1920년 조명희 홍해성, 고한승, 조춘광 등 유학생과 함께 연극연구단체인 극예술협회를 조직하였다.

1921년에는 동우회순회연극단(同友會巡廻演劇團)을 조직하여 국내 순회공연을 했는데 여기 소요되는 공연비 일체와 연출을 담당했고 아일랜드 극작가 '던세니'가 쓴 상연작품 『찬란한 문』은 그가 직접 번역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목포로 귀향해서는 영농사업체인 상성합명회사(祥星合名會社)의 사장에 취임하였고 회사 재임시에 많은 작품(시 50편, 희곡 5편, 소설 3편, 평론 20편)을 남겼다. 지금은 가톨릭교회가 들어섰지만 그가 살던 목포시 북교동 46번지의 방대한 대지 위에는 부모님과 가족들이 살던 안채와 별채가 즐비했었고 그는 2층 양옥인 「백수제」에서 작품활동을 했었다.

그는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라났지만 일찍부터 신사조에 접할 수 있어서 서구 근대사상에 철저하게 탐닉하여 있었으니 그의 사상에 바탕이 된 '니체'나 '마르크스'의 사상과 러시아혁명 이후의 사회주의에도 깊이 빠져 있었다한다. 따라서 거의 연극에서 "스트린드베리"의 표현주의와 전통부정정신(傳統不定精神) 그리고 "버나드쇼"의 개혁사상을 받아들였는데 그에게 있어서 전통인습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등 급진적 자세를 견지한 작품세계와 그의 자살원인은 그러한 사상적 측면에서 고찰될 수도 있을 것이다.

김우진의 행적은 윤심덕과의 관계로 유명하다. 대한해협 격랑 중에 청춘남녀의 정사라는 1926년 8월5일자 동아일보의 사설을 소개한다. "지난 3일 밤 11시에 시모노세키를 떠나 부산으로 항해하던 관부연락선 도쿠주 마루가 4일 오전 4시경 쓰시마 섬 옆을 지날 즈음 양장을 한 여자 한 명과 중년 신사 한 명이 서로 껴안고 갑판에서 돌연히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했는데, 즉시 배를 멈추고 부근을 수색했으나 종적을 찾지 못했다. 승객명부에 남자는 전남 목포부 북교동 김수산(30세), 여자는 경성부 서대문정 2정목 273번지 윤수선(30세)이라고 씌어 있지만 본명이 아니고, 남자는 김우진, 여자는 윤심덕으로 밝혀졌다. 관부연락선에서 조선 사람이 정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극 <이영녀>는 2014년 7월 목포의 (사)행복누리 주부연극단에서 조정우 연출로 김윤희, 한귀순, 강수영, 고명심, 홍순자, 정지희, 강남희, 김영임, 이경임, 명은하 등이 출연해 성공을 거둔 바가 있다.

이번 국립극단의 연극 <이영녀>의 무대는 중고품 장롱으로 가득 채워지고, 장식장, 경대, 옷장, 낮은 책상 등이 자리를 잡고, 장롱 안이 방으로 설정된다. 하수 쪽 벽은 여러 개의 널판을 가로 연결해 세웠고, 군데군데 널판이 떨어져 나간 자리가 있어 세월을 느끼게 한다. 또 하수 쪽 벽면에 나 있는 중간통로에는 낮은 책상이 놓여, 해설자 겸 작가가 집필하는 장소로 설정된다. 중앙에는 나무로 된 건널목 같은 구름다리가 있어 등퇴장 로가 되기도 한다. 무대 좌우 장 사이로도 등퇴장을 한다. 무대 가운데 화단이 있어 예쁘게 피워있는 꽃이 관객의 시선을 끈다.

연극은 도입에 해설자의 시대적 역사적 배경과 당대를 설명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이영녀는 안숙이라는 여인 휘하에서 몸을 파는 여자로 나오며, 그녀와 안숙이네와의 대화로 극이 전개된다. 이영녀는 28세이지만, 30세를 넘어 보일 만큼 얼굴이 초췌한 것으로 소개가 된다. 머리를 박박 깎은 12세의 소년과 그 소년의 15세 소녀가 이영애의 자녀로 소개가 되고, 장롱속에서 등장을 하고, 장롱 속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다. 여인들의 어려운 삶을 팔자 탓으로 돌리는 넋두리가 전반부에 깔린다.

이영녀가 성매매를 하는 이유는 자신보다는 자식인 명순과 관구를 위해서라는 것도 소개가 된다.

이영녀는 정가의 집에서 불미스러운 일로 안숙이네하고 약간의 언쟁을 하다가, 성매매를 한 죄로 순사에게 잡혀가고 일 막은 끝난다.

2막은 같은 무대지만 강영원의 집으로 설정이 된다. 주인은 무슨 의회의원이고, 목화를 거둘 계절이 되면 엄청나게 돈을 벌게 되고 지금은 경제적으로나 신분으로나 괜찮은 인물으로 소개가 된다. 이영녀는 성매매로 30일 동안 구류 당했다가 경찰서장의 소개로 강영원을 알게 되고, 강영원이 자신의 면화공장 공녀로 일자리를 마련해 준다.

2막은 강영원이 이영녀에게 소실이 돼 주기를 원하는 것으로 기일네와 인범이네의 대사를 통해 전달된다. 그러나 이영녀는 이를 거절하고 공장에만 나가지만, 결국에는 공장장과의 싸움으로 일을 못하게 된다. 기일과 기일네는 곰보로 설정이 되고 기일은 언제나 음탕한 눈빛으로 이영녀를 바라보고 자주 집적거리고 치근거린다. 이영녀는 기일을 그럴 때마다 완강하게 뿌리친다. 그 때 남편 친구 임도윤이 찾아와 이영녀의 남편 청운의 죽음을 알린다.

3막에서는 한겨울로 설정이 된다. 이영녀는 유 서방이라는 사람과 재혼해 사는 것으로 소개가 된다. 그러나 이영녀는 남편의 학대와 폭력으로 차츰 병들어간다. 유서방은 의붓딸에게까지 성희롱을 하는 언짢은 인물로 묘사가 된다. 아내가 병이 들거나 말거나, 병이 깊거나 말거나, 유 서방은 자신의 음욕을 채우기에만 급급해, 결국 이 영녀는 어린자식이 있고 가까운 이웃이 있지만, 결국에는 천하에 믿고 의지할 데가 한 군데도 없음을 알고는 절망감에 쌓여 실성한 듯 춤을 추거나 노래를 흥얼거리는 행동을 드러낸다.

대단원에서 이 영녀는 집을 나가 눈보라 속에서 죽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이서림, 남미정, 김정호, 문경희, 김정은, 강진휘, 김정환, 심완준, 정혜선, 우정원, 황선화 등 출연자 전원의 열연과 성격창출은 국립극단의 새로운 도약을 감지하기에 충분하다.

제작총괄 박현숙, 기획 손신형, 무대 이태섭, 조명 김창기, 의상 이윤정, 음악 장영규, 안무 금배섭, 분장 백지영, 소품 강민숙, 방언지도 최승혜, 조연출 변혜훈, 무대감독 신용한, 기술감독 신용수, 그 외 스텝 진의 열정과 노력이 드러나, (재)국립극단의 김윤철 예술감독, 김우진 작, 박정희 연출의 <이영녀>를 연출력이 감지되고 출연자의 열연이 기억에 남을 한 편의 걸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글] 문화뉴스 공연칼럼니스트 박정기(朴精機) artieto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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