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중, 조씨고아 역 배우 이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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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색의 귀재, 고선웅이 돌아왔다.

국립극단은 내일부터 22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 고선웅 연출의 새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을 올린다. 이번 작품은 '칼로막베스', '홍도', '아리랑' 등을 통해 고전의 남다른 재해석을 선보여 찬사를 받아온 고선웅 연출이 중국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조씨고아趙氏孤兒'를 직접 각색하고 연출한다.

복수를 위해 20년을 기다린 필부의 씁쓸한 이야기 공연은, 조씨 가문 300명이 멸족되는 재앙 속에서 가문의 마지막 핏줄인 조삭의 아들 '고아'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자식까지 희생하게 되는 비운의 필부 '정영'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연극은 잡극의 연극적 특성을 반영한 최소한의 무대로 자유롭게 시공간을 넘나드는 연극성이 강조됐다.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의 프레스 리허설이 3일 오후에 열렸다. 전막 시연 후, 고선웅 연출과 기자간담회를 통해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작품에 대한 연출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 고선웅 연출가가 기자들에게 질의를 받고 있다.

이전에 명동예술극장에서 이번 작품을 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번 작품을 맡은 소감은?
ㄴ 고선웅 :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예상보다 배우들이 감동적으로 잘해줘서 큰 물의는 없었다. (오늘 프레스 리허설) 중간에 있던 커튼 문제 이외에는 생각대로 잘 진행된 것 같다. 그리고 연출이 이곳에서 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실제로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연극이란 여러 부분이 다 동의가 되어야하는 장르기 때문이다. 국립극단에서 제안해주셔서 감사하게도 바람이 이뤄졌다.

연극 '조씨고아'를 통해 내비추고픈 의도와 작품에 대한 설명은?
ㄴ 고선웅 : 13세기 경 희곡이다. 셰익스피어 전 작품인 것이다. 작품은 멜로드라마같이 감동적이며, 구비 구비마다 구성이 살아있다. 겁 없이 뚝뚝 박력 있고 박진감 넘치는 작품이다. 이런 작품을 명동예술극장에서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15년 현재에 7~800년 전의 무겁고 육중한 주제의식을 다뤄보고 싶었는데, 그런 작품이 바로 '조씨고아'였다. 더구나 연극적 완성도도 갖고 있는 작품이어서 꼭 현대의 관객들을 만나게 하고 싶었다.

원작 번역본은 어떤 것을 썼는지 궁금하다. 또한, 오는 13일에 동숭아트센터에서 극단 해를보는마음의 '조씨고아'가 공연된다. 그 연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ㄴ 고선웅 : 예전에 '조씨고아'가 공연됐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극단 해를보는마음의 공연소식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아마 다른 스타일이지 않을까. 그 공연과 우리 공연 모두 잘됐으면 좋겠다.

이번 작품의 번역은 한양대 오수경 교수님이 맡아주셨다. 원작에 비해 많이 손질됐다. 마차가 지나간다는 식의 설정과 뽕나무에 대한 얘기 등은 '설자(문학 작품에서, 어떤 사건을 이끌어 내기 위하여 따로 설명하는 절)'에서 언급된 부분이다. 맨 마지막 영공이 나오는 장면에서의 것도 원래는 없다.

원작보다 대사를 많이 줄였는지?
ㄴ 고선웅 : 꽤 많이 줄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워낙 작품이 길기 때문이다. 또한 원작에서 말로 하는 부분과 노래하는 곳이 따로 있는데, 중복이 생각보다 많았다. 모두 다 집어넣으면 중언부언이 될까봐 정리하게 됐다.

 

   
▲ 기자들의 질의에 응답하는 고선웅 연출가

작품은 내용적 측면에서 '조씨고아'가 사람의 의리나 도를 지켜야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떤 의도를 담았는가?
ㄴ 고선웅 : 평소에 SNS를 잘 하지 않는다. 요새 SNS와 문자 등의 탓인지 쉽게 자신의 말을 내뱉고들 한다. 예전에는 자신이 내뱉은 말이 인생을 좌우할 만큼 중요했는데, 이제는 '말'의 중요성이나 중압감이 많이 사라졌다. 식언이 많아진 시대다. 정치권도 그렇지만 우리의 일상도 별반 다르지 않다. 더구나 중동에서도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세계 곳곳에서 '복수'가 이런저런 형태로 일어나고 있다. 우리 일상에서도 사소한 시비로 인해 생겨나는 보복 범죄들도 많고 말이다. 이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연극적 형식도 참 매력적이지만, 작품 내용이 가지고 있는 육중한 주제도 현대에 중요한 메시지를 주지 않을까 싶었다.

배경음악이 나오고 있는데도 굳이 콘트라베이스를 하나 무대에 배치했다. 그 이유는?
ㄴ 고선웅 : 콘트라베이스라는 악기 자체가 이번 작품과 정말 잘 어울린다. 원래는 콘트라베이스 네 대를 배치하려고 했지만, 이미 다른 공연에서 배치된 적이 있기도 하고, 한 대만으로도 힘이 있겠다 싶어서 한 대로 결정했다.

작품 전체는 비극적이지만, 희극적인 요소를 중간에 집어넣었다. 가령 "우걱우걱", "콜록콜록" 같은 의성어를 집어넣었다. 원작에서도 있었던 부분인가?
ㄴ 고선웅 : 원작에서 차용한 부분이다. "콜록콜록"이라는 의성어를 사용했던 까닭은, '나이 듦'에 대한 묘사를 의성어 하나로 표현한 것이다. 조씨고아가 장성해 복수를 하기까지는 2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야 하는데, "콜록콜록"이라는 의성어 하나, 느려진 말투 등을 통해 정영이 겪어온 그 20년의 세월을 담아내고 싶었다. 정영이 하얀 색으로 분칠했던 것 또한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리고 만약 13세기에 했던 연극이라면 "우걱우걱", "냠냠"이라는 대사를 통해 실제로 배우들이 연기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원작은 굉장히 차분하다.

 

   
 

작품 설명에 보면 '잡극'의 무대 형식을 빌려왔다고 하는데, '잡극'의 무대 형식은 정확하게 어떤 것인가? 또한 이 무대와 잡극의 무대를 비교한다면?
ㄴ 고선웅 : 잡극의 무대형식은 실제로 본 적이 없어 정확한 설명이 어렵다. 다만, 오수경 선생님께 들었던 얘기를 빌려 설명하자면, 연주와 시, 그리고 노래가 있던 연극이다. 엄격한 규율을 지닌 노래와 춤과 함께 연극이 이뤄진 것이다. 무대도 프로니시엄 무대 같이 객석을 향해 열려있고 빛도 없는 공간에서 공연됐다고 한다. 또한, 다른 분이 제안을 주시기는 했지만, 이 작품을 떠올리며 머릿속에도 배경에 천으로 커튼을 치고, 빈 무대를 만들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각색의 귀재'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이번 각색의 어려운 점과 중점은?
ㄴ 고선웅 : 원래는 원형 그대로 가볼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나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됐다. 작품 내에는 중언부언되는 곳이 많고, 우리 시대에 맞지 않는다. 지금 듣기에는 다소 긴 호흡이 우리와 맞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 그러다 보니 각색이 불가피했다. 각색이라는 덧칠을 할 때는, 관객들의 관점이 보다 많이 고민된다. 오늘 방금 전까지도 도안고에게 공손저구의 관계를 의심받는 정영의 장면을 바꿨다. 또한 원작에서 정영의 아내는 아이를 낳았다고만 언급이 되지만, 작품에는 아내가 정영의 행동을 말리며 어머니가 겪는 아픔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 내용에 관련된 개연성을 더욱 확장하며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그 동안 '칼로막베스', '홍도', '아리랑' 등 비극들에 대한 작업을 많이 하면서, 희극적 부분을 강조하는 스타일을 보여 왔다. 특별히 자신의 연출 행적을 뒤돌아본다면, 어떤 추구하는 스타일이 있던 것인가?
ㄴ 고선웅 : '칼로막베스' 작업 때에는 프로덕션이라는 사적인 차원에서의 작업이었다면, 그 다음부터는 경기도립극단에 있으면서는 사회적 책임감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장난이 없어지며 조금씩 진지해지고 있다. 연극을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인지에 대해 자꾸만 고민하다보니, 요즘의 형식들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 2000년 초에 잡극에 대해 처음 접했을 때 굉장히 대단하다는 느낌을 가졌었다. 그래서 이후 작품들에 서사적 장치들이 조금씩 들어갔다. 이번 '조씨고아'와 지난 '홍도'를 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연극은 연극임을 들키고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해온 작품 중에 이번 작품이 가장 좋았다.

 


 

 
셰익스피어는 당대의 유명 이야기들을 각색했던 사람이다. 고선웅도 우리 시대의 '셰익스피어'이지 않나 싶다. 관객들이 이 연극을 어떻게 봐줬으면 좋겠는가?
ㄴ 고선웅 : 관객 분들이 이 작품을 좋아하실 것 같다. 2시간 20분 정도를 열연하는 정영 역의 배우(하성광)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감수성으로 연출의 의도를 잘 잡아가는 멋진 배우다. 또한 작업하면서 모든 배우들이 워낙 잘해줘서 너무 편했다. 작품하면서 한번도 불란이나 훈계없이 잘 만들어졌다. 나의 이 기억처럼 관객들도 봐주면 좋은 공연으로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지 않을까.

[글]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사진·영상]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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