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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국립극단과 고선웅 연출가가 첫 만남을 이뤘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을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올리는 것이다. '칼로막베스', '홍도', '아리랑' 등을 통해 고전의 남다른 재해석을 선보여 찬사를 받아온 고선웅 연출이 중국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조씨고아趙氏孤兒'를 직접 각색하고 연출한다. '조씨고아'는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수록된 춘추시대의 역사적 사건을 중국 원나라 때의 작가 기군상(紀君祥)이 연극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으로 18세기에 유럽에 소개돼 '동양의 햄릿'이라는 찬사를 받은 명작이다.

 

   
 

서사중심의 연극을 지향하는 국립극단의 새로운 도전인 동시에 연극의 놀이성을 극대화해 비극 속의 웃음과 공허를 찾아내는 고선웅 연출의 야심작으로 흥미진진한 고전읽기의 기회를 제공한다. 복수를 위해 20년을 기다린 필부의 씁쓸한 이야기 공연은 조씨 가문 300명이 멸족되는 재앙 속에서 가문의 마지막 핏줄인 조삭의 아들 '고아'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자식까지 희생하게 되는 비운의 필부 '정영'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온갖 악행을 서슴지 않는 도안고와 그에 맞서 한 아이를 살리기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내놓는 '한궐', '공손저구' 등 의인들의 살신성인이 비장미를 더한다. 많은 사람들의 희생 끝에 살아남은 고아 '정발'을 자신의 자식이자 도안고의 양자로 키우며, 20년 동안 복수의 씨앗을 길러낸 정영은 마침내 도안고에게 복수를 행한다. 그러나 연극은 복수 끝에 씁쓸한 공허만이 남는 그의 인생을 보여주며 과연 '복수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극단 관계자는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중국 희곡에 관심을 갖게 된 고선웅 연출이 4년 전 희곡 '조씨고아'를 읽고 원작이 가진 연극성과 묵직한 주제에 반해 국립극단과의 작품 논의 과정에서 먼저 제안했을 정도로 애정을 가진 작품"이라고 전했다. 고선웅 연출은 원대 잡극이 자신이 생각하는 연극의 원형에 가장 가깝다고 말하며, 잡극의 연극적 특성을 반영한 최소한의 무대로 자유롭게 시공간을 넘나드는 연극성을 강조할 예정이다. 연극계 대표 배우들이 선보이는 '선수들의 학예회'를 표방하는 이번 공연은 고선웅 특유의 만화적 상상력과 비극 속에 내재된 희극성을 극대화한다. '푸르른 날에', '홍도'에 이은 또 하나의 고선웅표 비극이 기대된다.

 

   
 

'복수'는 오랫동안 문학의 커다란 화두였지만 누구도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비극적 주제다. 이들은 무대를 통해, 법이라는 제도가 생기기 전 중국 사회에서 용인됐던 '복수' 이야기를 지금 이 시대에 가져오면서 연출은 '복수는 해야 하지만 그 끝이 후련하지만은 않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복수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근현대를 지나며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안고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모순된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에게 고전을 통해 복수의 의미와 현상을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는 자리가 마련되지 않을까.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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