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앙상블오푸스 정기연주회
글: 여홍일(음악칼럼니스트)
음악이 열어주는 ‘무한’으로 관객들을 새로이 이끌어
공연기획사 오푸스의 전업 작곡가이자 대표인 류재준씨는 지난 11월 6일 토요일 오후에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그 남자, 그 여자 이야기’ 공연이 앙상블오푸스로선 앙상블의 정점이 될 것이라고 공연 전 로비에서 내게 귀띔했다.
이날 공연은 앙상블오푸스의 스페셜 프로그램으로서 슈만의 <시인의 사랑>과 휴고 볼프의 <이탈리아 가곡집>을 지휘 랄프 고토니의 앙상블 편곡 버전으로 선보인 자리였다.
직전 전주 10월 말에 끝난 오푸스 주관 2021 서울국제음악제가 두 개의 메인 공연과 다섯 개의 실내악 공연으로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터여서 이날 제18회 앙상블오푸스 정기연주회는 큰 행사를 치르고 난 후 일종의 휴식의 자리 같은 연주회로 마련된 느낌을 주었다.
관객의 관람 소감도 재미있게 봐서 한참 웃었다거나 연기가 병행되어 가사나 리트 모두 재미있었다는 평들이 주류를 이뤘다. 공연 콘텐츠가 슈만 <시인의 사랑>과 휴고 볼프 <이탈리아 가곡집> 같은 예술가곡 연주회임에도 두어 달 전 작곡가 류재준이 세종문화회관 씨어터홀에서 개최한 ‘아파트’공연에서 관객들이 재미있게 봤다는 관람평 이후 재미있었다는 관람평을 들은 지는 나로서는 꽤 오랜만이었다.

지휘 랄프 고토니의 앙상블 편곡 버전으로 선보인 자리
내 개인적으로도 5년 전 앙상블오푸스가 휴고 볼프의 <이탈리아 가곡집>을 무대에 올렸다는데 어쩐 일인지 5년 전 공연 관람의 기회를 놓친 것 같아서 아쉬움을 안고 공연장을 나왔을 만큼 앙상블오푸스만의 재해석으로 ‘낭만적’ 사랑의 두 얼굴을 선보인 것 같아, 이런 완성도 높은 공연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공연기획사 오푸스의 공연기획 저력과 특성이 새삼 돋보였다.
국내의 공연기획사들 성격이 대부분 크레디아나 빈체로 마스트미디어 등 굵직한 공연기획사들이나 군소 공연기획사들 모두 국내외 연주자나 외국의 유명 오케스트라들을 계약해 국내에 초청, 무대에 올리는 것이 대부분임에 비춰 오푸스는 예술감독으로 있는 전업 작곡가 류재준이 지난달 서울국제음악제의 예처럼 자신의 창작 교향곡 2번을 직접 초연으로 무대에 올리기도 하고 탄탄한 합주력을 겸비한 이번의 앙상블오푸스처럼 공연기획사가 자체 앙상블을 운영하는 독특한 체제를 갖춘 점에서 차별성을 보인다.
IBK홀이 어울릴 법도 했을 터인데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란 큰 홀에서 ‘그 남자, 그 여자 이야기’의 주제로 선보여진 이 날 공연은 앙상블오푸스가 5년 전, 한국 초연으로 소개했던 <휴고 볼프 이탈리아 가곡집>(2016.10.05)의 흥행에 힘입어 로베르트 슈만의 ‘시인의 사랑’이 더해졌다.
이 두 레퍼토리 모두 낭만주의 가곡이 꽃피우던 시기 작곡된 독일 연가곡을 랄프 고토니가 재해석한 것으로, 사랑의 두 얼굴이라 해도 좋을 ‘낭만적인’ 프로그램들로 키어런 카럴이 열연한 슈만의 <시인의 사랑>이 깊다면 소프라노 임선혜와 카럴이 함께 출연한 볼프의 이탈리아 가곡집은 생생하고 즐거웠던 점에서 대조를 이뤘다.
랄프 고토니의 위촉 초연곡 <시인의 사랑>은 단순히 편성한 것 이상의 의미를 지녀 그는 음악 작품을 경전화하고 고정된 채로 받아들이는 대신 그 안에 깃들어 있는 음악의 정신을 새로이 표현하고자 했다.
후반부에 임선혜와 카럴이 동시 출연한 볼프의 <이탈리아 가곡집>의 새로움은 현실감이 넘쳐 볼프가 남긴 46개 곡의 세련된 미니어처는 고백과 거절, 맺어짐과 행복, 사랑싸움과 불화와 다툼과 화해 등 사랑의 현실적인 민얼굴을 잘 보여줬다.
“슈만의 <시인의 사랑>이 깊다면 볼프의 <이탈리아 가곡집>은 생생하고 즐거웠다.”
오푸스측은 “고토니의 편곡은 세심한 관현악법과 곡 순서의 재배치를 통해 전곡을 하나의 스토리로 이해하게 해줬고 피아노로는 느낄 수 없었던 다양한 감성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 주어 어렵고 먼 이야기가 아니라 늘 겪는 친숙한 이야기로 바꿔냈다”고 공연의 배경에 관해 설명했다.
올해 지난 4월 9일의 예술의 전당 IBK홀에서 있었던 류재준작 플루트 사중주 연주회에서 볼 수 있었듯 앙상블오푸스는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 각지에서 활동하며 인정받은 연주자들이 모여 정기적인 연주 활동과 바로크 시대부터 현대음악까지 폭넓고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선보이는 오푸스 운영의 페스티벌적 성격의 실내악 연주단체다.
유동적 멤버 구성을 통한 다양한 편성의 레퍼토리 소화와 예술감독 류재준이 선보이는 프로그래밍과 리허설의 진두지휘까지 음악의 완성도를 위한 체계적인 기획과 구성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를 통해 각 곡에 맞는 멤버들과 교류하고 더 폭넓은 음악을 소개하는 장을 마련하는데 이번 ‘그 남자, 그 여자 이야기’ 또한 앙상블오푸스가 만드는 챔버 오케스트라의 최대규모를 통해 서사적인 흐름을 관객이 누려보도록 했다.
이 작품들은 현과 관, 저명하고도 견고한 실력의 연주자들로 이루어진 앙상블오푸스와 함께하며, 성악과 함께 여러 가닥으로 엮이는 새로운 음의 직조로 펼쳐져 새로운 색채와 뉘앙스의 랄프 고토니의 새로운 작품 해석은 그 자체로 음악이 열어주는 ‘무한’으로 관객들을 새로이 이끈 것 같다.
※ 외부 기고 및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