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일: 2023.11.23
캐스팅: 김현진, 이석준, 이현진, 그리고 안소니
장소: 예스24스테이지 3관
좌석: 7열 우측 통로

"코끼리에 대해 얼마나 아세요?"

코끼리는 멸종 위기 동물이다. 코끼리는 모계 사회를 이루고 살며 포유류 중에 임신 기간이 가장 길다, 무려 22개월. 코끼리는 가족의 뼈를 구분할 줄도 안다. 또, 눈물을 흘릴 줄도 안다. 다윈은 코끼리가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했다. 아, 물론 악어는 빼고.

리뷰는 안 쓰고 뜬금없이 웬 코끼리 얘기인지 궁금하실 것이다. 아마 극 중에서 사라진 의사, 로렌스의 행방을 찾던 병원장 그린버그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로렌스를 마지막으로 만난 환자 마이클에게 그의 행방을 물었더니 하는 말이라고는 온통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뿐이었으니 말이다.

마이클은 코끼리 이야기 속에 사건에 얽힌 진실과 거짓을 교묘히 집어넣는다. 그리고 혼란에 빠진 그린버그와 관객들에게 한 가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나랑 거래할래요?"

연극 '엘리펀트 송'은 표면적으로는 실종된 로렌스를 찾는 내용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마이클이라는 소년의 사랑과 결핍에 대한 이야기이다. 엄마 뱃속에서 22개월, 그 시간을 부러워하던 아이의 쓸쓸한 모습은 마치 성냥을 태워 행복한 크리스마스의 만찬을 즐기던 성냥팔이 소녀와도 같았으리라. 그저 사랑하는 이의 따뜻한 눈빛 한 줄기를 바랐던 이 작은 아이의 외침은 끝내 누구에게도 닿지 못한다. 눈물에 잠겨 흐릿해진 눈으로 바라본 아이의 슬픔은 코끼리의 눈동자처럼 검고 깊은 암흑이었다. 

마이클의 모든 말들은 상징으로 가득하다. 지나가는 말로 던진 듯한 가벼운 말조차 진실을 가리키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마이클이 했던 모든 이야기의 조각들은 점점 하나의 퍼즐을 이뤄 그에 관한 한 가지 진실, 그가 기다려 온 결말을 보여준다.
장난인지 진심인지 모를 마이클에 말에 내내 끌려다니던 사람들은 모두 그 예상치 못한 진실 앞에서 할 말을 잃는다. 우리는 끝까지 마이클의 말에 온전히 귀 기울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지 모른다.
마이클, 그 아이는 처음부터 진실을 말하고 있었는데. 

충격으로 멍해진 정신을 붙잡고 거리로 나서니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가득했다. 부은 눈을 가라앉히는 시린 공기를 맞으며 나도 모르게 곳곳에 보이는 마이클의 잔상을 좇았다. 모자와 장갑을 단단히 눌러쓰고 그것도 모자란다는 듯이 목도리로 둘둘 감긴 채 엄마 손을 잡고 길을 걷는 아이, 서로의 손을 잡고 따뜻한 온기를 나누는 연인들, 즐겁게 웃으며 붕어빵 한 봉지를 나눠 먹는 친구들.
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자꾸만 마이클이 떠올랐다.
사랑, 마이클이 원했던 단 하나.

사진=강시언 / 
사진=강시언 / [리뷰] 연극 '엘리펀트 송', 진실은 곧 알게 될 거예요.

 

텅 빈 집안에 놓인 크리스마스트리 밑에서 혼자 코끼리 노래를 불렀을 내 작은 아이를 꼭 안아주며 말하고 싶다. 메리 크리스마스, 마이클.

문화뉴스 / 강시언 kssun08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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