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일: 2024.03.26
캐스팅: 최정원, 마이클 리, 산들, 이서영, 최재웅, 박인배
장소: 광림아트센터 BBCH홀
좌석: D열 중앙

세상에는 중앙을 가로지르는 어떤 '선'이 존재한다. 우리가 '평균', '평범', '보통'이라고 부르는 이 보이지 않는 선은 아무도 모르게, 그러나 확실하게 삶에 기준을 그어 놓는다.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선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쓰며, 어떤 이유로든 선에서 멀어졌다면 어떻게든 다시 선 가까이로 돌아오려 발버둥 친다. 이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치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듯, 우리는 평범 주위를 맴돈다. 그 이유를 묻는다면 아마도 그것이 normal, 평범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우리는 평범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간다.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은 생각보다 평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 아들, 딸로 이루어진 굿맨 가족은 너무나 평범한 모습이지만 속으로는 저마다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과거의 아픔을 잊지 못하는 엄마와 엄마 주변만 종일 맴도는 아들, 그런 엄마의 사랑을 바라는 딸과 가족의 평화를 지켜내려 고군분투하는 아빠까지. 시간이 흐를수록 문제는 더욱 커져만 가고 가족들은 점점 지쳐가는데... 굿맨 가족은 위기를 극복하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들이 꿈꿨던 '평범'이란 과연 무엇일까?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은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활기찬 하루를 시작하는 가족의 모습은 여느 영화나 드라마에서 지겹게 본 듯한 장면들과 다를 바가 없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실금 같은 균열이 여기저기로 퍼져있다. 잘못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깨어질 듯 아슬아슬해 보이는 가족의 하루는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불안감을 선사한다. 불안이 일상이 된 가족들의 눈동자는 공허와 피로, 짜증과 무기력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로 가득 차 있다. 지칠 대로 지친 채로 집을 나서는 이들의 모습은 가족이라는 이름에 달린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사랑과 미움, 이 상반된 감정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닫게 해 주는 존재가 바로 가족일 것이다.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의지가 되었다가도 한 집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 숨이 막혀오기도 하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과 아픔을 주는 나의 가족.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은 모두가 한 번쯤은 느껴보았을 법한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한 양가감정을 예술적으로 풀어낸다. 가족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이 폭발하듯 펼쳐지는 무대는 한 집안, 한 공간을 넘어 모든 행복과 불행이 혼재된 커다란 한 세상을 보는 듯하다.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의 이야기는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심장 안 깊은 구석 어딘가에 머무는 가족이라는 소중한 존재에 대해 다시금 떠올리고 되돌아보게 한다.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평범함, 그 주변 어딘가의 낙원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평범함, 그 주변 어딘가의 낙원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름 그대로 넥스트 투 노멀, 평범함 그 근처 어딘가로 대표된다. 평범해지려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 평범함 주변 어딘가에 머무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 이 세상이 정한 평범의 기준에 맞지 않더라도 그 주변 어느 다른 세상에서 편안히 머물 수만 있다면 그것이 더 행복한 삶이 아닐까. 아픔 없고 매일 웃고 언제나 완벽한 인생도 좋지만, 때론 아픔에 울부짖고 유혹에 흔들리며 삐뚤게 걷더라도 그 길가에 놓인 기쁨을 발견할 수 있는 인생이라면 충분히 즐겁지 않은가. 평범으로 가는 길이 힘들다면 멈춰서도 괜찮다. 그곳이 평범함 근처 그 어딘가, 우리가 마음 놓고 쉴 곳이라면 말이다.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이 가진 이미지는 작품의 메시지만큼이나 깊고 강렬하다. 어딘가 범상치 않은 쨍한 보랏빛이 무대 전체를 휘감고, 누구의 것인지 모를 눈동자가 무대 한가운데에서 떠나지 않는다. 내면을 꿰뚫어 보는 듯한 묘한 분위기는 세 개 층으로 구분된 가족의 보금자리를 감싸고 돌며 이들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삐끗했다간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무대의 난간 구조 역시 위태로운 가족의 일상을 효과적으로 나타내며 외줄을 타듯 아슬아슬한 느낌을 준다. 이렇게 극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맞추어 시각적인 디테일을 놓치지 않은 부분이 인상적이다. 

무대를 수놓는 '색'의 의미는 다양하다. 작중 인물들이 입고 나오는 의상의 색부터 조명, 소품 등 다양한 부분에서 색깔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데, 이 색에 담긴 뜻을 파악하는 것 또한 뮤지컬을 즐기는 또 하나의 재미가 될 것이다. 빨강, 파랑, 보라, 검정 등 명확히 구분되는 색의 활용과 색이 존재감을 미치는 장면에서의 상황 및 인물들의 감정을 엮어가며 관람한다면 아마 더 흥미롭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평범함, 그 주변 어딘가의 낙원

 

무엇보다 감정의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이니만큼 배우들의 연기가 전체적인 완성도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데, 배역에 꼭 들어맞는 캐스팅이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최정원 배우와 이서영 배우의 케미스트리가 돋보였다. 지난 시즌에 이어 다시 엄마와 딸로 만난 두 배우의 깊은 감정 교류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현실에 충분히 있을 법한 자연스러운 연기도 가족의 일상을 다루는 이야기 구조에 잘 어울려 몰입도를 높였다. 서로 다른 사랑에 묶인 모녀의 어긋난 관계성을 부드럽게 풀어냄으로써 가족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하는 계기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딸의 입장에 놓인 본인에게 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더욱 와닿았음은 두말할 필요없이 당연한 사실이기에 두 배우의 연기를 더욱 감명깊게 보았다.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은 평범한, 아니 어쩌면 평범해지려 애쓰는 사람들에게 평범하지 않은 위로를 건네는 작품이다. 인생을 살면서 '나는 어디쯤 와 있지?'하며 끊임없이 저 스스로에게 자신의 위치를 묻는 모든 현대인에게 꼭 한 번 관람하기를 추천한다. 세상이 정한 어떤 기준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이다. 한편,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은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오는 5월 19일까지 공연된다. 
 

문화뉴스 / 강시언 kssun08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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