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예술센터 2016 시즌 프로그램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박 연출의 속마음

   
지난 19일 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박근형 연출가


[문화뉴스]
지난 한 해, 연극계를 휩쓴 이슈는 바로 '검열'이다.

지난 해 9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가 운영해온 문학창작 지원 및 연극 지원 사업의 선정 과정에서 위원회 측의 특정 예술가에 대한 지원 배제 압력 등 개입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부터 검열에 대한 이슈가 불거져 나왔다. 박근형 연출가가 이전 연극 '개구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풍자를 했기 때문에 문화예술위의 연극 지원 창작산실 사업 지원 대상에서 배제됐다는 논란이 있었던 것이다.

바로 다음 달인 10월에도 청년 연극인의 공연 프로그램인 '팝업시어터'에서 젊은 연출가 김정이 세월호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공연을 방해받고, 대본 제출 요구까지 받은 일이 드러나며 공연예술계의 검열 논란이 더욱 가속화됐다.

'예술가 검열'이라는 논란의 중심에 있던 박근형 연출가가 공식 석상에서 처음으로 이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지난 19일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열린 '남산예술센터 2016 시즌 프로그램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입을 연 것이다. 기자간담회 당시 박 연출이 냈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2013년 국립극단 가을마당으로 공연됐던 연극 '개구리'가 지난 해 있었던 검열 사태들에 연루됐다. 최근 검열 파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ㄴ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 지 모르겠다. 우선 '개구리'부터 얘기를 시작해보자면, 당시 모 기자가 연극을 보고나서 국립극단 측에 대본을 달라 요청했었다고 한다. 그때 국립극단에서 그 기자에게 준 대본은 연습용 대본이었다. 이후 그 기자와 통화를 하며 '연극이니까 연극으로 봐 달라'고 말했었다. 나는 일본에 있었고, 지인이 내게 그 기사를 보여줬다. 그때 기사가 사실과는 상당히 다른 부분이 많았다는 점을 발견했다. 나는 그 작품의 완성도가 뛰어나다고 보지 않는다. 그 연극은 일반 연극 관계자나 연극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다룰 만한 내용이 아닌, 사석에서 논할 만한 정도의 것이라 생각한다. 작년에 그들이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개구리' 때문에 지원 사업에서 자진사퇴 종용을 받은 것이라고들 얘기한다.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본다. 그러나 나 같은 경우는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한다. 더 심하게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나. 이번에는 봄에 공연을 하게 됐다. 빨리 (예술계에도) '봄'이 와야 되겠다.

 

박 연출이 보기에, '개구리'라는 공연 자체가 풍자적으로 충분히 다룰 수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기사가 너무 선정적이고 문제적으로 쓰였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ㄴ 그렇다. 그때 어버이 연합에서 극장을 어떻게 하겠다는 식의 협박도 했었던 걸로 알고 있다. '개구리'라는 연극은 연극 평론가나 연극에 관심 있는 이들한테는 '아 저런 연극이 있었구나'하는 정도의 연극으로 다가올 거라 생각한다. 대단한 반향을 일으키는 연극도 아니고, 풍자가 아주 새롭거나, 누군가가 그 공연을 보면 아주 분노할 만한 연극도 아니다. 원래 아리스토파네스의 텍스트가 그렇다. 그런데 당시 기자가 (기사를) 그렇게 써서 자꾸 회자되고 있다. 앞서 언급했지만 ('개구리'는) 잘 만든 연극이 아니다. 선문답으로 이뤄지는 지루한 고전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구성한 것이다. '청소년들도 희랍비극을 이렇게 만들면 쉽게 이해할 수 있겠구나' 라는 정도로 담백하고 약간의 유쾌한 요소를 넣어 만든 연극이다.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 아닌데, 계속 거기서 이야기가 진행되어 왔고 그러다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가 떠오른다. 어떤 예술가가 평론가의 평론에 사로잡혀 계속 깊이에 대해 고민하다가, 결국 파멸했다는 내용 말이다.

사람들이 선입견인지 모르겠지만 '개구리' 이후 박 연출이 점점 더 풍자적인 내용을 다룬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ㄴ 그것은 사실 나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이전에 더 강렬하고 직접적인 작품을 더 많이 했었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내게 큰 관심이 없었거나, 내가 아직 연극적으로 미성숙해서 발견해지 못했을 것이다. 예전에 극장에서 방염처리도 안된 상태에서 온몸에 불을 붙이고 분신하는 연기도 시도해봤다. 그때가 아마 강경대 학생이 죽었을 때일 것이다. 나는 어느 날 갑자기 변한 게 아니다. 내 안에는 글을 쓰거나 연극을 만들 때의 다양한 것들이 있다. 이럴 때는 이런 감수성이 발동되고, 저럴 때는 저런 얘기를 하고 싶다거나 하는 것처럼, 그리고 가령 청소년극에 대한 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 차원인 것이다. 요즘 들어 사회적인 풍자나 발언의 정도가 점점 진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지난 19일 서울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열린 '남산예술센터 2016 시즌 프로그램 기자간담회'에서 참여 작가 및 연출가들이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한편, 박 연출의 신작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오는 3월 10일부터 27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공연된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관객들에게 공개될 이 작품에 대해 박 연출은 "이 작품을 연습했던 배우들에게는 유독 미안한 감정이 있었다"라 전하며, "다행히도 남산에서 기회를 줘 연극을 할 수 있게 됐는데, 배우들에게 빚을 갚은 기분이다"라고 덧붙였다.

연극은 2013년 한국 경남 양산, 1945년 일본 오키나와, 2004년 이라크 팔루자, 2010년 한국 서해 백령도라는 상이한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역사적 사건들을 다룬다. 이 역사적 사건들은 하나의 외침을 공유한다. 바로 "살고 싶다"는 외침이다. 박 연출은 논란의 중심이 됐던 이 작품을 통해, 한낱 과거 역사의 잔재로 가려질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동력으로 삼고자 했다고 전한다. 표현의 자유를 속박하려는 거대한 압력에 억눌려 있었던 박 연출이 '군대, 국가, 전쟁'이라는 거대한 담론 아래 가려져 있던 개인들의 삶과 외침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글]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사진, 영상]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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