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시대의 두 거장, 바흐와 헨델

 
[글] 문화뉴스 아티스트에디터(아띠에터) 김수영 panictoy27@mhns.co.kr 음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어디까지일까, 실용음악과 건반을 가르치면서 음악방송 '음악잡수다' DJ를 맡고 있다

[문화뉴스] 서양 음악사의 대체적인 시대적 순서는 고대(종교 혹은 제시의식에 쓰였던 하나의 도구로서의 음악)-중세(단선율 음악이 지배적이었으며 한편으로는 대위법이 발생했던 시기의 음악)-르네상스(대위법이 본격적으로 도입되어 발전하던 시기의 음악)-바로크(바흐에 의해 대위법을 기반으로 한 음악들이 꽃을 피웠던 시기)-고전(소나타 형식의 음악들이 발전함)-낭만(가곡과 오페라가 급격히 발전한 시기)-근현대(다채로운 음악적 시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모더니즘 음악의 시기)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지난 '얕게 파보는 서양 음악사 1편'에서 다룬 고대,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의 전반적인 음악적 특징에 이어 이번 2편에서는 바로크 시대의 음악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인물, 바로 바흐와 헨델에 대해 조금 더 집중해 보고자 한다.

▶ '음악의 아버지'? or '대위법과 푸가의 아버지'! 바흐.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년 3월 21일에 독일의 아이제나흐에서 태어났다. 태어나서 약 10살 무렵까지 이곳에서 살았으며 주로 인생의 전성기를 보낸 곳은 독일의 라이프치히 이다. (이곳 라이프치히는 매년 6월에 바흐 음악 축제가 따로 열리기도 한다) 바흐의 집안은 수백 명의 음악가를 배출해낸 음악가 집안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음악가라는 직업은 호사스러운 직업이 아닌, 일종의 목공 같은 장인처럼 여겨졌던 시기였다. 지금처럼 특출하고 특별해 보이는 직업은 아니었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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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시대는 바흐로부터 시작하여 바흐의 죽음으로 인해 끝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바로크 시대에서의 바흐의 음악은 실로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끼친다. 더불어 바로크 시대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근현대 음악가들에게도 바흐는 '반드시 공부하고 연구해야 할, 현대 음악이 존재하기까지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인식되어 있기도 하다.

정말 부지런했던 인생이었다. 약 1200여 개의 작품을 남긴 열정의 음악가였다. 성 토마스 교회(현재에도 남아있는 교회이며 이곳에는 바흐의 무덤이 있기도 하다)에서 27년 동안 교회음악 감독으로 일하며 수많은 작품을 남겼고, 이곳의 합창단 아이들에게 음악과 라틴어를 교육하기도 했다.

어찌 보면 부지런할 수 밖에 없는 인생이었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그 당시에 바흐가 교회음악 감독 일을 하며 작성한 고용계약서를 보면, '교회에서 맡겨지는 임무는 그게 무엇이든 모든 직무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기에 음악감독이었던 그가 아이들에게 라틴어까지 가르치며 매주 열린 교회 예배의 모든 음악을 총괄하는 일을 했었어야만 했다. 

교회음악 감독은 성가대를 지휘하고, 예배의 음악을 편성하고, 연주도 하고 총괄해야 하는 일까지 주어졌는데, 매주 이런 일을 해내며 틈틈이 어린이들의 라틴어 교육까지 했어야만 했던 그는 하루 24시간으로도 모자라는 인생이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다성음악이 대위법이라는 기법으로 발전하게 되는 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을 바흐라고 평가한다. 대위법이라는 작곡 기법은 고대시대부터 단선율로만 작곡되던 음악이 2개 이상의 선율을 동시에 연주하게 됨으로써 생겨났으며, 그러므로 인해 다성(여러 개의 성부)음악이 발전하게 되고, 초기의 다성음악(이를 '오르가눔'이라고도 부른다)이 결국 대위법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또한, 바흐는 푸가(Fugue) 형식의 곡을 많이 남기기도 했는데, 푸가 형식이란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여러 성부가 번갈아가면서 대답하는 형식'을 이야기한다. 조금 더 쉽게 풀어 비유하자면, 한자리에 4명의 사람이 모였다고 가정했을 때, 누군가가 이야기의 주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그 주제에 대해서 다른 세 사람이 돌아가면서 동시에 그 주제를 반복하며 대답하는 형식을 음악으로 표현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바흐 음악의 음악적인 특징이라고 한다면, 아주 질서정연하고 정교한 느낌이 드는 음악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느낌과 주관적인 해석은 듣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으나, 전반적으로 많은 이들이 느끼는 바흐 음악의 특징이 이렇다는 이야기이다. 바흐의 대표곡으로는 'G 선상의 아리아', '바흐의 미뉴에트', '마태 수난곡', '아베마리아'등을 들 수 있다.

 

▲ 바흐의 대표곡 중 하나인 'G 선상의 아리아'.

▶ 바흐의 동시대를 살았던 또 한 명의 천재 작곡가, 헨델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 바흐와 같은 해인 1685년에 독일에서 태어났다. 바흐는 독일에서 태어나 꾸준히 독일이라는 나라에서 음악 활동을 펼쳤지만, 헨델은 주로 영국에서 활동하고 사랑받던 음악가였다.

독일에서 활동하던 도중 잠시 들렀던 영국이라는 나라에 매료되어 1726년에는 결국 영국으로 귀화하기도 한다. 즉, 독일 출신의 영국 작곡가라고 이야기할 수 있으며, 헨델은 영국 왕립 아카데미를 설립하기도 했다. 영국뿐만 아니라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작품을 남기기도 했던 헨델은 독일에서만 꾸준히 활동했던 바흐에 비해 조금 더 진취적이고 활동적인 사람이었다. 

원래는 독일의 궁정음악가로 활동하던 헨델이 잠시 휴가를 내어 여행했던 곳이 바로 영국의 런던이었고 심지어 런던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음악가이기도 했다.

런던에 살았던 헨델의 집이 아직도 남아있으며 이 집은 헨델이 거의 40년 가까이 살았던 집이라고도 알려져 있고, 현재는 헨델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관광객을 모으고 있기도 하다. 또한, 헨델이 다녔던 교회(세인트 조지 교회) 역시 현재에도 남아 있다고 한다. 

바흐보다 아주 대중적이고 화사한 멜로디를 가졌던 것이 헨델 음악의 특징. 바흐가 주로 종교음악을 하며 비교적 경건한 분위기의 음악적 특징을 가졌다면, 헨델은 조금 더 자유롭고 경쾌한 음악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간 사람이었다. 또한, 바흐는 대대로 음악가들을 배출해낸, 음악가가 배출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던 분위기의 집안이었던 것과는 다르게 헨델은 아버지의 반대로 어릴 때 제대로 음악교육을 받지 못했다고도 한다. 법대를 가기 원했던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며 아버지 몰래 클라비어코드를 연습하기도 했는데, 그러다가 들켜서 자주 아버지에게 혼나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 

20대의 헨델은 오페라의 발상지였던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스스로 음악수업을 해나갔고, 그의 화사한 멜로디의 이미지는 이탈리아식 음악의 특징이라고도 볼 수 있어, 그가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보고 들으며 연구했던 결과물이 그대로 드러난 이유라고도 볼 수 있겠다.

헨델의 수상음악은 영국의 왕족과 귀족들이 뱃놀이할 때 배경음악으로 쓰였던 음악으로 유명하다. 이 수상음악은 현재에도 영국 왕실의 주요 행사 때마다 계속 쓰이고 있다고 한다. 그 당시의 런던은 이미 셰익스피어가 살다간, 그래서 이미 문학적으로 발전해있었던 도시였다. 하지만 그만큼 예술이 발달하고 무대가 많았다는 것은 또한 그만큼 경쟁이 치열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마치 오늘날의 뮤지컬들처럼 화려한 오페라들이 수없이 쏟아지고 있던 때였다.

그때 '존 게이'(John Gay)라는 영국의 시인 겸 작곡가가 있었는데, 이 음악가의 '거지오페라'라는 작품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승승장구하던 헨델의 기를 눌러버렸고, 이때 존 게이의 오페라를 뛰어넘을 작품을 연구하며 모색하던 헨델이 하나의 대작을 발표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헨델의 '메시아'이다. 메시아는 헨델이 살아있는 동안 34차례나 공연되었을 만큼 헨델의 대작 중의 하나로 꼽히기도 하는데,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런던의 오페라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헨델에게는 전화위복이 된 작품이기도 하다. 

처음 메시아가 초연된 곳은 아일랜드의 수도인 더블린이었으며, 메시아의 '할렐루야'가 공연될 때마다 사람들이 항상 기립하여 음악을 감상하는 묵언의 규율이 있는데, 이것은 메시아가 영국의 국왕 앞에서 처음 공연되던 날, '할렐루야'를 듣던 국왕이 이 곡의 웅장함에 압도되어 자기도 모르게 갑자기 기립하여 음악을 듣게 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헨델의 대표작으로는 '메시아', '수상음악', '사라방드', '알렉산더의 향연' 등이 있다.

다음 3편에는 고전주의 음악과 고전주의의 대표적인 음악가들인 모차르트, 하이든, 베토벤 등에 관하여 다시 얕게 다루어보기로 하겠다.


▲ 헨델의 '사라방드'
 

#덧붙이는 이야기 

   
▲ 음악의 아버지 바흐(왼쪽)와, 음악의 어머니 헨델(오른쪽)이 사실 비슷한 운명을 살았다.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출생지와 나이가 같은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한 바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독일이라는 출생지부터 나이, 최고의 성공을 거둔 해, 최고의 작품을 써낸 해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외모, 체격, 비만에 시달렸던 것까지 바흐와 헨델은 같은 인생을 살아온 것이었다. 특히 이들이 같은 인물인 존 테일러 라는 돌팔이 의사에 의해 시력을 잃고 돈을 뜯겼다는 사실조차 똑같다. 이만하면 이들의 인생사는 평행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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