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유니버설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글] 문화뉴스 박정기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pjg5134@mhns.co.kr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문화뉴스] 발레의 역사에 대해서는 르네상스 시대에 비롯되었다는 설과 그리스 시대에까지 소급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리스의 발레 전통이 그 문명의 소멸과 함께 일단 침몰되었다가 르네상스를 맞아 부활했다는 설이다. 하지만 자료에 의하면 1489년 밀라노 공 갈레아조와 이사벨라의 결혼식에서 베풀어진 막간극이 사실상 발레의 유래다.

그 후 르네상스의 진원지 피렌체의 메디치家를 중심으로 이탈리아에서 발레가 크게 융성했으나, 16세기 이후로는 그 무대가 프랑스로 옮겨진다.

발레가 프랑스에 최초로 도입된 것은 1552년 피렌체의 카트린느 드 메디치가 프랑스의 앙리 2세와 결혼할 때다. 이탈리아에서 크게 명성을 떨치던 음악가이자 안무가였던 베르지오 조소가 카트린느의 시종으로 프랑스에 가게 된 것이 프랑스에 발레가 뿌리내리게 된 계기가 된다. 남편 앙리2세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섭정을 맡은 카트린느는 아들 프랑스와 2세를 발레에 심취케 한 후 자신이 권력을 좌지우지할 셈으로 발레 진흥에 힘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1581년에는 세계 최초의 발레단 (Le Ballet Comique de Reine])을 창단해 발레가 융성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발레는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옮겨져 그 뿌리를 내리게 된다. 그것은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의 합성어인 <발레>(Ballet)라는 용어를 통해서도 알 수가 있다.

카테린느 왕비 이후, 발레에 열광했던 루이 14세에 의해 1661년 <음악. 무용 아카데미>가 창립되면서 발레는 바야흐로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스스로를 태양왕으로 자처했던 루이14세는 발레를 구경하는 데 만족치 않고, 몸소 춤을 추었고, 그에 힘입어 몰리에르 같은 당대의 문화계를 지배하던 인물들이 발레에 열광했던 탓으로 발레는 더욱 융성하게 되었다.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은 1811년 빈센초 갈레오티(Vincenzo Galeotti 1737~1816)가 안무한 작품이 덴마크 왕립발레단에 의해 공연된 이후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 가운데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음악을 처음으로 안무한 레오니드 라브로프스키(Leonide Lavrovsky 1905~1967)와 존 그랜코(1958년), 케네스 맥밀런(1965년) 등이 국제적인 평가를 받았다.

레오니드 라브로프스키의 안무는 클래식 발레에 러시아적 캐릭터에다가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팬터마임 적 요소 등을 가미해, 춤보다 마임과 검술 등이 많고, 거리의 장면은 자연스럽고 활기가 넘도록 안무했다.

케네스 맥밀란은 한 술 더 떠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드라마틱 발레로 창출해 냈다. 작중인물의 성격을 원작대로 부각시키고, 무용수에게 배우나 마임이스트를 뛰어넘는 감정표현을 이끌어 내도록 안무했다. 세부 동작은 물론, 손가락 하나에서부터 팔 다리의 펴고 오그리기, 눈동자와 방향과 고개 짓 하나까지, 거의 완벽에 가까운 감정전달을 무대 위에 구현해 냈다.

그의 안무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프로코피에프의 음악이다. 작곡가 프로코피에프에게 <로미오와 줄리엣> 무곡을 작곡해 볼 것을 권유한 사람은 안무가 디아길레프였다.

현대음악 작곡가 프로코피에프가 모더니즘에서 벗어나 고전적 스타일로 작곡에 손을 댄 대표적인 작품 중의 하나인 발레곡 <로미오와 줄리엣>은 라브로프스키의 안무로 레닌그라드의 키로프 극장에서 초연되었고,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케네스 맥밀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무용수들에게 음악과 일치된 감정이입, 그리고 철두철미한 심리표현은 물론 관능적인 요소까지 가미한 안무로,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 기념으로 마련된 1965년의 런던 로열 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에서 대성공을 거두고, 우레와 같은 박수 속에 40여회의 커튼콜이라는 신화를 창조했다.

이번 유니버설발레단의 공연은 케네스 맥밀란의 안무와 줄리 링컨과 유리 우치우미의 공동연출, 그리고 폴 코넬리 지휘와 강남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이루어졌다.

극장을 들어서면 명작의 고향풍경이 막 대신 펼쳐져 있다. 동화에 나옴직한 두 개의 성(城)이 먼발치로 떨어져 그려있어,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함께 막이 열리면, 아름답고 화려한 무대장치에 객석에서는 "와-!"하는 감탄이 터져 나오고, 무대에는 배경 가까이 대리석기둥과 아치형의 출입구, 그리고 높은 계단과 테라스 등이 만들어져 있고, 군중들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하면, 그들이 착용한 고풍스러운 의상과 분장에 또 한번 감탄사를 발하게 된다. 게다가 100여명의 출연자들이 일사분란하게 율동에 맞춰 군중장면에 임하는 데서 연출가의 거의 완벽에 가까운 동선 운용을 감지할 수 있고, 베로나 광장에서 상대를 원수라 여기는 캐퓰렛家의 청년과 몬테규家의 청년들이 등장하고, 서로 적대감으로 칼을 뽑고 결투를 시작하는 장면은 그간 연극이나 영화에서의 결투장면 못지않은 맹렬한 칼싸움으로 관객의 손에 땀을 쥐게 하고, 공연에 온 정신을 몰입시킨다.

청년 몇 사람이 칼에 찔려 쓰러지면, 에스칼루스 왕자가 분노에 찬 걸음으로 등장해 양가를 질타한다. 그리고 캐퓰렛 영주와 몬타규 영주를 화해시키려 하지만, 겉으로만 응할 뿐 내심은 전혀 화해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마 우리의 남북 관계를 외국인들이 보는 심정과 비견되는 장면이다. 장면전환이 되면 캐풀릿家정문으로 장치가 바뀌고, 연회에 초대된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줄줄이 문으로 들어간다. 마스크를 쓴 로미오와 친구들이 등장해 캐퓰렛 성안으로 잠입하듯 들어간다.

이윽고 화려하기 그지없는 연회장면이 전개되고, 등장인물들의 독무, 2인무, 3인무, 군무 등이 경쾌한 음악에 맞춰 아름답게 펼쳐진다. 아래위층 발코니에 자리 잡은 인물들도 율동에 맞춘 움직임으로 군중 씬은 조화를 이루고 활기로 가득찬다. 드디어 줄리엣이 레이디 캐퓰렛과 유모를 따라 등장하면, 그녀의 앳되고 청초하고, 초저녁별 같은 모습에 객석의 시선이 그녀의 일신에 집중된다. 로미오 역시 예외는 아니다. 실연의 상처를 가슴에 안고 방황을 하는 입장이지만, 줄리엣을 보는 순간 로미오는 큐핏의 화살을 심장에 정통으로 맞은 바로 그러한 모습으로 사랑의 화석이 된 듯 꼿꼿한 자세로 줄리엣을 바라본다. 전기가 통해서일까 영감일까 신의 계시일까 줄리엣 역시 로미오를 보는 순간 한동안 얼어붙은 듯 로미오를 바라본다.

이윽고 둘은 서로에게 다가간다. 줄리엣의 약혼자 파리스나, 오라비 티볼트의 만류를 뿌리치고, 로미오와 줄리엣은 운명처럼 다가가 파드되를 추기 시작한다. 줄리엣의 한 송이 민들레의 씨앗처럼 공중을 날듯 그 맑디맑은 향과 체취를 흩날리며, 어린 숫 사슴보다 상큼 발랄한 로미오의 율동에 몸을 맡기는 장면은 명장면으로, 어린이 관객이나 성인관객이나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저마다 로미오가 되고 줄리엣이 된 느낌으로 공연에 몰입된다. 이윽고 달빛 속에 명 발코니 장면이 펼쳐진다. 두 사람이 사랑을 서로에게 전달하는 장면은 팬터마임과 마찬가지로 표현되지만, 두 사람은 달빛 아래에서 혼신의 열정으로 자신의 사랑을 상대에게 전달하고 발코니에서 내려와 펼치는 파드되는 갈매기나 백조의 비상처럼 영혼까지 하늘을 날아오르는 듯싶은 절묘한 명무로 기억에 삭여진다.

이 장면은 마치 1968년에 제작된 프랑코 제피렐리가 감독하고, 레너드 위팅과 올리비아 하시가 주연해, 주제가인 "What is a youth"를 전 세계에 히트시킨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의 명 발코니 장면과 견줄 만큼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향후 성당에서의 비밀 결혼식 장면이라든가 묘지장면 뿐 아니라, 장면에 비치된 성모상이라든가, 건물에 장식으로 세워놓은 조각상은 공연의 수준을 한 단계 상승시키는 조형물이 되었고 공연의 흐름과 극적인 분위기를 상승시키는 조형물이 되었다.

원작과는 달리 대단원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자살 장면으로 공연은 마무리가 되지만, 객석은 감동에 젖어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서지를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줄리엣의 알렉산드라 페리는 연극적 마임과 테크닉으로 줄리엣 보다 더 사랑의 화신다운 예술적 향기로 무대를 채워 50대의 연령을 극복해 낸다. 황혜민, 강미선, 김나은....유니버설발레단에 이런 천재 발레리나가 있었다니....줄리엣을 완벽하게 춤으로 표현해 낸 그녀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로미오 역의 막심 샤세로고프, 에르만 코르네호,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이동탁의 기량이 여성관객의 시선을 로미오에게 고정시키고, 머큐쇼 역의 이고르 콘타레프,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강민우, 티볼트 역의 예브게니 키사무디노프, 알렉산드로 세이트칼리예프, 이동탁, 벨볼리오 역의 강민우, 이고르 콘타레프, 샤오 쿤, 패리스 역의 알렛산드로 세이트칼리예프, 예브게니 키사무디노프, 막심 샤세고로프 등의 기량이 조화를 이루고, 캐퓰릿 영주 곽태경, 캐퓰릿 부인 강예나, 오혜승, 최지원, 에스카루스 황재원, 로잘린 한상이, 최지원, 왕혜지, 로잘린의 친구 이가영, 유모 강민영, 로렌스 신부 몬태규 영주 김현우, 몬태규 부인 오혜승, 최지원, 왕혜지, 배현경, 거리의 연인들 오혜승, 왕혜지, 김유선, 에블리나 고드노바, 아나스타샤 데미아노바, 줄리엣의 친구들, 환상이, 배현경, 김유선, 에블리나 고드나노바, 이다정, 성사미, 천씽위, 베린 코카바소글루, 그리고 마이클 웨글리, 제임스 프레이저, 배희경, 스즈키 리나, 오타 아리카, 제시카 오버튼, 알렌다 윗젤, 박은기, 윤기연, 홍서희, 사공다정, 알렉산드라 윌슨, 일레인 블랭크, 키라 로즈 메튜스, 우나 나가오카, 남기은, 서혜원, 이하연, 조연재, 샤오쿤 크리스토퍼 로빈 안드레아, 서동은, 류 이페이, 김경원, 양천청, 달라트 자라로프, 김정원, 이근희, 제임스 프레이저, 유 하이쑤안, 루이스 가드너, 샤이 건, 김동철, 바이르 타비노프, 조나단 바르셀로 실베라, 필리포 안토니오 루사나, 마이클 웨글리, 박제현, 등 출연자 전원의 열정과 기량이 어우러져 드라마틱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을 성공적인 공연으로 창출시켰다.

단장 문훈숙, 예술감독 유병현, 객원 지도위원 예브게니 네프, 지도위원 황재원, 유지원, 이주리, 진헌재, 안지원, 이준규, 강남심포니오케스르라 지휘 폴 코넬리, 강남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성기선, 악장 김경아, 총무 박성호, 최문선, 단무장 정승원, 악보 김보현과 단원 여러분의 연주가 조화를 이루고, 무대감독 전우연, 조명감독 서경원, 음향감독 이태훈, 무대제작감독 박순용, 장필규, 의상감독 정연주, 영문감수 앵 이노우에, 소품 이미선, 작화 박영애 윤미연 김진, 전혜주, 이유빈, 전영수, 가발 설희영, 분장 김진영, 홍보 김세영 등 스텝진의 노력과 열정이 드러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케네스 맥밀란 안무, 세르게이 S. 프로코피에프 음악, 폴 앤드류스 무대 의상 , 마사오 이가리시 조명, 줄리 링컨&유리 우치우미 연출의 드라마틱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을 세계정상급 고수준 고품격의 발레공연으로 탄생시켰다.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