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작은신화 30주년기념공연 막스 프리쉬 원작 전유경 방진영 번역 최용훈 각색 연출의 싸지르는 것들

 

[글] 문화뉴스 박정기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pjg5134@mhns.co.kr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문화뉴스] 스위스 출신의 막스 프리쉬(Max Frisch, 1911~1991)는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 뒤렌마트(Friedrich Dürrenmatt, 1921~1990)와 더불어 독일어권의 가장 대표적인 희곡 작가이자 소설가다. 아버지 프란츠 브루노 프리쉬는 건축가였으며, 어머니 카롤리나 베티나(친정 성은 빌더무트)는 화가의 딸이었다. 어머니로부터 예술가적 기질을 물려받은 프리쉬는 학자로 대성하기를 바랐던 아버지의 희망을 좇아 레알 김나지움을 졸업 한 후 1931년부터 취리히 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전공한다. 그러나 대학 공부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 그는 스스로 로페 데 베가風의 습작을 시도하며, 이듬해인 1932년 아버지가 일찍 사망하자 학업을 중단하고 프리랜서 기자로서 여러 신문에 짧은 글들을 기고한다.

프리쉬는 세상에 대한 견문도 넓힐 겸 1933년 프라하, 부다페스트, 벨그라드, 이스탄불, 아테네, 로마 등지를 여행하며,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그의 처녀작인 소설 <비르크 라인하르트>를 발표한다. 여행에서 집으로 돌아온 프리쉬는 1936년부터 학업을 재개하지만 이번에는 가정의 경제적 형편을 고려하여 취리히 공과대학에서 건축학을 선택하며, 아울러 틈틈이 습작을 계속한다. 1937년 발표된 소설 <정적에서 나온 답>은 시민적 속박에서 탈출하는 이야기이다. 프리쉬는 그후 돌연 글 쓰는 일에 회의를 느껴 그 동안 쓴 글들을 몽땅 불태워 버린다. 다시는 글을 쓰지 않기로 맹세하고 건축가의 길을 택한다. 이러한 결정에는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향도 작용하였을 터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프리쉬는 1939년에서 1945년까지 포병으로서 간헐적으로 국경 수비대에서 복무하게 되는데, 그는 자신의 조국 스위스도 침공 당할 수 있다는 확신에서 2년전 스스로에게 다짐한 절필의 맹세를 깨고 다시금 펜을 잡는다. 이때의 체험이 스위스 특유의 전쟁 일기 형식인 <배낭 일기>(1940) 속에 그려진다. 1941년 건축사 디프롬을 취득한 그는 이듬해 레치그라벤 야외 수영장 건설 설계 현상 공모에 당선하며, 이에 고무되어 개인 건축 사무실을 개설한다. 같은 해에 대부호의 딸인 콘스탄체 폰 마이어부르크와 결혼하지만 이 결혼은 1959년 이혼으로 끝난다. 프리쉬는 건축 사무실을 운영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작품을 발표하는데, 1943년에 발표된 소설 <나를 불태우는 것을 난 사랑한다, 또는 어려운 사람들>이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이어서 1945년에 서정적이고도 환상적인 자전적 소설 <빈 또는 북경 여행>이 발표된다. 소설의 내용은 상상 여행이다. 북경이 그 목적지이자 암호가 된다.

이 시기에 프리쉬는 독일의 망명가이자 취리히 극장의 연출가인 크르트 히르시펠트와 교우 관계를 맺게 되며, 그의 자극에 고무되어 일련의 희곡 작품들을 쓰기 시작하는데 그 첫 번째 산물이 희곡 <싼타 크르츠>다. 1945년 <이제 그들은 또다시 노래 부른다>, 1946년 <만리장성>, 1947년 스위스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던 브레히트를 만나 서사극의 영향을 받는다. 1949년 희곡 <전쟁이 끝났을 때>, 1950년 일기장 <일기 1946-1949>, 1951년 <뵈더란트 백작><돈 주앙 또는 기하학에 대한 사랑> 그리고 1954년까지 소설<슈틸러>, <호모 파버>를 집필 발표한다. 1955년에 희곡 <호모 파버>, 1958년 희곡 <비더만과 방화범들>,

1961년 희곡 <안도라>, 1964년 소설 <내 이름을 간텐바인이라 하자>, 1968년 희곡 <전기(傳記)>, 1978년 희곡 <세 폭짜리 성화상>, 1979년 소설 <인간이 충적기에 등장하다>, 1982년 소설 <블라우바르트>, 1989년 에세이집 <군대가 없는 스위스>를 발표했다.

   
 

막스 프리쉬는 1991년 취리히에서 사망할 때까지 그의 많은 작품들을 통해 자아의 발견, 선입견의 극복, 소외로부터의 탈출 등 많은 문제를 제시한다. 그 외에도 프리쉬의 원숙기의 희곡 작품들 안에는 사회, 시민, 지식인에 대한 비판이 나타난다. 그의 시대 비판적인 작품들은 현대의 정신적 위기, 실존의 붕괴 및 모순, 인간 존재의 불가사의 및 불확실성, 그리고 전통적 질서와 규범들에 대한 회의를 묘사한다. 그는 현대적 양식 기법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안고 있는 시대적 문제를 비유적으로 제기한다. 그는 깨어 있는 비판 의식을 소유한 도덕가이자 현실주의자로서 모든 이데올로기를 배척하며, 아울러 모순투성이이자 작위적으로 유지되어 온 사회 질서에 대해 적대적 입장을 견지한다. 브레히트와 와일더의 영향을 받아 비환상적 연극술을 개발하였으며, 허구적 화자가 등장하는 그의 1인칭 소설들은 인간의 죄나 자아의 문제를 다룬다. 그는 농축된 문장들, 명료하고, 날카로운 표현들, 그리고 균형 잡힌 문체를 통해 풍부한 지적 환상과 문제 의식을 끊임없이 제기한 작가다.

프리쉬는 취리히시가 제정한 콘라드 페르디난드 마이어상(1938)을 비롯하여, 에밀 벨티 재단의 드라마상(1944), 게오르그 뷔히너 문학상, 취리히시의 문학상(1958), 예루살렘시의 문학상, 바덴 뷔르템베르크주의 실러 기념상(1965), 스위스 실러 재단의 실러 대상(1974), 독일 출판협회의 평화상(1976), 미국 신도시 문학상(1986) 등 수많은 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마르브르크 대학교(1962)와 뉴욕시립대학교(1982)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희곡 <비더만과 방화범들(Bidermann und der Brandstifter)>의 구상은 이미 1948년에 그의 일기 집에 기록되어 있다. 그 후 1953년 3월 바이에른 방송국에서 방송극 『비더만씨와 방화범들』로 방송되었고, 연극은 1958년 3월 29일 취리히 극장에서 초연되고 1958년 9월 28일 프랑크푸르트 시립극장에서 개작 공연되었다.

작품의 주인공 비더만은 물질적 특혜를 받은 자로 설정된다. 그는 고급 여송연을 피우고, 고급 포도주나 마시며, 호화 주택을 소유하고 있고, 하녀를 부리며, 식사 도구들은 고급 금. 은. 수정 제품들이다. 머리 기름 공장 공장주로서 사회단체에 돈을 기부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명예를 과시하기 위함이고, 모든 정열을 사업에만 쏟으며, 돈을 위해 돈을 벌고, 일만을 위해 일한다.

비더만이 사는 마을에는 근자에 동일범에 의한 동일 수법의 방화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즉 거처가 없는 행상인으로 가장하여 다락방에 잠입해서는 불을 지르고 줄행랑을 치는 것이다.

제1장의 막이 오르면 비더만은 신문을 읽으며 흥분한 어조로 방화범들을 교수형에 처하라고 소리친다. 이때에 하녀 안나가 방문객이 있음을 알린다. 그러나 비더만은 이방인을 맞이할 마음이 전혀 없어 집에 없으니 사업 관계라면 내일 공장으로 오라면서 문전에서 사절한다. 그에게 있어 이방인이란 존재는 사업과의 관련에서만 인정되며, 인간성이나 동정심 따위는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이방인은 이미 응접실 안에 들어와 있고, 비더만은 첫눈에 그 이방인의 외관만 보고도 놀라서 피우던 시가를 바닥에 떨군다. 왜냐하면 이방인 슈미츠는 우람한 체격과 옷차림만으로도 죄수나 서커스 단원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첫눈에 그 험상궂은 사나이가 방화범임을 눈치 챈 비더만은 이방인에게 식사나 간단히 대접하여 돌려보내려 했으나 스스로의 약점 때문에 방화범에게 거처를 제공하게 되는데, 방화범이 사용한 첫 번째 방법은 프로 레슬러였던 자신의 직업과 힘을 과시함으로써 노골적으로 위협을 가하는 것이다.

이때 하녀 안나가 들어와 크네히트링이 찾아왔음을 알린다. 그는 비더만이 운영하는 머리 기름 공장의 고용원으로서 머리 기름 개발에 참여한 몫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했다. 그는 가난한 노동자로서 병든 아내와 세 자녀를 거느리고 있다. 그러나 비더만의 대답은 차갑기만 하다. 그에게 변호사를 대든지, 가스에 코를 박고 죽어버리든지 맘대로 하라는 거다. 비더만의 잔인성, 비인간성을 간파한 쉬미츠는 이제 두 번째 방법을 사용하는데 그것은 비더만의 말의 꼬투리를 잡아 자기를 집에 들여놓는 것은 비더만의 인간애의 발로인 것처럼 하여 그의 체면을 조금 세워주는 것이다.

제2장에서 비더만은 그의 성역에 침입한 이방인을 쫓아낼 궁리를 하지만 직접 나설 용기는 없어 부인 바베테에게 이를 미룬다. 비더만 부부의 의중을 잘 알고 있는 쉬미츠는 세 번째 방법을 사용하는데 그것은 바베테의 동정심에 호소하는 것이며, 그래서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얘기한다. 고아원 등에 관한 언급이 그것이다.

제3장에서는 쉬미츠의 감방 동료인 아이젠링까지 가세하여 비더만의 다락방에서는 이제 동일범에 의한 동일 수법의 범행이 착착 준비되고 있다. 휘발유, 뇌관, 도화선, 실 걸레 조각들이 반입된다. 극이 전개됨에 따라 방화범들은 점점 대담하고 뻔뻔스러워진다. 왜냐하면 그들은 비더만의 심리적 갈등과 부당 해고를 당하여 자살한 크네히트링의 문제로 인한 약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 크네히트링의 자살 사건 처리 문제로 찾아온 경찰관이 마침내 다락방까지 올라와 통 속에 무엇이 들었냐고 묻지만 비더만은 범인의 예측대로 머리 기름이 들어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물질적 쾌락과 자신의 이익만을 구하던 비더만은 구실과 변명을 찾지 않을 수 없다. 이제까지 방관자적 입장에서 보고하는 역할을 담당하던 합창단이 화재의 위험성에 관해 비더만에게 직접 경고하지만 비더만은 민주 시민의 자유와 사유재산권을 주장하며 자신의 잘못이 없음을 항변한다. 의무를 방기한 시민의 자유란 진정한 민주적 자유가 되지 못하건만 비더만은 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자신의 휴식과 평화만을 주장하면서 마음에도 없는 신뢰의 회복을 강조한다.

제4장에서 비더만은 최후의 수단을 강구한다. 즉 범인들을 만찬에 초대하여 친구 관계를 맺어 둠으로써 화를 모면해 보자는 것이다. 부르주아적 사고에 젖은 그는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우정조차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계획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고, 누구의 친구도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방화범들을 초대하러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비더만의 모습은 주인에서 객의 입장으로 뒤바뀐다. 마음의 거처를 잃은 자는 물질적 거처인 자기 집에서도 거처를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비더만은 일면 초청을 제의하고, 일면 통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정말로 휘발유인가를 재확인한다. 비더만의 초청의 저의를 간파하고 있는 방화범들은 이제 그들의 마지막 수단을 사용해 진실을 솔직히 털어놓는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진실해 보지 않은 사람은 진실을 믿지 못하는 법이다. 그래서 비더만은 방화범의 도화선까지 붙잡아 주며 초청이 수락된 것에만 만족한다.

제5장에서 비더만은 자신에 대한 최후의 심판을 스스로 준비하기에 바쁘다. 크네히트링의 미망인이 남편의 사후(死後)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제4장에서부터 기다리고 있었음에도 비더만은 죽은 사람 문제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는 자기로 인해 야기된 크네히트링 미망인의 불행은 외면하면서 자신에게 불행을 가져다 줄 방화범들에게는 인간애와 형제애를 발휘하는 모순을 드러낸다.

비더만의 분열 상태는 극에 달한다. 이는 크네히트링의 빈소로 보낸 조화(弔花)가 잘못되어 비더만 집으로 배달되는 장면에 잘 나타난다. 베르너 베버의 해석과 같이 "상실된 동일성은 오류를 합리화시키며 우연을 일상적인 것으로 만든다. 그래서 죽은 자는 조화의 영수증을 받고, 산 자의 발아래에는 조화가 놓이는 것이다."

마지막 제6장에서 방화범들은 이제 처절하리만큼 내적 분열상을 보여 주는 비더만을 계속 몰아붙인다. 아이젠링은 비더만의 계급 차별 의식을 이용하여 식탁을 새로이 꾸미도록 한다. 방화범들과 친구 관계를 맺어 화를 면하고자 계획된 비더만의 초청 만찬은 점점 파국으로 빠져든다. 이 순간 방화범들의 공범 역을 자임하던 철학 박사가 잠시 등장하여 방화 음모를 폭로하려 하지만 그 역시 연극의 흐름을 바꿔 놓지 못한다. 이제 멀리서부터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차츰 가까이 들려오지만 비더만은 자기 집에서만 불이 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는 소외된 현대 시민의 자기본위적 이기심의 발로이다. 이제 방화범들은 자신들이 범인이라고 탁 터놓고 말하지만 비더만에게는 들을 귀가 없다. 드디어 그는 신뢰의 표시로서 방화범들에게 성냥을 건네준다. 비더만은 자기 집이 화염에 휩싸일 때까지도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무대는 거실과 높은 단 위의 다락방으로 된 이층 구조다. 벽은 기둥에 세모 네모 형태의 조형물을 부착시켜 마치 조형예술작품 같은 형태로 되어있고, 바닥에는 식탁과 의자가 놓였다. 다락의 단은 세로로 된 칸이 있어 물건을 넣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문은 틀로만 형성되고, 무대 좌우가 통로가 되고 상수 쪽 통로는 다락으로 돌아 올라가는 길로 설정된다. 극장 2층 객석이 테라스처럼 동선으로 활용되고, 여러 명의 남녀소방관이 조화로운 집단행동을 보이며 해설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고급 와인병과 술잔, 그리고 쟁반과 촛대, 그리고 담배와 라이터가 소품으로 사용되고, 다락방에는 원형의 통이 휘발유 통으로 설정되어 차곡차곡 쌓여진다. 조명 색의 변화로 극적 분위기를 창출시키고, 화재 역시 조명 색의 변화로 연출된다.

소방관들의 복장과 모자가 통일되고, 남녀 의상은 유럽의 복고풍 의상으로 느껴진다. 출연자들의 과장된 연기가 개그 코미디처럼 연출되고, 대사 또한 다소 과장된 표현으로 연출된다. 세 팀이 각기 출연해, 독특한 개성과 기량을 발휘한다.

   
 

비더만으로 김은석 임형택 최지훈, 바베테로 홍성경 최성희 정세라, 방화범 슈미츠로 강 일 서광일 이승현, 방화범의 동료로 장용철 안성현 박윤석, 하녀 안나 역으로 송 윤 이혜원 이지혜, 경찰관 고병택, 크네히틀링 부인 김미란, 철학박사 서현철 오현우, 소방대장 박지호, 소방대원 박종용 박상훈 홍승만 김해린 지성훈 김나래 등 출연자 전원의 성격설정과 연기창출이 관객을 극 속에 몰입시키는 역할을 하고 폭소와 갈채를 이끌어 낸다.

무대 이엄지, 무대제작 에스테이지, 조명 나한수, 조명어시스턴트 박유진, 조명크루 오재오 김동진 박선임 김종훈, 음악 이형주, 의상 강기정, 분장 백지영, 움직임지도 정의순, 조연출 김정민, 조연출보 박현주 채영은, 무대감독 성동한, 무대감독보 조민교, 조명오퍼레이터 강주희, 음향오퍼레이터 박소아, 진행 박진희 박소영 석소영 조윤수 정지희, 사진 이강물, 그래픽 노 운, 기획 홍보 코르코르디움 등 스탭진의 열정과 노력 그리고 기량이 드러나, 극단 작은신화의 창단 30주년 기념공연 막스 프리쉬 원작, 전유경 방진영 번역, 최용훈 각색 연출의 <싸지르는 것들>을 연출가와 출연자의 기량이 조화를 이룬 성공적인 공연으로 창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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