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극단 청년단의 히라타 오리자 작 연출의 서울시민과 서울시민 1919

 

[글] 문화뉴스 박정기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pjg5134@mhns.co.kr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문화뉴스] 히라타 오리자(平田オリザ)는 1962년 도쿄 출생. 극작가, 연출가. 극단 세이넨단(靑年團) 주재. 오사카대학 커뮤니케이션 · 디자인센터 교수. 열여섯 살 때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자전거로 세계 일주를 했으며, 대학 시절에는 연세대학교에서 1년 동안 교환학생으로 공부하기도 했다. 대학 2학년 때 극단 세이넨단을 만들어 연극 활동을 시작한 후, 담담하고 사색적인 스타일의 연극을 선보이며 1990년대 일본 연극계의 새로운 조류를 이끌었다.

대표 작품으로 「도쿄노트」, 「서울시민」 5부작, 「S고원으로부터」, 「과학하는 마음」 시리즈, 「잠 못 드는 밤은 없다」 등이 있다. 「도쿄노트」로 일본 최고 권위의 희곡상인 기시다 구니오 희곡상을 수상했고, 「강 건너 저편에」로 아사히무대예술상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현대 일본인의 정체성을 냉철하게 파고들어 가는 지적이고 세련된 그의 연극 세계는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 연극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연극을 통한 시민 교육, 일본의 문화예술 행정에도 관여하고 있으며, 로봇 연극 창작에도 힘을 쏟는 등 새로운 창작의 영역을 끊임없이 개척하고 있다.

번역을 한 성기웅은 극작가, 연출가.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 대표.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출과 예술전문사(M.F.A.) 졸업. 「삼등병」, 「소설가 구보씨와 경성사람들」, 「깃븐우리절믄날」, 「다정도 병인 양하여」 등 여러 연극의 극본을 쓰고 연출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박태원 원작)을 구성 · 연출하였으며, '과학하는 마음 3부작'(히라타 오리자 작), 「정물화」(유미리 작) 등을 번역 · 연출했다. 『히라타 오리자의 현대구어 연극론』, 『다락방』(사카테 요지 작) 등을 공동 번역하기도 했다.

연극 <서울시민>은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수도 서울(한성 혹은 경성)에 살았던 일본인들을 가리킨다. <서울시민>은 1909년부터 1939년까지 서울에 거주한 어느 일본인 가족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30년 세월의 가족사를 세세하고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일본의 조선 지배, 제국주의적 팽창의 변천사라는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색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

<서울시민>은 20여 년에 걸쳐 쓰여진 연작으로, 총 4편의 희곡으로 구성된다. 1편은 강제병합 직전의 세태를 그린 「서울시민」(1989년), 2편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날을 묘사한 「서울시민 1919」(2000년), 3편은 1929년 대공황의 여파를 그린 「서울시민․쇼와 망향 편」(2006년), 4편은 일본이 침략 전쟁으로 치달아가는 광기를 그린 「서울시민 1939․연애의 2중주」(2011년) 등이다.

1962년생 일본인인 히라타 오리자가 일제강점기의 조선을 배경으로 희곡을 쓴다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저자 히라타 오리자가 한국에 애정과 관심을 갖고 꾸준하게 교류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히라타 오리자는 대학생 시절 한국어에 큰 흥미를 느껴 연세대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1년 동안 공부했다. 지금도 통역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한국어가 능숙하며,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웠던 경험이 훗날 그만의 새로운 연극 작법을 찾아가는 데 결정적인 실마리가 되었다. 한국과 일본이라는, 서로 닮아 있는 언어와 문화를 세밀하게 비교하면서 일본어와 일본 문화의 속성을 파고들어 갈 도구를 얻게 된 것이다.

연극에서는 그 당시 일본인들의 평범한 생각들을 현실 그대로, 날것 세밀하고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몇몇 문장은 표면적으로나마 오해를 살 수 있다. 그러나 히라타 오리자의 사관은 확고하다. 일본의 우익 인사들이 "좋은 일본인도 있었다", "식민 지배에 협력한 조선인도 있었다"라고 주장하지만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라고 히라타 오리자는 연극을 통해 주장한다.

연극 <서울시민>은 일본과 한국은 물론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도 성황리에 여러 차례 공연되었다. 유럽인들이 식민지 조선이라는 낯선 시대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연극에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은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는 차별의 의식"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 소시민들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비일상적이고 부조리한 것, 타자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을 예리하고 감각적으로 포착함으로써 인간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것의 우스꽝스러움과 애매모호함을 관객이나 독자나 스스로 깨닫게 하고 있다. 드라마틱한 사건도, 강렬한 캐릭터도 없지만 담담하고 사색적으로 그리고 극사실적으로 관객에게 다가가고 관객을 극에 몰입시킨다.

1910년 일본의 한국합병에 대해 한국인라면 누구나 "일본이 강제로 한국을 침탈했다"며 분노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인은 어떻게 생각할까? 일본 공산당 등 좌익에서는 "일본이 조선에 심한 짓을 했다"라고 말하지만 우익은 "일본은 식민 통치하는 동안 좋은 일도 많이 했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히라타 오리자는 "어느 쪽도 설득력이 충분치 않다. 일본은 조선에 대해 좋은 일도 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식민지 지배는 슬프다"라는 입장이다. 즉 지금 보통의 일본인은 식민지 지배가 나쁘다는 것을 알지만 당시 보통의 일본인은 식민지 지배가 좋다고 생각했고, 결과적으로 조선인에게 심한 짓을 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평범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연극으로서 보여준 것이 바로 <서울시민>이다.

무대는 문구상으로 성공한 일본인 가정의 거실이다. 정면 벽에는 일장기와 18수의 글을 쓴 부채를 액자에 넣어 걸고, 예서로 쓴 취죽청지(翠竹淸池형)라는 표구액자도 걸렸다. 또 정면에 양주를 진열한 술 장이 있는가 하면, 상수 쪽 벽에는 매화와 붉은 꽃을 그린 8폭 병풍을 작품처럼 벽에 부착시켜 놓았다. 하수 족 벽 앞에는 첼로를 든 여인 조소상이 있고, 그 옆에 풍금과 연주의자를 두었다. 상수 쪽 거실 중앙에 커다란 식탁과 여러 개의 의자를 둘러놓았고, 이층 계단은 객석 방향으로 오르도록 만들었다. 현관은 하수 쪽 문을 통해 출입하도록 되어있고, 내실과 부엌 그리고 별채는 상수 쪽 벽 가까이에 있는 통로로 들어간다. 연극은 도입에 객석에 등을 돌리고 앉아 신문을 보며 과자를 먹는 남성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붉은 치마에 짙은 초록 저고리를 입은 조선인 하녀가 찻잔을 들고 등장을 하고, 가족 구성원이 차례로 등장을 하면서 남성이 일어나 몰래 양주를 꺼내 마시고 술병에 물을 채워 넣는 장면이 연출되면, 가족 중 일없이 빈둥거리는 남성임이 소개가 된다. 아들과 딸은 고등학교를 다니고, 이집 가족 중 한 두 사람이 에 본토 사람과 편지로 사귀고 편지를 주고받기에, 본토에서 편지상대가 경성으로 찾아온다는 설정이다.

이집의 가장을 찾아온 손님은 서양풍의 밝은 황색 정장에 중절모까지 쓰고 등장을 하고 그의 부인은 짙은 감색 양장을 하고 등장한다. 손님과 주인이 외출을 한 후 편지내왕을 한 장본인이 본토에서 이 집을 찾아온다. 흑색정장에 마술사 모자를 쓰고 등장한 이 인물의 직업은 역시 마술사다. 정작 마술사와 편지를 주고받은 인물은 외출중이라 다른 가족이 마술사를 상대하며 마술을 부탁한다.

그런데 그 마술이라는 게 영국에는 현재 안개가 끼어있다 라는,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상황을 실제로 보는 듯 소개하는 심령술 같은 마술이다. 마술사가 화장실로 간 후 고등학생인 이집 아들이 가방을 열어보니 탁구공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고, 가장의 아우가 들어와 상자의 반대쪽 칸을 열어보니, 긴 끈에 연결된 기가 끝없이 기다랗게 연결되어 나온다. 화장실에 간 마술사가 오랜 동안 소식이 없으니 가족이 화장실을 찾아보지만 마술사의 행방은 묘연하다.

그러자 웬 여인이 마술사의 부인이라며 마술사와 똑같은 가방을 들고 등장한다. 가족들의 어리둥절한 모습, 그리고 서양풍의 정장한 가장의 손님이 외출을 했다가 가장과 함께 돌아오고, 한일합방을 긍정적으로 보는 당시의 일인들의 사고가 전달된다. 대단원에서 편지내왕을 빌미로 가출을 결심한 이 집의 딸의 결단에 어리둥절해 하는 가족들의 모습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서울시민 1919>는 전편 <서울시민>보다 10년 후의 이야기다. 문구상으로 부호가 된 가장은 영화에도 투자를 해 흥업사를 차렸다. 1919년 봄, 이혼을 하고 돌아온 이집의 딸은 풍금을 배운다. 풍금선생이 등장해 딸이 선생과 합주를 하기도 한다.

고등학생인 아들은 가장이 바람을 피워 낳은 아들로 소개가 되고, 전편에서 할 일 없이 빈둥거리던 남성은 여전히 별 다른 일을 찾지 못한 듯싶다. 연극의 도입은 이 남성이 등을 보인 채 식탁에 앉아 군것질을 하며 신문을 보는 장면과 조선인 하녀가 찻잔을 들고 등장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가장은 흥행목적으로 본토에서 스모선수를 초청해 선수와 매니저가 곧 도착한다는 소식이다. 가장은 감기가 들어 외출을 자제한다는 설정이고, 밖에서는 조선인들이 거리로 나서 운집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조선인의 동태를 별로 중시하지 않는 일본인들은 아마 조선인들이 무슨 축제를 개최하려나보다 하고 가볍게 여긴다. 밝은 색 정장의 가장의 아우가 감색 양장의 부인과 등장을 하고, 경리부장도 등장을 하면서 여 집사에게 자신을 집사라는 표현보다 경리부장임을 알리는 호칭을 해주기를 요구한다. 드디어 집채 만 한 거구의 스모선수가 매니저와 함께 등장한다. 가족들이 환대를 하고, 부녀자들은 스모선수의 배를 만지기가 소원인 듯 선수의 배를 더듬는다. 스모선수는 일어서 배를 내밀고는 만지도록 내버려두고, 말대꾸라고는 단지 황공합니다. 라는 한 마디뿐이다.

조선거주 일본인들의 이야기로 조선 씨름선수의 실력이 월등해 스모선수를 메다 꼲을 정도라고 하니, 스모선수는 잔뜩 겁을 먹은 표정이 된다. 매니저와 떨어져 혼자 거실로 나온 스모선수가 군것질거리를 찾으니, 과수가 된 딸이 양과자나 도넛을 가져다준다. 선수는 처음 먹어 보는지 별미를 먹는 표정을 짓고, 과수가 된 이 집 딸도 스모선수의 배를 만지다가 주먹으로 여러 번 때리니, 스모선수는 비명을 지른다. 외출했던 가족들이 귀가하면서 조선인들이 독립만세를 부른 다는 것을 알려준다. 민족자결이나 조선독립만세라는 전단지를 가져다 보여주며,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의 일은 민족 스스로가 알아서 결정한다는 민족자결주의를 정작 남의 땅을 점령한 미국인 자신과는 어리지 않는 주장이라고 흉을 본다. 수난을 당할 것을 두려워했는지 스모선수는 혼자 도망을 해 버린다. 가장이 등장해 이 사실을 알고 놀란다. 스모선수를 찾으라고 하지만, 매니저도 모르는 선수의 행방을 가족들이 어찌 알랴? 조선인 하녀가 밖으로 나가려 하니, 식구들이 말린다. 하녀는 조선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라고 하며 밖으로 나가려 하니 가족들이 제지를 한다. 그러나 하녀는 결심한 듯 밖으로 나간다. 어리둥절한 가족들의 모습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야마우치 겐지(山內健司), 마츠다 히로코(松田弘子), 나가이 히데키(永井秀樹), 타무라 미즈호, 템묘 루리코(天明留理子), 아키야미 켄이치<秋山建一), 키자키 유키코(本琦友紀子), 효도 쿠미<兵藤公美), 시마다 요조(鳥田曜藏), 오타 히로시(太田廓), 신서계(申瑞季), 타하라 례이코(田原礼子), 오타케 타다시(大竹宜), 무라이 마토카, 야마모토 마사유키(山本雅幸), 오기노 유리(荻野友里), 호리 나츠코(掘夏子), 콘도 츠요시(近藤强), 이시마츠 타이치, 이노우에 미나미, 키쿠치 카나미(菊池佳南) 등 출연자 전원의 정확한 대사전달과 호연은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무대미술 스기야미 이타루(衫山至), 조명 미시마 쇼코(三鵈聖子), 의상 마사카네 아야(正金彩) 자막 시니모토 아야(酉本彩), 무대감독 나카시니 타카오(中酉隆推), 제작 하야이 유코(林有布子), 기획 제작 청년단(靑年團), 고마바 아고라극장 등 제작진과 기술진의 열정과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히라타 오리자 작 연출의 <서울시민>과 <서울시민 1919>를 창의력이 감지되는 기억에 길이 남을 공연으로 창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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