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즈음 [명사] 바로 얼마 전부터 이제까지의 무렵. 문화뉴스판 사설(社說)

[문화뉴스=아띠에터 칼럼그룹] 친구 중 가장 편한 건 역시 '동네 친구'다. 하지만 토박이가 아닌 한 동네에 친하고 편한 친구들이 있기란 쉽지 않은 일. 광명으로 이사를 간 지 4,5년이 된 어느 날, 내겐 '동네 친구 하나 있으면 좋을 텐데'하는 간절함이 들었다.

그러다 생각이 미친 게 '바(bar)'였다. 특히 바텐더들이 있는 모던 바. 퇴근이 늦을 수밖에 없는 특성 상 유흥업소 종사자들은 근처에 사는 경우가 많고 또 그런 곳에서는 대화를 할 수도 있으니 친해지기 어렵지 않다. 그렇게 동네 모던 바를 하나하나 뒤지며 '탐bar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간 동네 바는 분위기가 이상했다. 20년은 돼 보이는 소파들이 바 주변을 둥글게 감싸고 있었고, 말굽 모양으로 된 바 한 가운데에는 설거지 용 개수대가 놓여 있었다. 바텐더와 이야기를 하다가도 다른 바텐더가 설거지를 시작하면 시끄러운 물소리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또 그곳의 주력 바텐더는 연변 동포. 한국말을 하나하나 알려주다가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나' 생각이 들었고 두 번 다신 가지 않았다.

두 번째로 간 바에는 큰 개가 있었다. 털도 북실북실하고 말수도 적은 그레이트페키니즈였다. 홍길동도 아니고 이 테이블 저 테이블을 오가며 손님들로부터 안주를 뺏어먹고 있었다. 귀엽긴 했지만 뭔가 자연스럽지 않은 상황에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았고 그곳 역시 발을 끊었다. 세 번째로 간 곳은 분위기도 고즈넉하고 바텐더들이 모두 검은색으로 맞춰 입은 바였다. 바텐더들도 호감형이고 가격도 다른 곳보다 낮은 편이었다. 그렇게 삼고초려 끝에 안식처로 삼을 좋은 바를 알아냈다.

 

   
 

‘바라면 역시 양주를 먹어야한다는 고정관념이 많지만 바에서도 맥주나 음료수는 팔고 맥주를 마신다고 해서 내쫓지도 않는다. 일주일에 두어 번 씩 혼자 찾아가 두 세병 정도 먹어도 지갑이 크게 뚫리지는 않는다. 역시 내 생각대로 바텐더 중 8할이 근처 사람이었고 연배 차도 크지 않아 쉽게 둥글둥글한 사이가 됐다.

의외로 바에는 혼자 오는 사람들이 많다. 혼자 앉아 진토닉이나 병맥주를 홀짝홀짝 마시며 바텐더와 담소를 나누고, 또 심심할 땐 우리의 친구 스마트폰과 논다. 술 한 잔 생각나는 적적한 밤에 혈혈단신 찾아와 한두 병 마시고 가는 모습이 별로 나빠 보이지도 않는다. 손님이 나밖에 없는 한가한 월요일에는 바텐더들이 모두 내 앞에 모여 손님과 사장을 씹어대기 시작한다. 그대로 2차로 연결돼 도란도란 모여 술을 마시기도 했다.

바에 오는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다. 편히 앉아 어여쁜 바텐더와 부담 없는 대화를 즐기는 것. 하지만 바텐더의 수는 한계가 있고 그럴 경우 기대치 않은 상황이 발생한다. 자기 앞에 바텐더가 없다고 불만을 말하는 손님이 생긴다는 것. 사실 장사를 하는 입장이라 비싼 술을 시키는 사람에게 서비스가 좋은 건 자연스런 현상이다. 바텐더 둘에 손님이 세 그룹이고 한 팀은 맥주를, 나머지 팀들은 양주를 마시고 있을 경우 우선순위는 예상하는 대로 정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텐더들이 두 자리에만 있는 건 아니고 이곳저곳을 오간다.

바텐더들에 대한 오해가 있지만 일반적인 아르바이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학교를 다녀온 대학생들이 일하는 경우도 많고 직장인들이 투잡 삼아 뛰기도 한다. 뭔가 화려함과 문란함, '퇴폐한 흑석동 독거미' 등의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별로 특별할 것도 없다.

단골 바가 되다 보니 바텐더들과의 친분이 하루가 다르게 늘었고, 급기야는 내가 바텐더인지 걔네가 손님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A라는 바텐더가 내게 다른 손님 투정을 하고 일어나면 잠시 후 B라는 바텐더가 다가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 놓는 식이었다.

바텐더의 역할이 손님과의 대화이긴 하지만 그게 바깥 생활과 그대로 연결되진 않는다. 그들에게 '바'란 일터일 뿐이고 사복을 갖춰 입은 그들은 다른 말을 하고, 다른 생각을 한다. 이 바텐더가 나한테 생긋생긋 웃어준다고 나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이건 비밀인데요"라고 털어놓는 것도 단지 영업용 멘트일 뿐이다.

[글] 아띠에떠 에이블팀 artietor@mhns.co.kr

수년의 기자 생활에 염증을 느껴 이곳저곳 기웃거리고 있는 글덕후 노총각. 술 먹은 다음 날, 바람맞은 다음 날이어야 감성 짠하게 담긴 퀄리티 높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불치병을 앓고 있음. 잘 팔리는 소설가를 꿈꾸며 사인 연습에 한창임. ▶ 필자 블로그
* 아띠에터는 문화뉴스 칼럼니스트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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