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불똥 작가의 '압구정동: 유토피아/디스토피아'(1992년 출품, 2016년 재제작). 그는 포토몽타주 작업을 통해 한국 사회의 불편한 현실과 모순을 독특한 조형어법으로 표현해왔다.

[문화뉴스] 최근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의 향수를 불러일으킨 가운데, 이 시기 우리 미술은 어떤 시도를 보여줬을까?

 
2017년 2월 19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진행하는 'SeMA 골드 <X : 1990년대 한국미술>' 전시를 통해 만날 수 있다. 한국 미술계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한 1990년대를 화두로 삼아 동시대 한국 미술의 미학적, 문화사적 의미를 성찰한 이번 전시는 1987년부터 1996년에 이르는 10년간을 담았다.
 
이 시기는 1987년 민주화 항쟁과 1988년 서울올림픽, 동구권의 몰락, 김영삼 정부 출범과 김일성 사망,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등의 사건들로 얼룩진 과잉과 상실, 그리고 붕괴와 도약의 시기였다. 이번 전시는 1990년대를 현대미술의 이름으로 촉발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 글로벌리즘으로 일컬어지는 동시대 미술 패러다임의 변화에 주목하고 그것이 오늘날 미술에 끼친 영향 및 그 역학 관계를 살펴봤다. 
 
이번 전시는 뮤지엄, 서브클럽, 진달래, 30캐럿 등의 소그룹 운동과 소위 '신세대 작가'로 불렸던 개별 작가들이 부분 또는 전체적으로 재제작한 당시 주요 작품과 관련 자료 아카이브, 대중문화와 뉴테크놀로지를 가로지르는 새로운 이슈 제기로 주목받았던 주요 전시의 재연, 그리고 새로운 창작 에너지의 발원지였던 홍대와 신촌 등의 카페 공간을 편집, 재구성한 섹션이 교차적으로 펼쳐진다. 주요 작품을 사진으로 살펴본다.
 
   
▲ '죽여주는 여자' 등을 연출한 이재용 감독의 '한 도시 이야기'(2016년)는 1994년 6월 9일, 24시간 동안 서울의 다양한 풍경을 담아낸 프로젝트다. 700여 명의 인원이 동원됐으나, 예산 문제로 편집 단계에서 중단되어 10년간 미완으로 남았던 프로젝트였다.
   
▲ 이불 작가가 1990년 '수난유감-당신은 내가 소풍 나온 강아지 새기인줄 알아?'라는 퍼포먼스 당시 입었던 의상 '무제(갈망)'이 전시 중이다.
   
▲ 이상현의 '떠오르는 지구달'(1994년 출품, 2016년 부분 재제작)은 우주와 행성, 그리고 인류의 희망에 대한 그의 일관된 관심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지구의 문명이 최후를 맞이했을 때, 살아남은 소수의 지구인들이 숨겨져 있던 지구달을 이용해 외계의 생명체와 교신한다는 발상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다.
   
▲ 안수진의 '그때'(1994년)는 오래된 흔들의자에 모터로 노를 달아 저어가게 하면서, 끊임없이 어디론가 향해가는 기계의 반복성이 갖는 일종의 좌절된 노스텔지어를 함께 담아내고 있다.
   
▲ 박혜성의 '나는 너의 침대를 사랑한다-비누 비너스'(1994년 출품, 2016년 재제작)는 욕조 안에 비누로 만들어진 비너스를 만들고 녹이는 퍼포먼스를 통해 성과 상품, 미와 소비, 불변과 가변의 관계항들이 어떻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휘발되는지를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 김미경의 '알'(1994년 출품, 2016년 재제작)은 스티로폼과 석고를 이용해 만든 2m 길이의 거대한 타원형 알을 형상화했다. 생명의 기원과 한국 사회의 기원을 모두 알이라는 모계적 속성에 위치시키자는 작가의 의지가 드러난다.
   
▲ 하인수의 '김씨가 이씨를 낳고, 이씨가 하씨를 낳고, 하씨가 신씨를 낳고……'(1994년 출품)는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부계사회에서 오랫동안 당연시되어온 부계 성씨의 계승에 대한 문제를 던지는 작업이다.
   
▲ 염주경의 '무제'(1994년 출품, 2016년 재제작)는 한국 여인의 한을 소재로 했다. 주체가 되지 못하고 항상 주변부에 속해야만 했던 한 많은 삶을 살았던 전통적 어머니들의 삶을 기억하고자 한다.
   
▲ 금누리의 '내.예.술.한.잔.받.게'는 1997년 개인용 컴퓨터가 일반화되지 않던 시절, 작가가 홍익대 조각과 4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내.예.술.한.잔.받.게'라는 제목의 시험문제를 전산망을 통해 출제했던 것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 고낙범 작가의 '마네킹' 연작(1993년)으로, 한 가지 색상을 사용해 명암의 변화로 그려낸 마네킹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유화 작업이다.
   
▲ 이형주의 '세 상의 요'(1991년 출품, 2016년 재제작). 사람의 체취와 흔적이 배어 있던 요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꽃, 벌레, 흙과 함께 뒤섞여가는 과정에서 인간과 동물, 신체와 시간, 유기물과 무기물, 잠과 죽음 사이의 경계 등에 대한 작가의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준다.
   
▲ 작가 이형주가 자신의 기억에 의존해서 90년대를 대표하는 언더그라운드 카페들을 편집적으로 재구성했다. 1990년대 미술은 음악, 문학, 무용, 퍼포먼스, 영화, 디자인 등 다양한 장르들이 함께 예술적 에너지를 교환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언더그라운드 카페는 90년대 신세대 미술가들의 주요한 활동 무대이자 미적 감수성을 형성했던 공간이었다.
   
▲ 이윰 작가의 '레드 디멘션-빨간 블라우스'(1995년 출품작)는 작가 자신이 쓴 동명 소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 현실 세계에서 무감각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초대해 그들의 잃어버린 꿈과 정체성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는 설정이다.
   
▲ 김영은 작가의 '나와 음악 사이'(2016년)는 1990년대 한 해를 대표한 음악 10곡을 선정해 10명의 서로 다른 목소리가 각각의 노래를 연이어 부르는 방식으로 재생된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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