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청정을 기점으로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 최고조
광증에 빠진 사도세자, 결국 뒤주에 갇혀 사망

출처: (주)쇼박스

[문화뉴스 MHN 권성준기자]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 번씩 들어봤을 법한 사건이 있다. 바로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와 조선의 21대 국왕 영조의 이야기이다. 이 사건은 아버지와 아들, 왕과 왕세자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이라 더욱 비극적인 요소를 심화시킨다.

영화 '사도'에서는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굶겨 죽인 '임오화변'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배우 송강호와 유아인의 열연뿐만 아니라 임오화변을 다룬 사극 중 가장 고증이 좋으며 노론 음모설을 벗어난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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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 최악의 비극으로 꼽히는 임오사변은 대체 왜 일어났으며 무엇이 이 부자의 관계를 아버지가 아들을 굶겨 죽이는 파국으로 사태를 심화시켰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사도세자는 1735년 영조 나이 42세에 늦둥이로 얻은 왕자였다. 영조의 장남이었던 효장세자가 1728년 급사한 뒤 겨우 얻은 왕자로 조선시대 기준으로 고령이었던 42살에 아들을 얻은 영조는 매우 기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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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돌을 지난 사도세자를 왕세자로 책봉하며 아들이 공부할 책을 직접 만드는 등 극진한 아들 사랑을 보여주었으며 사도세자는 어렸을 때부터 총명한 모습을 보여 영조를 더욱 기쁘게 하였다.

그러나 고령의 나이에 얻은 자식에게 너무 기대가 컸던 탓일까 영조는 어린 사도세자가 자신의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화내며 엄하게 혼내는 경우가 잦아졌고 사도세자는 그런 영조를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이러한 관계는 사도세자가 대리청정을 맡으면서 정점에 이르게 된다.

대리청정 동안 사도세자의 결정에 영조는 "왜 니 마음대로 하냐"라며 타박을 주었고 사도세자가 어떻게 할지 묻는다면 "그것 하나 제대로 못한다"라며 다시 타박을 주어 신하들 앞에서 망신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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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는 점점 감정적으로 아들을 괴롭히게 되는데 사도세자의 작은 거짓말을 트집 삼아 그 거짓말로 인해 비가 온다며 면박을 주고 숙종의 능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대기하게 한다.

그리고 영조는 대왕대비와 언쟁하다 왕을 그만두겠다며 선위 소동을 일으켜 사도세자가 홍역을 앓고 1달 밖에 지나지 않은 약한 몸으로 눈 오는 날 석고대죄를 하게 되고 결국 쓰러지게 만든다. 실제로 영조는 재위 기간 내내 선위를 하겠다며 시위한 적이 많았는데 그래서 사도세자가 조선에서 가장 석고대죄를 많이 한 인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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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영조의 꾸준한 괴롭힘 속에서 사도세자는 단어 그대로 점점 미쳐가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런 징조가 조선왕조실록에서도 곳곳에 보이는데 영조가 자신이 아끼는 딸과 함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화를 내며 쫓아내 창문과 담을 넘어 도망친 사도세자는 약을 먹고 자살하겠다고 소동을 벌였다.

또한 술을 마시지 않은 사도세자에게 술을 마신 것을 자백하라며 몰아 붙였고 보다 못한 상궁이 영조에게 사도세자의 몸에서 술 냄새가 나는지 맡아보라고 억울암을 토로한다. 사도세자가 상궁을 꾸짖고 내쫒자 오히려 영조는 어른 앞에서 함부로 누군가를 꾸짖는다며 신하들에게 사도세자를 훈계하라고 지시하였다.

심지어 훈계 과정에서 신하의 실수로 불이 났는데 영조는 사도세자를 꾸짖었으며 억울한 사도세자는 우물에 몸을 던져 자결을 시도하였으나 신하들이 건져내 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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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는 영조가 인원왕후의 죽음을 사도세자 탓으로 돌리자 사도세자가 분노해 뛰쳐나간 시점부터 사도세자의 광증이 시작된다.

실제로 임오화변이 일어날 당시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씨가 "환관, 나인, 노비 등을 죽인 것이 거의 백여 명이며, 불로 지지는 형벌을 가하였고 어린 환관과 경호를 모아 기생, 승려들과 밤낮으로 음란한 짓을 일삼으며, 제 시종들을 불러 가두기도 하였다."라고 증언하였다.

영화 속에서는 내관의 목을 잘라 자신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에게 보여주는데 이는 실제로 기록되어 있는 야사이며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고 후회하는 등 조울증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도세자의 광증은 아버지인 영조로 인한 게 거의 확실해 보이는 점은 옷에 대한 강박증이다. 영화에서도 이유 없이 계속 옷을 갈아입으며 이는 옷을 갖춰 입고 아버지인 영조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에서 나오는 강박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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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경언의 고변으로 그동안 있었던 모든 기행들이 영조에게 전해지게 되고 결국 영조는 폭발하여 사도세자를 질책한다. 실제로 나경언의 고변이 임오화변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여겨지며 영화에서 사도세자는 영조에게 "넌 존재 자체가 역모야!"라는 말을 듣게 된다.

영화에서는 이 말을 들은 사도세자는 밤에 영조를 암살하기 위해 몰래 잠입하나 때마침 영조와 대화하고 있던 정조를 보고 포기한다. 실제 역사에선 이 부분에 대한 기록은 영조의 명에 의해 삭제되었기 때문에 영화에서 창작한 내용이다.

결국 1762년 5월 13일 사도세자는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히게 된다. 이어 15일에는 왕세자에서 폐위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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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역사에서 사도세자는 종종 몰래 뒤주를 탈출하였으며 몰래 음식과 부채를 넣어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를 안 영조에 의해 뒤주는 봉인되고 결국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힌 지 8일 후에 죽었으며 안에서는 이전에 받은 부채를 둘로 쪼개 오줌을 받아먹은 흔적이 나타났다고 한다.

영화에서 부채는 정조가 태어났을 당시 사도세자가 만든 부채를 장인인 홍봉한이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힐 때 몰래 넣어주는 것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부채는 영화 속에서 정조와 사도세자를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로 사용된다.

결국 아버지의 따듯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마디를 원했던 사도세자와 임금이 아니었다면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영조의 서로 간의 입장 차이와 갈등은 임오화변이라는 최악의 비극으로 끝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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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나를 자식으로 생각했소' 조선 최대의 비극 임오화변과 영화 '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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