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가천대학교가 지난 2월 22일 자랑스러운 가천인 'Gachon Pride(가천 프라이드)'에 배우 박리디아(사단법인 아시아청년예술가육성협회 이사장)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가천대학교는 총동문회와 함께 사회 각 분야에서 자기역할을 묵묵히 다하며 가천대학교를 빛내고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동문을 발굴해 '가천 프라이드' 릴레이 인터뷰를 한다.

이 날 가천대학교는 "배우, 모델, 교육자, 언론인으로 무대와 스크린, 강단, 방송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것은 물론이고, 청년 예술가 양성을 위해 힘쓰고 있는 회계학과 86학번 박리디아 아시아청년예술가육성협회 이사장을 '가천 프라이드' 릴레이 인터뷰 두 번째 주자로 선정했다"며 인터뷰 내용을 공개했다.

   
▲ 모델 겸 배우 박리디아

부모님 반대도 막지 못한 연기 열정
어린 시절부터 '끼'가 넘쳐났다. 5살 때 교회 무대에서 춤과 노래를 부르던 것이 고등학교 연극 활동으로 이어졌다. 스스로 데뷔 시점을 국립극단 제1회 청소년 연극제에 참가했던 고등학교 2학년 때로 정한다.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니?" 라는 질문에 스스럼없이 "배우요" 라고 대답하던 때였다. 그렇게 배우의 꿈을 키워가고 있었으나 정작 대학진학을 앞두고는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다. 교사이셨던 부모님은 매우 완고하셨다. 평범한 직장인의 길을 걷길 바라셨던 부모님의 뜻에 따라 가천대 회계학과로 진학했다.

1학년 1학기에는 세무서에서 인턴도 했다. 그렇게 배우의 길은 멀어져 가는 듯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꿈을 접으려하면 할수록 배우에 대한 열망은 더 커져만 갔다. 그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간절한 생각에 1학년 2학기가 되면서 부모님 몰래 세무서를 그만두고 대학 연극 동아리인 '아름 극예술 연구회'에 들어갔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로극단인 '뿌리'에 워크숍 단원으로 입단했다. 그러나 또다시 부모님의 반대로 극단에서 나와야만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뜻을 굽히지 않고 극단 '민중'의 정단원으로 또다시 들어간 어느 날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에서 줄리엣 역을 맡게 된 것이다. 세종문화회관 별관(지금의 서울시 의회) 대극장 프로 무대에서 당대 스타였던 배우 故 김주승의 상대역으로 '연극계의 신데렐라'라는 찬사를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부모님은 말없이 극장에 오셨고 공연을 보신 후부터 누구보다 든든한 후원자로 응원을 보내고 계신다.

   
▲ 모델 겸 배우 박리디아가 출연한 연극 '조용한 식탁'

우연히 찾아온 모델의 기회, 연기능력을 갖춘 모델로 각종 CF 촬영 출연
학교 캠퍼스를 인생 최대의 기회를 열어준 장소로 기억한다. 대학 1학년 여름, 우연히 캠퍼스를 거닐다 의상학과 선배에게서 제1회 졸업전시회 모델을 해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았다. 의상학과는 당시 최고의 모델 양성기관 중 하나였던 '모델라인'에 졸업전시회 모델 교육을 의뢰했고 덕분에 프로 모델 교육기관에서 전문적인 모델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모델라인 측으로부터 프로 모델로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에는 모델과 배우는 별개의 직업이라고 생각했고, 오직 연극만이 정통 배우의 길이라고 고집했던 터라 과감히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 후 2년이 지나 대학교 3학년이 되던 1988년, 대한민국은 올림픽 열기로 가득 찼다. 고등학교 시절 길 가다 우연히 올림픽 자원봉사를 신청했던 것이 마침 연락이 왔다.

본래는 장내 정리 봉사를 신청했었는데 면접 담당관과 면접을 거친 후 시상식과로 배정받았다. 시상식 장면은 TV를 통해 전 세계로 전파되다 보니 봉사자의 걸음걸이나 자세, 예절 등이 중요했다. 담당기관에서는 시상식 봉사자 교육을 모델라인에 의뢰했고 그렇게 2년 만에 또다시 모델라인에 가게 됐다. 반복되는 우연은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본격적인 프로 모델의 길로 나서게 됐다.

   
▲ 1991년 모델 겸 배우 박리디아 대한항공 TV 광고 출연장면

박리디아는 모델라인 17기로 정식 데뷔를 한 후 런웨이 무대와 국내 다수 패션 잡지 그리고 TV CF에서 큰 화제를 일으키며 승승장구했다. 탄탄한 연기실력을 바탕으로 연기 잘하는 모델로 인정받아 단숨에 톱모델의 자리에 올랐다.

1989년 대한항공 광고를 시작으로 90년 두산 종갓집 전속모델, 93년 삼성항공, 삼성전자, 신세계백화점, 제일모직 전속모델 등 국내 대기업 광고를 석권했다. 또 '여자는 한 달에 한 번씩 마법에 걸린다'의 카피로 유명한 매직스 CF의 모델에 이르기까지 90년대를 대표하는 CF 퀸으로 자리매김했다.

   
▲ 1996년 모델 겸 배우 박리디아 매직스 TV광고 출연장면

승승장구하던 시절 홀연히 떠난 러시아·미국유학
CF퀸으로 얼굴을 알리며 승승장구하던 95년 가을 홀연히 러시아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났다. 정통 연기를 배우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이대로 계속 가다간 도태되고 만다는 불안감이 낯선 땅으로의 유학으로 이끌었다. 먼저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 연극예술 아카데미 기치스에서 뮤지컬 연출을 전공했다. 뮤지컬 전문 극단 에이콤 1기로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에 주인공 사라 역할로 3년간 활동하면서 뮤지컬의 매력에 빠졌던 터라 언젠가는 내 손으로 대형뮤지컬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선택한 학과였다.

배울수록 알고 싶은 것이 더 많아진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2년 뒤 미국 뉴욕으로 다시 옮겨 갔다. 러시아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을 배웠으니 다음으로는 아메리칸 액팅 메소드를 배워보자는 작정이었다. 그러나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IMF 위기가 발생해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며 학비를 벌어야 했다.

톱 모델에서 전단지 모델로, KBS 교양제작국 MC에서 소규모 한인방송 리포터로, 회계학도에서 슈퍼마켓 캐셔 점원으로, 뮤지컬 주인공에서 카페 알바 가수로 삶이 추락하는 듯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마련된 학비로 세계적인 연기 아카데미인 HB스튜디오(Herbert Berghof Studio·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 우피 골드버그 등을 배출)에서 미국 토니상을 세 번이나 거머쥔 최고의 여배우이자 연기코치였던 우타하겐의 연기 메소드를 배웠다. IMF를 겪으면서 고생스럽게 공부하던 유학 시절, 학교에서 얻은 지식보다 더 값진, 삶으로부터 진정한 연기를 배울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 영화 '컷런스딥' 촬영 중인 배우 박리디아

귀국 이후 연기에 대한 뜨거운 열정 내뿜어 배우, 교수, MC, 협회 이사장, 극단 대표, 언론사 대표 등 카멜레온 같은 매력 발산해
영화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뉴욕에서 이재한 감독의 '컷 런스 딥'에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되면서부터이다. 컷 런스 딥은 아시아계 미국인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로 전 대사가 모두 영어로 된 한국인이 만든 미국영화이며, 2000년 국내 개봉과 함께 부산 영화제 한국영화 경쟁부분에 올랐다. 당시 여주인공 자격으로 부산영화제에 참석해야 했는데, 비행기 값이 없어서 레드 카펫을 밟지 못했던 것이 평생의 한이다.

8년 동안의 긴 유학을 마치고 2002년 귀국을 했다. 귀국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1년에 무려 14편의 연극에 출연하며 본격적인 배우로서의 작업을 시작했다. 하루에 세 작품을 연습하고 두 작품을 연기하는 강행군이었음에도 그저 연기한다는 즐거움에 힘든 줄 몰랐다.

CF 퀸의 귀환을 알리듯 LG화학 전속모델이 되고, TV 드라마 MBC '궁', SBS '연인', tvN '우와한 녀', '응급남녀', 영화 '헨젤과 그레텔', '권순분여사 납치사건', '우아한 세계'에 출연했으며 각종 행사에 단독 MC를 맡으며 제자리를 찾아갔다. 2004년 삼척동굴엑스포 총감독과 뮤지컬 갈라 팀 예술감독을 맡으면서 연출로서의 능력까지 인정받았다. 현재는 2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정회원 극단 '반도'의 대표 직분을 받아 연출과 기획 제작까지 도맡고 있다.

박리디아의 또 다른 수식어는 국내 모델 출신 연극영화과 교수 1호이다. 성균관대 겸임교수, 호서예술전문대 교수부장을 거쳐 현재는 건국대 연기전공 겸임교수와 중국 산동공예미술대학교 모델 연기과 객좌 교수로 있으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 베트남 등 해외의 후학들을 양성하는 일에도 힘을 쏟고 있다.

   
▲ 모델 겸 배우 박리디아 tvN 드라마 '우와한 녀' 출연장면

배고픈 예술가들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다.
박리디아는 예술가 후배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주고 아시아 각국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교류의 장을 열기 위해 2015년 아시아청년예술가육성협회를 결성했으며 "밥 굶고 힘들게 예술 활동을 하고는 있는 후배들이 너무 많습니다. 꿈이 있고 재능이 있어도 현실에 부딪혀 고개 숙이고 있는 후배들이 마음껏 날개짓을 할 기회를 찾아주고 싶다"고 전했다.

아시아청년예술가육성협회는 예술인 육성 현장 경험을 토대로 예술 재능인 발굴 및 육성 지원, 예술 교육 지원, 국제교류 예술 교육 사업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베트남과 문화교류 예술가들과 협력해 양국의 젊은 예술가들이 교류하고 우리 문화를 알릴 수 있는 대회를 개최하는 등 국제교류에도 힘쓰고 있다.

또 박리디아는 문화예술전문 인터넷 언론사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문화뉴스에 부사장직을 맡고 있다. 그녀는 몸이 10개여도 모자랄 정도로 힘들지만 숨어있는 젊은 예술가들을 찾아내고 그들을 세상에 보여주는 일이 기쁘고 행복하다며 밝게 웃었다.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
박리디아는 후배들에게 "예술이 아닌 어느 분야든 힘든 과정이 있다. 포기하지 말고 순순한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다 보면 언젠가는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반드시 이루어진다. 원론적인 얘기로 들리겠지만 나는 진리라고 믿는다"며 지치지 말고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라고 당부했다.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횃불과 같이 훨훨 타오르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하던 거 계속하면서 평생 배우로 살아가는 게 계획이다. 3월에 우타 하겐 스승님의 책을 번역한 번역서가 출판된다. 부족하지만 배우가 되고 싶은, 연기를 배우고 싶은 후배들에게 힘이 되고자 열심히 노력했다. 저를 필요로 하면 그곳이 사막이든 우주든 알래스카든 기꺼이 가서 제가 아는 것들을 나눌 것이다"며 "버나드 쇼의 말을 가슴에 새기곤 한다. 인생의 참 기쁨은 스스로 중요하게 여기는 목적을 위해 자신을 사용하는 것. 내 인생은 전체 공동체에 속해 있고 내가 살아있는 동안 공동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특권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나는 완전히 쓰임 받고 소진되기를 바란다. 더 열심히 일할수록 더 많이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 자체가 즐거움이다. 가능한 한 밝게 타오르고 싶다"고 전했다.

배우든, 모델이든, 교수든 그 어떤 직업으로 분류하기보다 그저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훨훨 타오르는 횃불과 같이 존재하기를 원하는 박리디아. 앞으로 또 어떤 빛으로 우리에게 나타나게 될지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해 본다.

[기사제공] 가전대학교 홍보실

[편집] 문화뉴스 손미영 기자 hope011011@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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