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새 역사를 쓰다. 리하르트 바그너를 기억하다.
바그너, 오페라 '로앤그린' 

[문화뉴스 MHN 박한나 기자] 하객의 박수와 축하로 아름다운 신부가 등장한다. 바그너의 '결혼행진곡'이 홀을 뒤덮고 남은 평생을 약속한 두 남녀가 손을 맞잡는다. 그런데 혹시 알고 있었는가? 결혼행진곡이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아름답기만 한 곡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 말이다.

오페라의 거인이라 불리는 바그너, 그에 대하여 알아보자.

바그너
[클래식, 기억하다] '결혼행진곡'의 비밀, 오페라의 거인 바그너를 기억하다.

1813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난 리하르트 바그너는 교사나 공무원 등의 평범한 일을 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자랐다. 그러나 젊은 배우이자 화가, 시인이었던 그의 양아버지 루드리히 가이어에 의해 자연스럽게 극장과 가까워졌다. 가이어와 함게 극장에 드나들던 바그너는 무대라는 '가상의 세계'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상상력이 풍부했던 바그너에게 화려한 무대장치와 공연의 스릴 그리고 배우들의 움직임은 어린아이에게 꽤나 자극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병으로 누워있는 양아버지 가이어를 위한 피아노 연주에서 바그너가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당시 궁정 오페라 궁정악장이었던 칼 마리아 폰 베어에게 바그너의 레슨을 맡기게 된다. 드레스덴 오케스트라의 굳건한 명성을 얻었던 베버는 바그너에게 엄청난 음악적 영감을 주게 된다. 그러나 가이어가 사망한 뒤 극장과의 관계가 끝나자 그는 베버를 떠나게 된다. 이후 바그너는 드레스덴 왕립 학교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공부를 하게 된다. 이 곳에서 바그너는 그동안 자신이 상상으로만 그려왔던 상상세계의 기초를 마련하게 된다. 이는 바그러나의 환상과 사상의 무게가 체계를 갖게 된 것이다.

바그너는 음악뿐만 아니라 그리스어, 라틴어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 비극과 셰익스피어 등의 작품을 접하게 된다. 이러한 밑바탕은 베버의 오페라나 호프만의 작품같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뿜어내는 작품에 대한 그의 넘치는 애정을 진정시키기도 하였다. 그중 바그너는 영웅과 신, 전설과 신화로 가득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좋아했고,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저자인 호메로스에대한 애정을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고전들은 그의 세계관을 형성하게 해주었고 나중에 음악극이라는 자신만의 형식으로 표현하게 된 것이다. 바그너는 자신의 자서전 ‘나의 인생’(Mein Leben)에서 바그너는 자신에게 고전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준 이 학교에 대해 극찬을 보내기도 했다.

바그너
[클래식, 기억하다] '결혼행진곡'의 비밀, 오페라의 거인 바그너를 기억하다.

그러나 바그너는 학과나 음악에서 모범생이 아니었다. 수학에는 관심도 소질이 전혀 없었고 피아노 솜씨도 선생들에게 주목을 끌 정도가 못 되었다. 실제로 학교를 졸업하던 1827년 무렵 14살의 소년 바그너는 셰익스피어의 몰두하며 자신도 시인이 되겠다고 선언하기도 하였다. 10대 시절의 바그너는 예민한 괴짜였다. 그의 관심은 음악 자체보다는 언제나 주위에서 벌어지는 음악, 문학, 철학, 정치같은 문제에 관심과 의견을 가졌던 모습이 전해지기도 한다. 

'오페라의 거인'이라고 표현되는 바그너이지만, 실제 체구는 마르고 작은 체구를 가졌다. 특히 피부 알레르기로 평생 고생했는데 그 때문에는 나중에 실크로 만든 속옷과 겉옷을 입어야 했고 그의 적들은 바그너를 비단 옷을 입는 퇴폐주의자(데카당)이라고 공격당하기도 했다. 

괴테의 제자였던 삼촌 아돌프 바그너와 가까워진 바그너는 삼촌의 권유로 고전을 더 읽게 되었다. 그렇게 2년간을 셰익스피어 스타일의 5막극 '로이발트'(Leubald)를 완성하게 된다. 물론 완벽한 창작물이라고 할 수 없지만, 당시 바그너가 만들었던 대부분의 작품이 이후 바그너가 만들게 된 종합예술작품의 기초가 된다. 

바그너
[클래식, 기억하다] '결혼행진곡'의 비밀, 오페라의 거인 바그너를 기억하다.

그러던 어느 날, 바그너는 베토벤의 '피델리오 서곡'과 '제 7번 교향곡'을 듣고 감동받게 된다. 베토벤에 취한 바그너는 베토벤이 그랬듯이 자신의 '로이발트'를 위한 음악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베토벤의 다른 작품을 포함한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교향곡을 공부하게 된 바그너는 본격적으로 음악공부에 집중하게 된다. 

1832년 바그너는 인생 최초의 정규 오페라 '결혼(Die Hochzeit)'을 작곡하기 시작한다. 이 오페라는 파흐타 백작의 저택에서 머물 때, 백작의 딸 제니에 대한 사랑과 미움 그로 인한 무거운 마음에 대한 기념품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후 바그너는 라이프치히에서 7중주 한 곡과 '결혼'의 첫 장면 음악을 작곡하였지만, 공연될 가망성이 없다고 느낀 그는 원고를 없애 버린다. 결국 세상에 빛을 보게 된 바그너의 최초 오페라는 오페라'요정(Die Feen)'이다. 이 작품은 카를로 고치의 희곡 ‘뱀 여인’ La donna serpente)을 각색한 작품으로 당시 독일의 초자연적, 환상적인 장면들이 많이 담긴 작품이다.

출처 대구오페라하우스, 로엔그린
[클래식, 기억하다] '결혼행진곡'의 비밀, 오페라의 거인 바그너를 기억하다.

이외에서 바그너가 남긴 오페라는 '방랑하는 네덜란드인(Der Fliegende Hollander)', '탄호이저(Tannhäuser)'등 수많은 대작들이 있지만, 오늘날 결혼행진곡으로 알려져 있는 오페라'로엔그린(Lohengrin)'은 빼놓을 수 없는 바그너의 대작이다. 

오페라'로엔그린(Lohengrin)'의 결혼식 장면에서 등장하는 결혼행진곡은 말 그대로 주인공 엘자와 미지의 기사와의 결혼식 장면을 그리고 있다. 갑작스러운 브라반트 대공의 죽음으로 주인공 엘자는 동생 고트프리트와 남겨진다. 이후 고트프리트는 행방불명되고 이로 인해 영주의 자리에 엘자가 앉게 된다. 이때, 엘자는 동생을 죽였다는 살인 누명을 쓰게 되는데 미지의 기사의 도움으로 누명에서 벗어나게된다. 그러나 그에게 조건이 있었으니, 엘자는 미지의 기사와 결혼을 해야하고 절대 기자의 이름을 물어봐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출처 pixabay
[클래식, 기억하다] '결혼행진곡'의 비밀, 오페라의 거인 바그너를 기억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리게 되고 이때 유명한 '결혼 합창곡'이 흘러나온다. 행복한 순간도 잠시. 이름을 묻지 말라는 기사의 당부에도 엘자는 그의 이름을 묻게 되고 기사는 스스로를 로앤그린의 기사라고 소개한다. 또한 마녀의 마술로 동생 고트프리트가 백조로 변하였다는 사실도 알게된다. 진실을 마주한 엘자와 기사는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었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사는 성배의 비둘기가 이끄는 배를 타고 떠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모든 음악이 그렇지만, 아름다운 선율과 가사에서 담지 못하는 비극적이고 슬픈 이야기들이 종종 담겨있다. 물론 '결혼 합창곡'의 가사 자체는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고 축복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들의 운명을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그리 아름답게만은 느껴지지 않을 수 있는 곡이다.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음악을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즐기는 것도 좋지만, 음악에 담긴 내용과 흐름을 이해한다면 더욱 폭넓은 음악의 심미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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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기억하다] '결혼행진곡'의 비밀, 오페라의 거인 바그너를 기억하다.

오페라의 새 역사를 쓰다. 리하르트 바그너를 기억하다.

바그너, 오페라 '로앤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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