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일본을 배경으로 한 귀신 이야기...욱일기 논란도
일본의 특수한 문화 감수성이 성공의 배경으로 분석돼

[문화뉴스 김종민 기자] 드래곤볼, 원피스의 기록을 갈아치운 만화가 2020년에 등장했다. 

1년 판매량, 신권 초동 판매량 등에서 각종 기록을 경신한 '귀멸의 칼날'이다. 귀멸의 칼날은 '혈귀(오니)'로 변한 여동생을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해 '혈귀의 왕'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사진=학산문화사
사진=학산문화사

귀멸의 칼날은 2016년 연재를 시작해, 2020년 연재를 마치기까지 누적 1억 5천만부 이상을 판매해 역대 일본 만화 순위 7위에 올랐다. 귀멸의 칼날보다 상위권에 있는 작품은 원피스, 나루토, 명탐정 코난 등으로 최소 10년 이상의 기간을 연재했다. 귀멸의 칼날은 그만큼 일본 내에서 단기간에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극장판으로 개봉한 영화는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도 흥행했다.

일본에서는 흥행 수입 100억엔 돌파에 일본 영화 중 최단 기간인 9일이 걸렸으며, 15일만에 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일본 영화의 천만 관객 동원 최단 기록을 경신했다. 또한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굳건히 수성하던 '지브리'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제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극장판이 1월에 개봉해 3월까지 120만 여 관객이 찾았다. 200만 관객을 동원한 디즈니의 '소울'과 함께 현재 양강 체제다.

전 세계로 범위를 넓히면, 북미와 중국 시장에서 개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4억 달러(한화 4천7백억원)의 흥행 성적을 올렸다.

서구권에서 더 흥행했던 나루토-원피스 등의 작품과 대조적으로, 귀멸의 칼날은 상대적으로 일본 내에서 더 흥행한 작품으로 꼽힌다. '욱일기 논란'에 휩싸인 귀멸의 칼날이 일본 내에서 주목 받은 이유를 살펴 보자.

■ '제국' 일본의 찬란했던 과거 다이쇼 시대

귀멸의 칼날은 근대 일본인 '다이쇼 시대(1912~1926년)을 배경으로 한다. 한국에서는 1910년 국권피탈 이후의 '침략자 일본'으로 더 알려진 시기다. 피지배 국가였던 입장에서는 일본이 파렴치한이나 다름이 없지만, 일본 내에서는 '영광의 시기'로 불린다.

일본은 네덜란드-미국에 의해 문호 개방 및 불평등 조약을 체결한 뒤, 서구 문명을 따라잡기 위해 메이지 유신을 단행했다. 결국 청-러시아 등의 거국을 전쟁에서 이기고 미국, 영국에 의해 '강대국'으로 인정 받았던 직후가 다이쇼 시대다. '강대국' 일본은 제국주의 노선을 밟아 한반도, 중국, 동남아시아를 식민지로 만들어 '아시아의 모범'이 되고자 했다. 

동시에 다이쇼 시대는 급변의 시기기도 했다. 1870년에 공식적으로 신분을 폐지하고, 신분의 상징인 '칼'을 차는 것을 금지했다. 전기와 기차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으며, 도쿄와 오사카 등에서는 근대 도시의 모습이 갖춰지기도 했다.

다이쇼 시대는 일본인들에게 특별하다. 1800년대 후반의 메이지 유신 결과가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모던 재팬'이 꽃 폈던 시기여서일까. 이 시기에 낭만을 갖고 있는 사조가 따로 '다이쇼 로망'으로 불릴 정도다.

귀멸의 칼날에서는 시골과 도시를 오가며 근대 일본의 대표 '다이쇼 시대'를 담았다. 아직 도시와 시골 간의 격차가 큰 시대. 중앙 정부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외진 지역에서부터 기술이 발달한 근대의 중심까지 이야기가 펼쳐진다. 

근대의 일본, 사진=재팬 익스피리언스
근대의 일본, 사진=재팬 익스피리언스

다만 이 낭만 속에서 많은 일본인들이 당시 착취 당했던 식민 국가의 현실을 외면한다. 이들은 말 그대로 '관심'이 없다고 분석된다. 욱일기 논란이 점화된 귀멸의 칼날 책 표지 '선 버스트(태양의 줄기가 뻗어져 나가는 문양)'이 이를 반영한다.

태양의 빛줄기를 묘사한 '선 버스트'는 하나의 상징적 문양으로, 일본 제국 이전에도 많이 사용됐던 문양이다. 그럼에도 지금은 '선 버스트'가 욱일기로 읽힐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피해 국가가 과거사에 여전히 민감한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문양을 굳이 사용할 이유는 없지만, 그럼에도 종종 일본에서는 하나의 '디자인'으로 선 버스트가 활용된다. 이는 일본 전체적으로 과거사-정치적 문제 등에 대한 무관심이 팽배해 있음을 드러내는 요소다.

■ '오니(귀신-혈귀)'에 대한 일본의 문화

일본은 신토의 국가다. 신토(神道)란 일본의 토착 종교로 만물에 인격을 부여하고 신으로서 숭상하는 행위를 뜻한다. 신토의 신은 산이나 강, 바다 등의 자연 현상에서부터 죽은 사람, 조상신 등을 포함한다. 이들은 내세에 이관되는 존재가 아니라, 현세에서 함께 공존하는 관계다.

일본의 신토는 열렬한 신앙 생활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문화나 생활 양식에 가깝다. 신토의 신들은 어떤 초월적 존재로 보기 어려운 길흉화복과 관련된 수호신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일본인들의 많은 풍속은 이들과 함께한다. 일본인들이 길하다고 여겨지는 '신사'에 방문해 새해에 참배를 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각 신사에서 모시는 신들은 다른데, 한국에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전범'을 '수호신'으로 미화한 야스쿠니 신사일 것이다.

사진=AHE(유럽 고대사 지식백과)
사진=AHE(유럽 고대사 지식백과)

수호신이 있다면 반대되는 존재도 있기 마련이다. 악한 존재가 구체화된 '오니'다. 오니는 한국의 도깨비와 비교되지만, 도깨비와는 다소 다르며 '악귀'에 가깝다.

귀멸의 칼날에서 '혈귀'나 '도깨비'로 번역되는 오니(혈귀)는 사람을 주식으로 삼으며, 햇빛을 보면 죽는 존재다. 사람을 혈귀로 만드는 '혈귀의 왕'이 있어 절대악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래서 귀멸의 칼날의 주제에는 '권선징악'이 흐른다. 사람을 해치는 혈귀는 결국 주인공의 칼에 최후를 맞이한다. 주인공을 돕는 조력자에는 수호신이 등장하기도 한다. 다만 혈귀는 소멸하기 직전 자신의 행위를 뉘우치며, 혈귀로 변하기 전 인간이었던 과거를 돌아보기도 한다. 이는 선-악의 초월적 존재를 상정하지 않는 일본 특유의 문화를 반영한다.

오니, 사진=AHE(유럽 고대사 지식백과)
오니, 사진=AHE(유럽 고대사 지식백과)

■ 칼과 무도에 대한 숭상

귀멸의 칼날에서는 제목이 암시하듯 칼이 등장한다. 혈귀를 멸하는 칼을 찬 검객이 주요 등장 인물이다.

일본은 이처럼 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이는 일본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봉건시대 일본은 무사 계급이 특권 계층, 한국으로 치면 양반과 같은 역할이었다. 일본의 무사 '사무라이'는 양민보다 높은 신분으로 귀족에 해당했고, 이를 드러내기 위해 칼을 차고 다녔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국시대의 지방 영주들을 통일해 중앙 권력을 얻었는데, 당시의 지방 영주들을 보호하는 무력이 바로 사무라이였다. 이들은 영주로부터 봉토를 지급 받고, 그 안에서 통치 권한을 행사하기도 했다.

사진=터틀 퍼블리시
사진=터틀 퍼블리시

다만 전국 시대와 에도 막부(한국의 조선 시대) 당시의 무사도와 근대 일본의 무사도는 다른 개념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일본은 제국주의 근대 국가가 되는 과정에서, 국민 교육을 통해 민족 정체성을 확립하곤 했는데, 이때의 무사도는 주군에 대한 충성과 무력에 대한 숭상 등이 주요 내용으로 포함됐다. 

도리어 칼을 차는 것을 금지하는 '폐도령'과 신분제 철폐로 사무라이 계급이 해체되면서, 근대 이전의 사무라이 문화는 상당히 소실됐다는 의견이 있다. 근대 이전의 사무라이는 지배 계급이었기 때문에 그들만의 문화가 있었다. 난투가 아닌 정식 일대일 대결로 승부를 내는 '일기토' 등이 그 예시다.

결국 일본의 과거 지배 계급, 세련된 문화를 상징하는 '칼'과 근대 일본의 군사 강국 지향성, '강함에 대한 동경' 등이 겹쳐, 일본 특유의 무사도 정신이 확립된 것으로 분석된다.

귀멸의 칼날에서는 혈귀를 심판하는 '혈귀 사냥꾼'이 무사로 묘사된다. 이들은 각자의 강함에 따라 등급이 나뉘며, 강한 혈귀를 상대하기 위해 자신을 단련한다는 무도를 내세운다. 약한 주인공이 노력을 통해 강해진다는 내용은 소년 만화의 클리셰지만, 그 강함에는 칼을 중심으로 한 무도가 자리잡고 있다.

사진=귀멸의 칼날 공식 홈페이지 캡처
사진=귀멸의 칼날 공식 홈페이지 캡처

귀멸의 칼날은 이처럼 일본 문화의 독특한 특성을 담아냈고, 과거 일본의 풍경을 복고풍으로 담아낸 그림체로 일본 내에서 호평을 받았다. 2020년에 이르러서도 귀멸의 칼날 같은 작품이 흥행하는 것을 보면, 여전히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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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일기 논란' 귀멸의 칼날에 왜 일본은 열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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