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 강가에 서린 여인의 정(情)과 한(恨)의 춤판
2020 서울무용제 초청작, 평론가들에게 깊은 인상 남겨
국립전통예술중학교 학생들 특별수 공연도 펼쳐져

지난 7월11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패강가 공연이 열렸다.
지난 7월11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패강가 공연이 열렸다.

 

[문화뉴스 백현석, 조희신 기자] 강물은 굽이굽이 흘러가고, 이곳 저곳을 연결하지만, 건너편 공간을 단절시키기도 한다. 흘러갈 뿐 돌아오지 않는 존재. 그러나 바다로 흘러가 더 큰 세계로 나아감을 의미하기도 한다.

패강(浿江)은 대동강의 옛 이름이다. 패강가(浿江歌)는 대동강 강가에서 부르는 노래를 의미하고 있다.

지난 5월29일, 30일 국립극장에서 남산의 사계를 표현한 ‘목멱산59’ 공연을 마친 장현수 안무가가 7월11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대동강을 소재로 사랑하는 임을 떠나보내는 여인의 애틋한 정(情)과 한(恨)을 표현한 ‘패강가(浿江歌)’ 공연을 펼쳤다.

 

패강가

 

이번 공연은 16세기 중반 조선시대 문인이었던 임제(林悌)의 시조에 한국 춤과 한국음악을 만나 사랑하는 임을 떠나보내는 여인의 애틋한 정(情)과 한(恨)이 굽이굽이 서린 이별가가 춤으로 표현된 공연이다.

맨발의 안무가 장현수는 초록색 고깔에 긴 소매 달린 초록색 의상으로 온 세상을 휘감듯 무대를 누볐다. 넘쳐 나는 신명과 함께 일가를 이룬 장현수의 춤 속엔 사랑하는 임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체념과 함께 깊은 한이 서려 있는 듯했다.

 

 

춤에 대해 잘 모르는 관객들이 보기에는 장현수 안무가의 춤은 마치 승무를 연상시킬수도 있을 것이다. 고운 님을 떠나보낸 후 그녀는 아마도 여승이 될 것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버들가지처럼 초록색으로 감싼 여인, 흰옷의 남자, 족두리의 신부, 이 셋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했다. <편집자 주>

 


<주요 공연 장면 리뷰>

프롤로그: 강가에 배가 홀로 떠 있는 영상이 나타난다. 흰옷의 남자가 천천히 등장하며 그 뒤로 부채를 든 몇 명의 무용수가 가볍게 동작을 한다. 강물은 흘러가지만 돌아오지 않는 존재이다. 이것을 표현하듯이 흰옷의 남자가 제각각 서 있는 무용수 사이로 흘러가듯 지나간다. 

 

우리의 삶은 강물과 같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만, 앞으로 흘러가듯 나아가는 길만 있다. 강물은 바다로 흘러가 더 큰 세계로 나가듯이 우리의 삶도 앞으로 나아가면 더 큰 미래가 기다릴 것이다.

1수: 대금 독주 '상령산'이 잔잔하면서도 힘차게 극장에 울려 퍼진다. 음악에 맞춰 흰옷 남자의 독무가 펼쳐진다. 혼자 넓은 무대를 오가며 가볍게 몸짓한다. 현재와 과거를 회상하며 향후 해야 할 바를 정리하고 전체적인 조망을 바탕으로 굶은 선의 흐름을 그린다. 대금의 리듬 속에서 흰옷 남자의 애절한 동작은 가슴 깊이 잔잔하게 남는다. 

 

 

2수: Franck:pastorale op 19 음악이 흘러나온다. 여자와 남자가 등장하며 음악에 맞춰 조화롭게 춤을 춘다. 꿈결 같은 상상 속에서 환상적인 사랑 이야기를 조용히 펼쳐가는 설화적 감동을 주며 아기자기한 동선을 갖는다. 여자와 남자의 표정은 간절하면서, 애틋함이 묻어나 있다. 

 

 

특별수: 앞에 무대가 서서히 올라오면서 국립전통예술중학교 학생들의 단아한 춤이 시작된다. 부채를 이용해 춤동작을 하는 모습이 꽃봉오리가 피어나는 듯하다. 특별수는 교육적 관점에서 예술을 해석하며,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 한국예술의 혼을 담고 있다. 

 

 

3수: 흰옷의 남자가 녹색 부채를 들고 Schubert:piano Sonata No. 13 in A major Op. 120 음악에 맞춰서 신명 나는 춤을 춘다. 3수는 백성들의 배고픈 현실을 걱정하며, 힘과 열정으로 어려움을 이겨내는 모습을 그려냈다. 무겁지만 가볍게 동작을 하는 모습이 현실의 어려움을 힘으로 이겨내는 고통 속의 환희가 묻어나 있다. 음악이 끝나갈 때쯤 흰옷의 남자는 태평성대를 바라는 듯 기도하는 동작을 마치고 서서히 사라진다.

 

 

4수: 사또의 모습을 한 무용수가 등장한다. 무용수는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기 위해 왕비 또는 왕이 직접 춤을 춘다는 내용을 담은 태평무를 춘다. 거문고와 장고는 태평무 장단에 의한 변주를 한다. 주황 비단이 무용수 손에 이리저리 휘날리며 가는 모습이 백성들의 권리가 침해와 나라 걱정이 앞서는 아픔 마음이 그려진다.

 

 

6수: 초록색으로 감싼 여인 '장현수' 무용수가 등장한다. 바람에 휘날리는 버드나무를 표현한 것처럼 보이고, 흐르는 강물처럼도 보인다. 6수는 대동강에 놀러 나간 아가씨가 버들을 보면서 임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다시 애틋한 마음에 젖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음악이 고조될수록 슬픔도 점점 커져 나가는 것인지 흰옷의 남자는 슬픔이 차오르는 표정으로 격동적인 안무를 춘다. 그런 슬픔에 맞춰 초록색으로 감싼 여인도 몸짓이 그림 그리듯 격해진다.

김정호의 희망가가 흘러나오며 흰옷의 남자는 자신의 옷을 벗으며 내려놓는다. 음악이 끝날 때쯤 흰옷의 남자는 괴로움에 몸부림치듯 쓰러진다. 

 

7수: 철 가야금과 소리북의 산조가 흘러나오며 흰옷의 남자는 일어날 듯하면서 일어나지 않는다. 남자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몸부림친다. 꽃과 같은 아름다움도 금세 쓰러질 자신의 모습을 안타까워하고 버들가지처럼 떠나는 낭군의 마음을 원망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강물이 흐르는 배경으로 바뀌며 붉은 치마를 입은 5명의 무용수가 맞춰서 가볍게 춤을 춘다. 이별의 장소 대동강 나루터에서는 떠나는 임이 빨리 돌아오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아 버들가지를 꺾어주고는 했다. 패강가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버들은 사랑하는 임과의 이별을 상징한다.

 

 

8수: 남녀 무용수가 등장하며 사랑으로 남는 한(恨)을 표현한다. 두 남녀의 호흡은 절실한 사랑을 보여준다. 여무용수는 돌아오지 않은 임을 그리워하며 눈물 흘리는 애틋한 여성의 한(恨)의 모습을 그려냈다.

 

9수: 무용수가 흰 부채를 들고 독무를 펼친다. 평양은 지식인이나 지배계층의 인물들이 터를 잡고 뿌리를 내리는 공간이 아니었다. 의무나 책임의 무게를 느끼지 않은 맑은 사랑을 나눌 수 있지만, 이러한 이별을 전제로 한 사랑에서 남자는 다시 자기중심으로 돌아간다.

여인은 떠나간 남자에게 비련을 품고 남게 된다. 사랑하는 임이 준 부채인지, 무용수는 부채를 들고 내리는 동작을 하면서 미련을 못 버리는 여인을 표현한 듯 보였다.

 

 

무용수는 강물이 흐르는 영상으로 천천히 다가가며 사랑의 주체는 남녀임에도 항상 사랑의 아픔은 여자의 무게로 남는 모순을 표현했다. 

 

10수: 흰옷의 남자가 쓰러져있다. 장현수 무용수는 버들가지를 들고 쓰러진 남자 곁에서 춤을 춘다. 장현수 무용수가 음악 시나위에 맞춰서 물거품을 표현하며 사랑의 아픔과 속절없음을 휘몰아치듯 보여준다. 서서히 남녀가 등장하고 그 후 모든 무용수가 등장해 대동강에 물결이 칠 때 보이는 물거품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한편, 공연을 마친 장현수 안무가는 “삶은 인간이 행하는 예술 중 가장 중요하고, 가장 어렵고, 가장 복잡한 예술이라 할 수 있다”며 “우리는 인간으로 예술을 하며 춤을 통해 예술을 표현한다. 표현된 예술 속에 행복을 찾아가는 자아실현의 행복이 좋다”고 춤에 대한 애정을 표시하였다.

'상징적 춤이 아닌 예술의 춤을 출 수 없을까'라는 의문 속에 항상 자신을 돌아본다는 장현수 안무가. 그녀는 오늘도 유유히 흐르는 강, <패강가> 속의 언덕으로 자신의 춤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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