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수의 무용 '패강가'에 부쳐

 

장현수 안무가의 <패강가>는 현대무용과 고전무용, 현대음악과 전통음악이 흑백 영상으로 느리게 흘러나오는 대동강의 영상과 함께 어우러진다. 그리고 무대에서 무용수와 국악인들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몸의 표현과 음악이 무대 뒤에 유장하게 흐르는 대동강의 물굽이에 실려 흘러간다.

 

2021년 패강가 공연 장면
2021년 패강가 공연 장면

대동강은 그 옛날 패강이라 하였고 평양 시내를 흐르는 보통강과 함께 현재의 평양 인민들에게 정 깊은 강이다. 무대배치를 볼 때 영상에 흘러나오는 대동강과 공연이 진행되고 있는 사이에는 둑과 같은 경계가 있다.

강 건너를 피안이라 하여 죽은 사람이 건너가는 저 세상을 의미하거나 그 옛날부터 우리 민족에게 전해져왔던 동명왕 전설과 고전시 「공무도하가」를 연상하게 한다. 언제나 이별은 사립문과 동구 밖, 강이나 산모롱이를 돌아 고개마루에서 이루어진다. 그것이 우리네 민중의 이별 정서였다. 바로 그 장소에서 생이별이나 사별을 하였던 것이다.

강은 인간에게 어떤 존재이며 인간은 강에게 어떤 존재인가? 강은 인간 생명의 젖줄이요 풍요이며 신성함이었다.

4대문명의 발상지가 강이었던 것은 인간이 군락을 지어 집단사회로 되는 과정에서 농경사회에서는 강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인도인들에게 강가강이 그렇듯 우리 한반도의 북녘에는 대동강이 사람들의 마음에 흐른다.

대동강은 사람들의 가슴에 유구하게 흘렀듯이 인민의 역사와 함께 흘렀다. 장현수의 <패강가>는 대동강의 상징성을 통하여 고전적인 것에서 현재를 이야기 하고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많은 남녘의 사람들이 무대 뒷면에 흐르는 대동강의 사시사철의 모습과 그 주변의 을밀대 등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게 될 것인가? 이것은 오늘날 73년간 분단의 참혹함을 이야기해 준다. 강은 흐르는 데에 그 본질이 있다. 산골짜기 개울물이 도랑물이 되고 시내가 되고 대하가 되어 넓은 바다로 흘러간다. 조국의 분단은 이 아픈 역사의 강을 흐르지 못하게 한다.

어여쁜 여인과 주인공 사내가 대동강가에서 만나고 이별하였듯이 남녀의 이별은 곧 남녘과 북녘의 이별이다. 그 이별이 곧 분단이다. 설화 속 비련의 두 주인공이 어떤 사연으로 이별하였듯이 우리 민족도 역사적 사건으로 이별하였다.

 

 

그러나 장현수는 이 이별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이 이별이 하나로 흐르는 강처럼 다시 만날 날을 예비한다. 그 예비가 곧 그가 꿈꾸는 무대이다. 그가 무대에서 구현하는 것은 바로 지금은 갈 수 없는 대동강의 흑백영상이 남녘의 관객과 만나게 한다. 얇고 비치며 가벼운 느낌의 흰 옷을 입은 남자 무용수는 그 의상에서도 분단의 답답함을 벗어던지고 새처럼 가볍게 날아가고자 하는 남녘과 북녘 동포들의 속마음을 비쳐내고 있다.

강의 새는 강을 건너가기도 하고 건너오기도 하듯이 경계를 무너뜨린다. 그것처럼 장현수는 주인공 남자 무용수를 통해 이 경계를 넘나들게 하려고 한다. 그가 맹렬하게 춤을 추다가 강과 무대의 경계인 둑에서 그 날개를 접고 휴식을 취하는 것도 그런 효과가 아닐까 한다.

큰애기라 불리우는 처녀들의 땋은 머리 같이 치렁치렁 늘어뜨린 능수버들은 대동강의 명물이다. 그 버들가지를 꺾어 님에게 바치고 사랑하는 ‘나’를 잊지말라고 주었던 전별품이거나 사랑을 고백할 때의 버들가지이다. 사랑의 욕망은 버들가지처럼 흔들린다.

사랑하는 주체는 상대방에 마음을 빼앗기므로 마음에 균열이 일고 흔들린다. 흔들리면서도 사랑은 물이 제자리를 찾아 바다로 흘러가듯이 말끔히 연소된다. 타버리지 않으면 안 될 사랑이 격랑이 되어 흘러간다.

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이 타올랐는가 그 사랑으로. 그 사랑은 빼앗긴 조국을 되찾겠다고 북풍한설을 마다않고 조국을 쓸쓸히 등지고 간도와 만주벌판으로 걸어갔던 이들의 이별과 눈물도 흘렀다.  

버드나무는 봄을 상징한다. 봄에 물이 올라 연녹색의 잎이 나고 노랗게 꽃이 피고 꽃은 다시 작은 솜꽃같이 되어 바람에 날아간다. 기나긴 얼음으로 두툼한 대동강에 봄이 오면 생명이 움트고 사람들도 가슴이 설레인다.

얼음이 풀리어 흐르는 물소리는 유장하고 온종일 뱃노래 가락이 물결에 묻힌다. 이러한 정경과 상상을 불러오는 장현수의 안무는 물결처럼 때로는 격렬하면서도 유장하고 가벼우면서도 사뿐사뿐하며 발짓을 하여 물 위에 떠있는 나룻배가 흘러가는 듯이 춤을 추게 한다.

 

 

현대적인 춤과 고전 춤이 어울어져서 그 옛날의 대동강이 오늘날의 대동강을 불러온다. 특히 부드럽고 정감이 짙은 대금연주, 깊고 넓으면서도 맺음이 있으며 묵직한 거문고 연주, 그리고 춤과 어우러진 정감과 설화의 이야기가 절정에 오를 때에 고음으로 가슴을 찢고 들어오는 아쟁소리, 정가의 단아하면서도 정감이 깊이 스며드는 음감은 대동강을 끼고 살아가는 북녘 민초들의 가슴을 하나하나 불러낸다.

그 소리에 맞추어 추는 몸의 자태에서 무용수는 곧 강변에 사는 한 사내가 되고 한 여인네가 되어 우리 가슴에도 얼음처럼 맺힌 것들을 훌훌 풀어낸다. 그러므로 장현수의 <패강가>는 곧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이루고 분단으로 맺힌 것을 풀어내는 대동의 춤이며 음악일 것이며 대동강가에 돋아나는 새 능수버들이라 해야할 것이다. 

 

글 : 심종숙(시인/문학평론가)

 

심종숙(시인/문학평론가)
심종숙(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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