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와 ‘관계의 본질’이 중심축
코로나 팬데믹을 겪고 있는 청춘들에게 보내는 응원
11월 6일까지 나온씨어터에서 공연

[문화뉴스 문수인 기자] 바이러스로 위축되어 버린 세상은 바삐 움직이던 꿈의 발자국도 잠시 멈추게 했다. 그렇게 우린 단절된 채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바다' 같은 드넓은 곳을 더욱 소망하게 되었다.

지난달 29일 개막한 컴퍼니 익연의 ‘미드나잇 통조림’은 삶을 향해 서툰 발걸음을 내딛는 ‘청춘’들의 이야기다. '청춘'을 지낸 사람들에게는 그때의 기억을 되새김질 해 볼 수도 있겠다.

오랜 시간 배우로서의 삶을 살아온 작가 김수연은 이 이야기들을 ‘무균 살균된 통조림’이라는 작품 콘셉트에 담았다. 

그 밀봉된 기억의 통조림들을 관객들의 가슴 속으로 슬며시 전달한다. 혼자만 꺼내먹어도 무방하다는 개별적 위로와 함께, 첫발을 내딛고 이제 막 청춘을 시작한 컴퍼니 익연의 김수연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컴퍼니 익연은 어떤 단체이고, 창단하게 된 계기와 과정이 어떠셨나요.

배우의 꿈만 꾸었던 제가 전혀 작가가 될 줄 몰랐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배우가 아닌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고민을 했습니다. 연기를 그만두고, 처음으로 다른 일을 했어요. 먼저 버터 플라워 케이크를 배우러 다녔죠.

왜 꼭 무대에서만 특별한 일이 생겨야 해?

일상에서의 특별함을 내가 만들면 되지.

정말 열정적으로 배우러 다녔나 봐요. 결국 저의 큰 장점과 제가 가진 한계 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버터 플라워 케이크 만드는 일도 그만두고 그 과정에서 2013년에 쓴 ‘체홉적 상상-갈매기 5막 1장’을 장편으로 각색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달간 칩거하며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고통스러운 작업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가장 열정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결정을 내려버렸습니다. 자신 있는 일을 하기로요. 그 후에는 어떤 무엇도 두렵지 않더라고요.

그냥 제 안에 있는 나 자신이 가자는 데로 가면 된다는 확신과 함께 컴퍼니 익연을 만들었습니다. 

공연 ‘미드나잇 통조림’의 기획 의도는 무엇인가요? 

바이러스로 위축되어 버린 세상에서 꿈도 멈춘 듯한 단절된 상황에서도 우리는 ‘바다’ 같이 환기할 수 있는 곳을 꿈꾸는 것 같습니다.

‘미드나잇 통조림’은 삶을 향해 서툰 발걸음을 해나가는 ‘청춘’들의 이야기이지만 지난 시간을 돌아볼 기회를 마련하기도 합니다.

5개의 에피소드는 청춘들의 사랑과 우정, 꿈의 영역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관계’와 ‘관계의 본질’이 중심축으로 팬데믹을 겪고 있는 청춘들의 불안감에 대해서도 고찰해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현상을 무대 위에서 사실적으로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중 두 번째 에피소드를 설명하자면 두 남녀가 등장하는데, 남자 ‘김영훈’이 첫 번째 마음이라면, 여자 ‘최수정’은 마음의 형상화입니다.

‘최수정’은 ‘김영훈’이 오래 마음에 품고 아끼며 좋아했던 ‘썸녀’였고, 작품 전체에서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데, ‘최수정’은 현대인의 냉소와 고독을 상징하며 상처받기 싫은, 또는 이미 상처투성이가 된 우리의 모습 같습니다.

현대인이 잃어버린 ‘사랑’의 가치를 마지막에 여러분들도 ‘김영훈’, ‘최수정’과 함께 생각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관객에게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표현하라고요.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도 두 주인공이 사랑을 확인하며 말하죠.

-"시그널을 보냈어야죠!"
-"난 계속 보냈어!"
-"몰랐어요!"

시그널로는 불충분해요. 시그널과 메타포로는 불충분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우리는 모두 ‘시그널’이 아닌 ‘진실의 말’을 갈망하고 있으니까요.

유통기한 지난 통조림의 처리는 개인의 방식에 달려 있다’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어떻게 시작된 이야기인가요? 또 영화 '미드나잇 통조림'을 연극 마지막에 넣으신 이유가 있다면.

에피소드들은 모두 재구성되었지만, 제가 경험한 이야기들에서 그 씨앗을 가져왔어요. 꼭 실제 사건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떤 생각으로부터 출발하거나. 저라는 사람을 스스로 관찰해보면, '사랑하고 있구나!'라고 느끼게 되는 계기가 상대방의 부재를 통해서였어요.

영화 대사 중에 "내가 사랑을 확인하는 방식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나는 그 사람이 부재할 때, 사랑을 확인하는 것 같아. 몰라, 그런 게 있더라. 옆에 없어야 보고 싶은 거 있잖아. 그래서 내가 2년을 버텨봤더니, 선배 생각이 2년 동안 계속 나는 거야. 매일 매일. 근데 그게 버텨져. 그래서 버텼지."

모든 에피소드의 끝, 즉 사랑이 모두 지나간 후 시간에게 씻긴 후에야 이성적으로 정리되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맨 마지막 에피소드로 배치하였습니다. 

연극 음악을 라이브로 선택하셨습니다. 또 왜 가야금이었나요?

23살 때부터 친했던 친구가 가야금을 연주하는 친구였어요. 자연스럽게 가야금을 접하게 되었었죠. 그리고 그 친구와 작업을 함께 해왔었어요. 현재 연주하시는 분은 친구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제 작품들엔 항상 가야금을 라이브로 연주했어요. 

하지만, 현대식 음악과 융합된 것보다 현악기가 홀로 연주될 때의 고독함을 좋아해요. 그래서 박형준 작곡가를 섭외해서 제 의견을 말씀드리고, 원하는 방향으로 작곡을 하고, 가야금 연주를 했어요. 굉장히 흡족한 작업이었습니다.

사소한 기억들이 사소하지 않게 남아 있는 것은 참 불행하다.
사소한 일상에서 끊임없이 너를 생각나게 하니까.
문득 문득 이런 날씨에도 네가 생각난다.
특히 사소해 보이는 특별할 것도 없는 이런 일요일.
앞으로 나는 특별한 일만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중간중간 파도치는 바닷가가 옴니버스의 형식의 극들을 잇습니다.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걸까요. 

저는 부산에서 자랐어요. 항상 제 소개를 할 때, 부산 출생이라는 것을 가장 먼저 쓰죠. 나이가 더 어렸을 때는 출생지의 의미에 대해 몰랐어요. 고등학교 때 교실 안에는 베란다가 아주 크게 있었죠.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요. 

그래서 바다가 특별한 의미인 줄 몰랐는데, 현재 작가로서, 또는 예술가로서 바다를 보며 자란 것은 특별한 의미이고 경험이구나 생각하게 되었어요.

미드나잇 통조림 속의 청춘들은 모두 답답한 현실 속에서도 원대한 꿈을 꾸고 있어요. 저는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지만 우리는 모두 드넓은 바다로 나가길 원하고 있어요.

모두가 그런 포부가 있어서 이 현실을 견뎌내는 거지요. 저는 ‘젊음’의 특권이 마음껏 꿈꿀 수 있는 것에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현실과 타협하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무언가 더 나은 현실을 갈망하고 있고, 그걸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동시에, 펜데믹 시대를 사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었어요. 

공연을 찾아주실 관객분들께 한마디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관객 여러분들에게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 드리려는 ‘마음’을 언제나 최우선으로 두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가장 강조했다는 것을 저희 제작진들과 배우들 모두 잘 알 겁니다. 귀한 관객 여러분들의 시간에 적어도 사유의 공간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미학적 공간을 열어드리는 것이 제 목표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진실’만 말하는 것이 저의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소중하고 귀한 발걸음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귀한 발걸음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는 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해 날 수 없는 새 '붕'. 얕은 바람에도 쉬이 맡겨 날 수 있는 그들의 날개와 달리 ‘붕’의 날개는 그 길이만 몇천 리가 넘어 큰바람이 아니고서는 동력을 가질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위력의 바람이 불어왔고 다른 새들은 여느 때처럼 힘차게 날갯짓했지만, 바람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그 바람에 비로소 ‘붕’은 날개를 활짝 펼칠 수 있었다.

그는 큰 물고기 ‘곤鯤’이 변해서 새가 되었다는 ‘붕’의 이야기를 들은 어느 날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고. ‘붕’에게 제 처지를 이입하며 제게도 동력을 일으켜 줄 큰바람만 불어와 준다면, 접힌 날개를 운명처럼 펼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내 바람을 기다려서만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깨달았다며 결국 스스로 일으켜내는 바람만이 진리라는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컴퍼니 익연이 그와 같다고 한다.

다소 낯선 단어인 ‘익연翼然’은 '새가 좌우로 날개를 활짝 편 모습'의 한자어이다. 예술가 김수연과 그가 이끄는 컴퍼니 익연은 그 이름처럼 비상하여 관객들에게 어떤 희망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사진=문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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