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GAIA 시리즈의 네 번째 이야기
대자연을 표현하기 위해 돼지, 토끼, 바퀴벌레, 클로버 등의 오브제 활용
나의 몸도 작품의 일부, 부상 걱정은 하지 않아

[문화뉴스 김창일 기자] 1978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제임스 러브록 교수의 <지구상의 생명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란 책에서 가이아(GAIA) 이론을 언급했다. 지구는 하나의 유기체로 자기조절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거대한 생명체인 지구는 인간에 의해 자기조절 능력이 사멸되고 있다. 

설치 작가 신재은은 돼지, 토끼, 바퀴벌레, 네잎클로버 등을 주요 오브제로 사용하며, 2018년부터 GAIA 시리즈를 이어오고 있다. 

신재은 작가는 “사회적 표피에 감춰져 있는 자연적 본성과 질서를 드러내면서 인공적 표피의 유약함”을 말하고 싶다고 했으며,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자연이 부여한 본성과 질서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신재은 작가의 개인전이 인천 차스튜디오에 진행되고 있어 작가를 만나봤다.


 

GAIA 시리즈를 이어오고 있는 신재은 작가
GAIA 시리즈를 이어오고 있는 신재은 작가

 

신재은님 독자님들께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설치 작가 신재은입니다. 조각을 전공했고 각 작업마다 필요한 매체를 다양하게 융복합적으로 사용하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는 주로 문명의 외피 속에 감추어진 자연의 본질과 질서를 드러내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그간 다 양한 프로젝트성의 작업을 해왔는데요, 네잎 클로버를 소재로 한 <안젤라연구소> 시리즈, 돼지를 소재로 한 <GAIA> 시리즈 외에도 문명 사회의 병폐에 관한 비판적 관점을 담은 작품들이 있습니다. 

 

새로운 공간에서 작품을 전시할 때, 가장 고민되는 점은 무엇인가요? 

거의 매번 새로운 공간에서 전시를 하는데요, 공간마다 풍기는 분위기나 구조적 특징을 작품 맥락에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것에 흥미가 있어요. 동시에 고민하는 지점이기도 하고요. 전시 공간이 정해지면 공간에 맞춰서 작품의 색감이나 형 태 규모 등을 조정하기도 하고 공간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의 개념이나 방향성을 정립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1층과 2층 공간을 동시에 관망할 수 있는 복층 구조의 전시 공간을 몇 번 사용한 적이 있는데, 1층의 작품과 2층의 작품이 연결된 것처럼 연출해서 분리된 세계처럼 보이지만 사실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복층 전시실로 이뤄진 차스튜디오
복층 전시실로 이뤄진 차스튜디오

 

현재 Twins 전시가 운영되고 있는 차스튜디오 역시 비슷한 복층 구조인데, 여기에서도 전시장 출입구와 가까운 1층에는 상대적으로 일상에서 익숙하게 접할 수 있는 이미지의 작품을 설치했습니다. 2층에는 좀 더 일상에서 접하기 힘든 현장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작품을 설치한 후, 두 작품의 수직선상 위치가 동일하도록 조정해서 1층 작품과 2층 작품의 상관관계를 설치 방식으로 시각화 했습니다. 

다른 예시로는 2018년 GAIA-prologue 전시를 개최했던 전시장이 2층에서 1층을 내려 다 볼 수 있는 구조의 공간이었는데, 이 특징을 반영해서 관객들이 죽은 돼지가 삽입되어 있는 작품을 2층에서 1층을 향해 내려다보며 관람하도록 연출해서 비인간과 인간의 위상, 그리고 비인간을 바라보는 인간의 위압적인 시선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2018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GAIA 시리즈의 네 번째 이야기

 

돼지의 머리, 어깨, 무릎, 발이 갈리는 장면을 설명하고 있는 신재은 작가
돼지의 머리, 어깨, 무릎, 발이 갈리는 장면을 설명하고 있는 신재은 작가

 

현재 전시인 <GAIA-part3: Twins>는 어떤 작품인가요? 시리즈에 대한 안내도 부탁드립니다. 

이 전시는 2018년부터 시작된 GAIA 시리즈의 네번째 이야기 이고요, 이전 2018년 <GAIA-prologue>, 2019년 <GAIA-part1: Inflammation>, 2020년 <GAIA-part2: White>에 이어 올해 <GAIA-part3: Twins>를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Twins’는 같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같은 비인간과 인간의 닮음 관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작업은 인간을 위해 부품처럼 존재하는 가축 돼지를 인간과 쌍둥이 형제로 해석한 만화적 전개의 시나리오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상 설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간 중심적 사회에서 지나치게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인간과 비인간, 포식자와 피식자의 불 편한 관계를 꼬집고 있습니다. 

GAIA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대지의 여신이면서 만물의 어머니인 가이아의 이름을 사용한 것이고, 또 지구를 환경과 생물로 구성된 하나의 유기체로 주장한 영국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의 내용을 기반으로 해서 대자연 속에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지구상의 모든 존재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시리즈 제목으로 선택했습니다. 

저는 설치 작업과 함께 설치작업과 연관된 시나리오 창작을 해서 텍스트도 작품으로 전시를 하는데요, 이 시나리오에서 저는 돼지와 인간을 가이아가 낳은 쌍둥이 형제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소나 닭처럼 다른 식용 가축들도 있는 데 왜 하필 돼지인지 질문을 많이 받아요.

 

수술용 의자에 앉아 돼지가 해체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수술용 의자에 앉아 돼지가 해체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영화 워낭소리에서 묘사된 것처럼 소는 동료, 동반자라는 인식이 있으며 닭은 달걀을 생산하는 생산 파트너의 역할을 함께 하고 있어 그나마 존중 받는 위치에 있는 반면 돼지는 다른 것 같습니다.

상하거나 버려진 음식 쓰레기 또는 인분을 처리하는 궂은 일을 하거나 장기 이식과 같은 의료용, 콜라겐과 같은 산업용, 그리고 고기 등 인간을 위한 도구로만 여겨져 정작 지구 생태계의 구성원으로써 돼지라는 동물 자체에 대한 연구 조사를 찾기 힘 들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돼지는 이종 장기 이식에 사용될 정도로 유전체 뿐 아니라 장기의 해부학적 구조나 생리 특성이 매우 비슷하고 아이큐가 개보다 높은, 사람 3~4세 정도의 지능을 가졌으며, 인간과 식성이 유사하지만 인간과 돼지 사이에 형제애는 없는 것 같습니다. 

 

관객의 관점에 따라 작품 해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쩌면 작가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해석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네, 맞습니다. 예컨대 GAIA 시리즈 작업 소재가 돼지이고 폭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미지가 주로 사용되다 보니 육식 반대를 주장하는 것처럼 해석되기도 합니다. 저는 오히려 육식주의자인데 말입니다. 저의 의도가 있기는 하지만 이미 제 작품은 저를 떠났으니 해석은 각자 관람하는 분들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자유입니다. 

 

대자연을 표현하기 위해

돼지, 토끼, 바퀴벌레, 클로버 등의 

오브제 활용

 

 

여수국제미술제 'Falling Pigs' 와 '시들지않는 동산' (사진=신재은 제공)
여수국제미술제 'Falling Pigs' 와 '시들지않는 동산' (사진=신재은 제공)

 

여수국제미술제에 <Falling Pigs>와 <시들지않는 동산>을 출품하셨습니다. 작가님 작품에는 토끼, 돼지 등 동물이 주요 오프제로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네 바퀴벌레와 클로버도 있었지요. 대자연의 질서와 본질을 표현하기 위한 소재로 선택한 것입니다. 살아있거나 살아 있었던 것 외에도 무른 물성을 가진 바셀린이나 기름, 물 등의 재료를 같은 맥락에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런 유기체를 단 단하거나 상하지 않는 물성의 인공 재료로 밀봉하거나 프레임을 씌워서 고정시키고 통제하는 표현 방식을 사용합니다. 

인공적으로 형성된 사회적 표피를 은유하기 위해서예요. 하지만 저의 시도가 무색하게 인공 표피 속에 갇힌 자연물은 인공 표피에 균열을 내면서 다시 통제 불가한 자유로운 상태로 돌아가려 하죠.

<시들지않는 동선>에서 투명 레진 속에 갇힌 토끼의 육체 역시 부패의 시간이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레진 밖으로 부패의 냄새 분자를 퍼트리고 있고, <침묵의 탑 pink>에 사용된 죽은 돼지의 사체 역시 부패하면서 형태가 일그러지고 점점 사체 위에 견고히 쌓인 흙과 시멘트, 아스팔트 층을 위태롭게 흔들었습니다. 

 

나의 몸도 작품의 일부, 

부상 걱정은 하지 않아

 

부여아트페어 클로징 퍼포먼스 '물밭 위의 식사' 박철호X신재은 (사진=신재은 제공)
부여아트페어 클로징 퍼포먼스 '물밭 위의 식사' 박철호X신재은 (사진=신재은 제공)

 

부여 아트페어 클로징 퍼포먼스 <물밭 위의 식사>를 보면, 몸을 사용하며 작품을 연출하셨습니다

가끔 몸을 사용해서 퍼포먼스 작업을 하기도 하는데요, 이번 부여 아트페어에서는 박철호 작가님과 콜라보레이션을 해서 박철호 작가님의 작품과 제 작품 세계관을 연결해본 것입니다. 저희 둘 다 세계관 확장에 공통적으로 관심이 있었거든요. 

이번 퍼포먼스에서는 박철호 작가님 작품에 사용되었던 오브제가 공격 무기처럼 폭력적 동세로 식사 공간이었던 물놀이 풀장 안에 던져졌는데요, 퍼포먼스에 함께 참여해서 오브제를 던져 주신 ‘오소리’팀 분들께 사전에 저와 박철호 작가의 신상을 걱정하지 말고 과감하게 던져 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부탁대로 격하게 몰입해 주셨고요. 퍼포먼스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격한 분위기가 고조되었는데, 그 때 날아온 오브제에 뺨을 맞아 며칠간 얼굴에 멍이 들고 부어 있었어요. 그래도 작품이 만족스럽게 나와서 부상 따윈 생각도 없었습니다. 격하게 임해주신 ‘오소리’ 분들께 감사해요. 

 

GAIA-prologue, 인천아트플랫폼,  신재은 개인전  1부,  '침묵의 탑 pink' (사진=신재은 제공)
GAIA-prologue, 인천아트플랫폼, 신재은 개인전 1부, '침묵의 탑 pink' (사진=신재은 제공)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2018년 GAIA 시리즈의 시작점이 되었던 작품 <침묵의 탑 pink>입니다. 흙과 시멘트, 아스팔트를 쌓아 올려 인공 지 층 탑을 만든 후에 탑의 가장 하단부에 죽은 돼지 한 마리를 삽입해 놓고 돼지를 부패 시키며 단단해 보이던 탑을 위태롭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전시 후 폐기돼서 이젠 디지털 이미지로만 존재합니다. 

향후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GAIA 시리즈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직 많이 남아있어서 당분간은 GAIA 작업을 이어 나갈 예정입니다. 이 작업 외에도 다른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 하면서 제가 관찰하고 느끼는 세상을 묘사하고 기록하고 싶습니다. 

 


 

신재은 개인전 (사진=인천문화재단 제공)
신재은 개인전 (사진=인천문화재단 제공)

 

한편, 신재은 개인전 <GAIA-part3: Twins>는 오는 27일까지 인천 중구 신포로 차스튜디오에서 진행된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신재은 작가가 상주해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