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년 연기인생 배우 이순재 연출작
"안톤 체호프의 문학, 철학 등 모든 사상 담긴 작품"
"기성세대가 젊은이의 꿈 가로막으면 안 돼...시대적 메시지 초점"
"고전은 배우가 창조할 여지 많아...'하이킥' 진지희, 참 똘똘해"
현역 최고령에도 활발한 활동 "아직도 연기 할 수 있다는 건 고마운 일"
오는 2월 5일까지 유니버설아트센터

사진=연극 '갈매기' 배우 겸 연출 이순재 / 문화뉴스DB
사진=연극 '갈매기' 배우 겸 연출 이순재 / 문화뉴스DB

[문화뉴스 장민수 기자] 66년 연기 인생의 대배우 이순재가 고전 '갈매기'를 통해 연극 연출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고전의 매력이라면 그 깊이와 가치 덕에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갈매기'는 배우계의 고전 같은 그에게 딱 어울리는 작품이다. 

이 연출이 '갈매기'를 선택한 건 석좌교수로 있는 가천대학교에서 4학년생을 대상으로 1년간 워크숍을 진행하며 다룬 작품이기 때문.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발표를 못 했지만 '갈매기'에 대한 많은 공부를 하며 더욱 매력에 빠져들었다.

'갈매기'에 대해 "단순한 작품이 아니다"라고 전한 그는 "체호프의 문학, 철학 사상이 다 들어가 있다. 또 직설적이 아니라 은유적이어서 심층적으로 분석하지 않으면 어렵다. 분석해보니 참 훌륭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갈매기'는 인물들 간에 복잡하게 얽힌 감정선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기성세대에 의해 꿈이 좌절되는 청년의 모습을 통해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던지기도 한다. 이 연출은 특히 후자에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그는 "시대적으로도 강한 메시지를 준다. 제정 러시아 말기가 사회적으로 최악의 조건이다. 농민들이 제일 먼저 일어났다. 체호프는 지식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고쳐야겠다고 생각하고, 바꾸려고 시도한 거다"라며 "보시는 분들이 거기서 사회적 의미, 은유적인 의미들을 이해하고 가시면 소득이 되지 않을까 싶다"라고 설명했다.

사진=연극 '갈매기' 배우 겸 연출 이순재 / 문화뉴스DB
사진=연극 '갈매기' 배우 겸 연출 이순재 / 문화뉴스DB

이어 "지금 우리의 청년세대가 가진 문제들도 읽을 수 있다. 기성세대가 젊은이의 꿈을 가로막으면 안 된다. 지금도 그런 부분에선 고전이 주는 메시지가 분명히 있다"며 작품을 통해 사회 변화를 이끌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극을 본 관객들은 이 연출이 의도한 메시지를 읽어내기도 하고, 인간 본연의 감정에 초점을 두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의미를 읽어내든 배우들에 대한 칭찬만큼은 이견이 없다. 이 연출 역시 이번 작품을 통해 배우들이 빛나길 바란다고 전했다. 

배우들에게 스승 같은 존재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일일이 연기지도를 하지는 않았다. 모두가 프로 연기자들이니 각자의 예술성을 최대한 끌어내고 존중하고자 의도했다. 또한 "고전의 경우는 깊이 들어가면 배우들이 창조할 여지가 많다"며 배우들에 대한 믿음을 드러냈다. 이번 작업을 "공동작업의 형태"라고 표현한 이유다.

사진=연극 '갈매기' 공연 장면 / 아크컴퍼니, VAST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연극 '갈매기' 공연 장면 / 아크컴퍼니, VAST엔터테인먼트 제공

특히 체호프의 작품에서는 더더욱 배우들의 존재감이 중요하다고 봤다. 이 연출은 "'갈매기'는 배우의 연기가 살아야 하고, 배우가 의미를 관객에게 정확히 전달해야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원작 그대로 해보자고 합의했다"라며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다. 배우들의 창조력이 필요하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인형이다. 그 이상을 하는 게 배우의 예술적 조건"이라고 전했다.

이번 작품에는 이항나, 소유진, 김수로, 강성진, 주호성, 이경실 등 경험 많은 배우들뿐 아니라 진지희, 권화운, 신도현, 김서안 등 처음 연극 무대에 도전한 배우들도 다수 참여했다. 

특히 진지희의 경우 2009년 방영된 MBC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손녀로 만났던 배우. 어느덧 성인이 된 그의 모습에 이순재는 "세월이 벌써 그렇게 흘렀나 놀랐다"라고 회상하며 "지금도 보면 참 똘똘하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근 TV드라마나 영화 등 매체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이 연극 무대에 도전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연출은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배우로서 연기를 다지고 훈련할 수 있는 최적의 형태가 연극이라는 것. 그는 "연극은 결국 자기의 연기력을 신장시키기 위한 토대다. 그 바탕에서 자기 몫을 하고 표현력을 키우면 어디 가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라며 "교육적 의미로라도 시간이 되면 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사진=연극 '갈매기' 배우 겸 연출 이순재 / 문화뉴스DB
사진=연극 '갈매기' 배우 겸 연출 이순재 / 문화뉴스DB

더불어 연기에 대한 철학도 밝혔다. 그에게 연기란 결코 '완성될 수 없는 것'이었다. 66년간 연기에 매진했으나 여전히 자신 역시 '미완'이라고 전했다. 관객이나 시청자, 혹은 후배 배우들이 보기에는 의아할 수 있으나 그에게는 진심이었다.

현재 촬영 중인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괴짜 욕쟁이 영감, 거친 선장 역할 등을 맡았다. 또한 연극 '리어왕'을 비롯해 몇 편의 공연도 예정 중이다. 그는 "안 해봤던 캐릭터다. 재밌게 하려면 충실히 만들어야 한다. 그런 변화를 위해서 노력하고 연구하고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1935년생, 어느덧 나이도 아흔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여전히 연극무대는 물론, 영화, 드라마, 대학 출강까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현역 최고령 배우인 그를 응원하는 팬들은 나이가 나이인 만큼 건강에 대해 염려하기도 한다. 다행히 그는 "조금 피곤하지만 괜찮다. 활동하는 자체가 생명력이다"라고 안심시켰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꾸준히 활동할 것을 예고했다. 

"주어진 과제들을 충실히 하고 보는 분들이 '잘 봤다'라고 하는 식으로 유지해나가면 되는 거 아닐까 싶어요. 지금 최고령 배우인데 언제 이렇게 됐나 모르겠어요. 60대쯤 되나 싶었는데. (웃음) 아직도 할 수 있다는 것이 고마운 일이고, 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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