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 '파우스트' 비극 제1부 다룬 작품
거대한 LED 스크린 활용, 스펙터클 무대 연출 돋보여
유인촌, 박해수, 박은석, 원진아...4인4색 연기열전
4월 29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사진=연극 '파우스트' 공연 장면 / LG아트센터, 샘컴퍼니, ARTEC 제공
사진=연극 '파우스트' 공연 장면 / LG아트센터, 샘컴퍼니, ARTEC 제공

[문화뉴스 장민수 기자] 고전도 충분히 재밌을 수 있다. 연극 '파우스트'가 이를 입증해냈다. 고전에 담긴 의미는 살리되 보는 재미는 한층 높였다. 여기에 스타 배우들의 열연도 더해졌다. 이런 식의 고전이라면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파우스트' 2부가 빠른 시일 내에 제작됐으면 하는 기대가 생긴다.

'파우스트'는 평생 학문에 정진한 파우스트가 악마 메피스토와 영혼을 건 거래를 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젊어진 파우스트는 그레첸과 사랑에 빠지고 위험한 관계를 이어가게 된다. 

독일 문학의 거장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20대부터 집필을 시작해 죽기 직전까지 약 60여년에 걸쳐 완성한 인생의 역작이다. 이번 연극에서는 2부로 구성된 방대한 분량의 원작 중 1부만을 다룬다. 

사진=연극 '파우스트' 공연 장면 / LG아트센터, 샘컴퍼니, ARTEC 제공
사진=연극 '파우스트' 공연 장면 / LG아트센터, 샘컴퍼니, ARTEC 제공

괴테, 고전, 선과 악, 신과 인간. 듣기만 해도 어렵고 복잡할 것 같다. 양정웅 연출은 어렵게만 느껴지는 고전을 쉽게 접하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애쓴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결과는 꽤나 성공적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관객을 현혹하는 화려한 무대. 특히 거대한 LED 스크린이 돋보인다. 언리얼 엔진을 기반으로 구현된 3D 이머시브 비디오를 적극 활용한다. 1막, 2막에 걸처 총 26번의 영상 전환이 이뤄지는데, 천상부터 마을, 정원, 서재 등을 끊임없이 오가며 지루할틈 없이 시선을 붙든다.

또한 극 중 그레첸의 방은 무대 뒤편에 마련된 공간에서 영상을 통해 라이브로 송출된다. 스크린의 배우와 무대 위 배우가 마치 영상통화를 하듯 연기를 주고받는 쌍방향 무대가 신선하다. 여기에 렌즈의 굴곡은 관객 입장에서는 그레첸의 방을 염탐하는 듯한 느낌도 받게 한다. 무대를 확장시키며 단절된 공간을 그려내는 영리한 시도다.

사진=연극 '파우스트' 공연 장면 / LG아트센터, 샘컴퍼니, ARTEC 제공
사진=연극 '파우스트' 공연 장면 / LG아트센터, 샘컴퍼니, ARTEC 제공

그 외 마술 같은 무대효과와 소품, 객석 통로의 활용 등이 관객 몰입도를 높이는 장치로 기능한다. 현실과 초현실을 오가는 화려한 영상비주얼, 물, 불, 흙, 공기 인간세계의 4원소를 표현하는 미장센은 '파우스트'를 현대적 판타지극으로 재탄생시켰다.

또한 무대의 시공간을 구체화하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도록 했다. 유행하는 대사와 노래, 놀이공원 콘셉트 등 곳곳에 현대의 관객들에게 어필할만한 요소들도 집어넣었다. 그러나 이미 고전이라는 인식이 박혀있는 탓에 괴리감이 느껴지는 건 아쉽다. 

시구를 읊듯 이어지는 원작의 특성상 서사 진행이 매끄럽지는 않다. 장면과 장면 사이 거리는 넓고 불친절하다. 대사 역시 일상적 친근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부자연스러움을 해결해주는 건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대사 전달력이다.

사진=연극 '파우스트' 공연 장면 / LG아트센터, 샘컴퍼니, ARTEC 제공
사진=연극 '파우스트' 공연 장면 / LG아트센터, 샘컴퍼니, ARTEC 제공

파우스트 역 유인촌, 메피스토 역 박해수, 젊은 파우스트 역 박은석, 그레첸 역 원진아가 원캐스트로 출연한다. 

유인촌은 베테랑답게 그 어려운 독백조의 대사를 유려하게 풀어낸다. 그의 존재 덕에 어지럽게 흩어질 수 있는 작품에 중심이 잡히는 느낌이다.

박해수는 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힘있게 끌고 간다. 유머와 카리스마가 공존하는 악마의 모습. 제목은 '파우스트'지만 실질적 주인공은 메피스토가 아닌가 싶게 종횡무진이다.

처음 연극에 도전한 원진아의 감정연기도 돋보인다. 순수한 설렘, 후회, 절규까지 밀도 있게 표현한다.

메피스토 박해수와 팽팽히 대적하는 박은석의 내공도 무시 못 한다. 노년의 파우스트가 가진 말투와 어조를 살리면서도, 젊어진 몸에 걸맞게 에너지는 높였다. 특히 후반부 그레첸과 메피스토 사이에서의 공허한 얼굴은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

사진=연극 '파우스트' 공연 장면 / LG아트센터, 샘컴퍼니, ARTEC 제공
사진=연극 '파우스트' 공연 장면 / LG아트센터, 샘컴퍼니, ARTEC 제공

선과 악, 욕망과 죄악, 사랑과 구원, 신과 인간 등 여러 키워드가 담겼다. 괴테가 한평생 사유한 것들을 모두 담아내고자 했으니, 한 가지로 이 작품의 의미를 정의할 수가 없다. 인간의 악함을 발견할 수도, 용서와 구원의 가치를 느낄 수도, 세계의 부조리함을 확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건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존재다"라는 말에 함축돼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뭐가 됐든 결국 인간 본성에 대한 이야기니. 200년 전 이야기임에도 지금의 관객에게 큰 공감을 안겨다 줄 수 있는 이유다.

대극장에서 스펙터클한 연출로, 무엇보다도 '재미있게' 만들어냈다. 고전일지라도 충분히 상업적 가치가 있음을 보여준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이번 작품에 참여한 배우, 스태프들이 함께 2부까지 선보이기를 바라본다.

한편 '파우스트'는 오는 4월 29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LG SIGNATURE 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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