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인촌이 연극 '페리클레스'의 출연 소감을 밝히고 있다.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해설 역을 보면서 '역사스페셜' 이미지가 강하게 떠올랐다."
"연출이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

우리에겐 TV 드라마 연기나 KBS 다큐멘터리 '역사스페셜'의 사회자로 더 낯익은 유인촌. 그러나 그는 '연극배우'다. 1998년 제34회 동아연극상 연기상, 2000년 제10회 이해랑 연극상 등 연극배우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를 받아본 경험이 있는 그는 '문제적 인간 연산', '파우스트', '햄릿' 등 주옥과 같은 작품에 출연했다.

세월이 흘러 60대의 노배우가 되어 연극 '페리클레스'에 출연한 유인촌. 그는 극 중에서 해설자 '가우어'와 '늙은 페리클레스' 역할을 소화한다. 해설자와 주인공을 모두 오가는 날렵함과 반전 매력을 가진 그의 무대를 잠시나마 12일 오후 열린 프레스콜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하이라이트 시연 후 열린 질의응답 시간엔 공연에 피워진 향냄새가 극장 전체를 뒤덮었다.

12일부터 31일까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페리클레스'의 프레스콜 질의응답 모습을 재구성했다. 이날 질의응답엔 영국 바비칸센터와 글로브극장 등 셰익스피어 축제에 공식 초청받으며 실력을 인정받은 양정웅 연출을 비롯해 배우 유인촌, 최우리, 남윤호가 참석했다.

먼저 인사를 부탁한다.
ㄴ 양정웅 : '페리클레스'라는 인물이 삶의 역경을 견디며, 가족을 다시 만난다는 내용이 요즘 살기 각박한 현실에 가족의 모습을 알려주는 것 같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이 방대하고, 스케일도 커서 관객들이 어떻게 볼지 기대가 된다.

유인촌 : 예술의 전당 이곳에서 세 번째 무대다. 2005년 '어느 말의 이야기-홀스또메르'에서 '홀스또메르'와 '햄릿'에서 숙부를 맡았다. 그 후 오랜만에 이 곳에서 공연하는데 여러 가지로 기분이 좋다. 이렇게 큰 작품을 국내에선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양정웅 연출과 작업한 결과가 개인의 입장으로 만족스럽다. 노력을 많이 했다.

최우리 : 셰익스피어의 '페리클레스' 작품과 양정웅 연출, 극단 여행자와 유인촌 선생님이 같이하신다는 말을 듣고 이 작품을 선택했다. 열심히 만들고 있고, 좋은 마음으로 노력하고 있다.

남윤호 : 좀 성숙하지 못한 '페리클레스'를 맡았다. 유인촌 선생님이 늙은 '페리클레스'도 맡으시는데, 제가 '젊은'이라는 말을 쓰면 싫어하셔서 이렇게 한다. 양정웅 연출과 세 번째로 만나는 것 같다. 모래에서 피와 땀을 흘려가며 준비했다. 재미와 감동을 드리는 연극을 준비했는데, 객석을 꽉 채워주셨으면 좋겠다.

   
▲ 유인촌이 '페리클레스' 프레스콜에서 '가우어'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작품에 출연한 계기를 알려달라.
ㄴ 유인촌 : 작품을 선정하는 것은 우선 셰익스피어라는 이유가 있었다. 여기에 양정웅 연출이 연출한다는 것과 극단 여행자가 오랫동안 팀워크로 다져온 앙상블이 있다. 많은 작품을 해온 과정을 봐서 단체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또한, 예술의전당이 직접 제작과 기획을 하면서 책임지고 무대에 오르기 때문에, 민간 극단에서 이 정도 작품의 스케일을 끌어올려서 한다는 것은 현재로선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런 몇 가지 이유가 작품을 해야겠다는 이유였다.

'가우어'라는 해설을 맡았지만, 해설 역이 상당히 까다롭다. 잘못하면 싱겁고, 재미없으며 극과 동떨어진다. 여기에 모든 출연자가 이 역할, 저 역할 가릴 것 없이 등장한다. 2막에선 '젊은 페리클레스'가 코러스 멤버로 모래를 치우며, 배를 미는 역할로 나온다. 나도 역시 북도 치고, 모래도 갈고 여러 가지 역할을 번갈아가면서 한다. 꼭 해설이라는 하나의 역할보다 전체적인 앙상블의 멤버로 극이라는 그릇에 잘 용해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본다.

'가우어'와 '노년의 페리클레스' 두 역을 맡았다.
ㄴ 유인촌 : '가우어'가 해설 역할인데, 같이 출연하는 배우들이 젊고 왕성한 연배이다 보니 늙어서 '가우어'가 한 번 '페리클레스'로 넘어가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에 구성하게 됐다. '가우어'는 여러 가지 극을 맺어주고, 풀어주며, 이끌어가고, 상황을 설명한다. 오랜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는데 연극에도 나오지만 다섯 나라가 배경으로 나와 있다. '페리클레스'가 인생 역정을 겪는데, 그 여정을 다 표현하기 힘들어서 원작보다 많은 압축과 생략을 했는데 그게 연극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재미가 있다. 해설에서 극 중의 인물로 들어가는 것이 상당히 어려웠다. 연극의 양식적 방법으로 관객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충분히 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런 부분은 오히려 관객이 상상력으로 잘 채워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 양정웅 연출이 극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원작을 어떻게 원숙하게 표현했는지 궁금하다.
ㄴ 양정웅 : 작품을 읽었을 때는 상상도 못 했다. 작업하면서 시간, 운명, 우주 단어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우리가 삶에서 겪는 운명과 의지, 계획, 만남과 헤어짐, 시간의 흐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주는 것이 원작 '페리클레스'가 갖고 있는데, 셰익스피어의 결과 색이 다른 작품이다.

'맥베스', '오델로'를 생각하고 오신 분이라면 스케일과 표현방식에서 스타일이 다른 것에 놀랍게 생각할 것이다. 셰익스피어 후기엔 낭만극 네 개를 썼는데, 학자들도 "이게 정말 셰익스피어가 썼나?"라고 할 정도로 호불호가 갈린다. 셰익스피어 다른 작품에 비해 신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온다. 운명과 고난을 말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물질적인 면을 작품에 어떻게 녹아낼까 고민을 했다. 다섯 나라가 있는데, 상상을 관객들에게 맡겼다. 셰익스피어가 원숙하고, 영리하게 연극을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것 같다. 그 텍스트가 영감을 잘 불러일으켰다.

배우가 무대로 들어가서 인터뷰를 하는 장면에서 관객과의 소통을 엿봤다.
ㄴ 양정웅 : 관객과의 소통은 '한여름밤의 꿈'부터 계속 시도됐다. 정통 연극에서 가장 중요한 초점은 관객과 무대와의 호흡인 것 같다. 셰익스피어도 그런 작가다. 이 작품이 셰익스피어 작품 중 해설자가 가장 많이 나오는 작품일 것이다. 해설자가 처음이나 끝에 잠깐 나오는 작품이 많은데, '가우어'는 계속 작품을 설명한다. 그것이 관객과 소통이 될 것 같다. 본능에 따라 관객들과 노는 것을 좋아하는데, 지시하지 않더라도 배우들이 자연스레 연기한다.

초반 중요 부위를 제외하고 모두 노출하는 연기가 나온다.
ㄴ 남윤호 : 노출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연출이 계속 몸을 만들어오라고 했는데, 이 정도로 일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 드라마터그 선생님과 연출님과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페리클레스'가 폭풍을 만나 모든 것을 다 잃고 혼자 살아남아 다시 태어나는 의미로 노출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부분엔 동의를 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 신이 시작하고, 공연이 올라가고 나면 이런 거 저런 거 가릴 여지가 없었다. 지금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 편하게 하고 있다. (웃음)

   
▲ 남윤호가 '젊은 페리클레스'를 연기하고 있다.

뮤지컬배우 최우리의 어떤 면에서 '마리나'로 캐스팅했나?
ㄴ 양정웅 :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음악성이 중요한 작품이 '십이야'와 이 작품인데, 이 작품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예술로 사람을 감동을 주는데, '마리나' 역할이 2부에선 작품을 이끌고 간다. 셰익스피어의 이상향이 예술로 사람을 치유하고 바꾸는 것이다. 이 작품의 핵심이기 때문에 정말 노래를 잘하는 배우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소개를 받고 동영상을 보고 잠깐 나오는 장면에서 매력 있게 보였다. 그래서 통화도 해보고, 이야기를 나눴는데 좋을 것 같아서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연극은 처음이라고 하는데, 많이 한 것 같았다. 뭐든지 다 하려고 하는 열린 마음이 좋았다.

뮤지컬만 하다가 처음으로 연극에 도전한다. 출연하게 된 계기는?
ㄴ 최우리 : 연극에 대한 갈망이 항상 있었다. 연극을 하면서 가장 크게 준비한 건 음악적 부분이 없는 상황에서 그 깊이를 연기로 해야 하는 것이었다. 객석 앞에서 경험치를 올리기보다, 연습시간에 최선을 다해서 결과를 내놓으려고 집중했다.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셰익스피어의 '페리클레스', 연출님뿐 아니라 극단 여행자에 대한 호평이 좋았다. 극단 여행자 작품을 한다고 하니 부럽다는 말을 들었다. 여기에 유인촌 선생님과 스태프분들이 정말 호기심 있게 다가가고 싶었다. 연극, 뮤지컬 장르를 따진다는 생각이 없이 '마리나'에 임했다. 노래를 살릴 수 있는 부분엔 최선을 다해 살리고, 드라마에 비중을 주려고 한 것이 뮤지컬과 다른 것 같다. 모래에서 뛰어다니는 점과 사창가에 팔려가 거칠게 다뤄지는 장면이 있는데, 그 점이 힘들지만 좋다.

유인촌 : 노래만 잘해서 캐스팅된 것은 아니다. 가진 것이 많다.

   
▲ '마리나'(최우리, 왼쪽)와 '노년의 페리클레스'(유인촌, 오른쪽)이 연기를 펼치고 있다.

일반 대중이 다른 작품에 비해 미리 알고 있는 지식이 적다 보니 거리감이 높을 수 있다.
ㄴ 양정웅 : '페리클레스'의 모든 작품을 다 하면 다섯 시간이 넘을 것 같았다. 그걸 두 시간 사십 분으로 압축과 생략을 거쳤다. 예술의전당에 오시는 관객층도 다양하니 셰익스피어의 '페리클레스'를 관객들에게 친숙하게 설명하기 위해 고대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기보단 익숙한 이미지를 넣어 벽을 낮췄다. 원작엔 무술 경기가 지문 한 줄로만 나온다. '마리나' 노래도 한 부분인데 두 세 부분으로 늘려 음악적 요소를 많이 넣어 셰익스피어의 음악성을 확대해 즐겁게 하도록 했다.

유인촌 : 대본을 미리 읽고 오신 분이 계신다면, 생각보다 대본에 없는 장면이 많이 있다고 느낄 수 있다. 동시대를 사는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장면이 재창조됐다고 생각한다. 그게 적절하게 서로 희극과 비극이 상호 보완되면서, 관객분들이 즐기면서 볼 수 있는 연극이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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