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일부터 내년 2월 25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서울박스 및 5전시실

정연두, 15년 만에 국립현대미술관서 대규모 개인전 / 사진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정연두, 15년 만에 국립현대미술관서 대규모 개인전 / 사진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문화뉴스 최병삼 기자] 국립현대미술관이 'MMCA 현대차 시리즈 2023: 정연두 – 백년 여행기'를 오는 6일부터 내년 2월 25일까지 개최한다. MMCA 현대차 시리즈는 현대자동차의 후원을 받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되는 연례전으로 매년 한국 중진 작가의 대규모 전시를 지원하고 있다. 10회차를 맞이하는 이번 MMCA 현대차 시리즈에서는 정연두 작가가 선정되어 그의 신작 4점을 포함한 총 5점의 작품이 출품된다. 

정연두(b.1969)는 1998년 이후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기억과 재현, 현실과 이미지, 거대 서사와 개별 서사의 역설적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퍼포먼스와 연출 중심의 사진과 영상, 설치 작업으로 국내외 미술계의 조명을 받아왔다. 

'MMCA 현대차 시리즈 2023: 정연두-백년 여행기'에서 작가가 주목한 서사는 20세기 초 멕시코로 건너간 한인 디아스포라(Diaspora)이다. 전시명인 ‘백년 여행기’는 1905년, 영국 상선 일포드호를 타고 인천 제물포항을 떠나 멕시코 유카탄 주의 수도 메리다에 도착했던 백여 년 전의 한인 이주기를 의미한다.

‘역사’로서의 백년 전 이주기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백년초’라는 식물의 ‘설화’적 여행기에서 출발했다. 백년초는 백 년에 한 번씩 꽃이 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멕시코에서는 노팔 선인장이라고도 불린다. 작가는 2022년 9개월간 제주도에서 생활하며 제주 북서쪽 월령리 일대의 백년초 자생 군락을 방문한다.

쿠로시오 난류를 타고 멕시코에서 태평양을 건너와 제주도에 뿌리를 내렸다고 알려진 백년초 이동 설화에서 작가는 한국과 멕시코를 잇는 식물 및 사람의 백년 여행기라는 소재를 떠올리게 되었다. 이때 식물의 ‘이식’은 뿌리가 뽑혀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한 한인들의 ‘이주’와 접속한다. 그리고 이는 제국, 식민, 노동, 역사를 둘러싼 기존의 이주 서사 이외의 제3의 이야기를 열어주는 통로가 된다.

전시는 서울관의 서울박스 및 5전시실에서 '백년 여행기', '상상곡', '세대 초상', '날의 벽' 등 4점의 신작과 '백년 여행기-프롤로그'(2022) 등 총 5점이 출품된다. 전시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서로 무관해 보이는 존재를 연결하는 가능성의 영역으로 이주와 이국성의 주제에 다가간다. 또한 문화적 다양성이 뒤섞여있는 혼종성의 맥락 속에서 이주민들의 삶의 경험과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예술을 통해 낯선 존재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 내고자 한다.

나아가 이번 전시는 20세기 초 한인 이주라는 다큐멘터리적 서사를 넘어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접합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탈구된 시공간의 경험, 이질성과 친숙함의 관계, 이주를 둘러싼 세대 간의 문화적·역사적 간극, 그리고 경계를 넘나들며 이동하고 번역되는 존재 등에 대해 생각해 보기를 권유한다.

작가는 20세기 초 이민자의 시간과 경험, 기억에 최대한 다가가고자 2022년부터 2년에 걸쳐 멕시코를 3회 방문하여 한인 이민 2~5세 후손들을 인터뷰하였고, 그들을 멕시코로 이끈 결정적 동인인 과거 유카탄의 에네켄 농장을 방문해 다양한 열대 식물들을 촬영하였다.

실제 역사적 장소를 직접 방문하는 작가의 수행적 연구가 멕시코 이주 서사 내부를 끄집어내는 관계적 통로라면, 작가적 연출을 중심으로 사진과 영상, 텍스트와 사운드, 공연과 설치를 넘나드는 정연두의 복합 매체 활용은 이주 역사라는 고정된 서사 아래 숨겨진 다양한 역설과 모순의 상황 및 혼종성의 맥락을 표층으로 떠오르게 하는 시각적 장치이다.

출품작들은 서사-텍스트-퍼포먼스, 공연-영상이 혼합되어 다원적이고 복합적인 층위로 완성되었으며 이를 통해 이주 서사와 이동 감각을 보다 우의적이고 중층적으로 불러온다. 

상상곡 / 사진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상상곡 / 사진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관람객은 우선 서울박스에서 사운드 설치 신작 '상상곡'(2023)을 만나게 된다. 초지향성 스피커가 내재된 천정의 열대 식물 오브제를 배경으로 2023년 현재 한국에 와서 살고 있는 여러 국적 외국인들의 다종 다성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이는 멕시코의 한인 이주민이 겪었을 낯섦의 감각을 역으로 유추하게 함과 동시에 동질성으로 제한되는 국가 외부의 다중 세계를 상상하도록 만든다.

백년 여행기 - 프롤로그 / 사진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백년 여행기 - 프롤로그 / 사진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5전시실 입구의 '백년 여행기- 프롤로그'(2022)는 설화와도 같은 멕시코에서 제주도로의 백년초 이주 서사를 마임이스트의 손 퍼포먼스를 기록한 영상 및 에네켄 농장을 형상화한 작은 무대 설치로 전환하여, 20세기 초 멕시코 한인 이주기와 중첩시킨다.

백년 여행기 / 사진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백년 여행기 / 사진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또한, 전시의 주요 작품인 4채널 대형 영상 설치작품 '백년 여행기'(2023)는 멕시코 이민과 관련한 텍스트를 기반으로 작가가 연출한 한국의 판소리, 일본 전통음악 기다유(분라쿠), 그리고 멕시코의 마리아치의 공연을 3채널 영상으로 보여준다.

더불어 작품은 공연 영상의 음악적 운율에 맞추어 농부, 노동, 군중, 식물 영상 이미지들을 편집한 안무적 특성의 대형 LED 영상과 그 영상 빛이 선인장 오브제를 비추며 공간에 층을 부여한 설치 작업을 포함한다.

텍스트 서사를 공연·소리·영상·이미지·운율·리듬·빛으로 전환한 작가 특유의 비선형적인 작업을 통해 관람객은 멕시코 이민 서사를 여전히 살아있는 문화적인 생성지대로서 재방문하게 된다. 

세대초상 / 사진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세대초상 / 사진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세대 초상'(2023)은 두 대의 LED 대형 패널을 마주 보는 형태로 설치된 매우 느린 영상 화면으로 사진과 영상의 중간적 상태를 구현한 작품이다. 멕시코로 이주한 한국 이민 후손들의 부모와 자식 세대 간의 관계와 간극을 상상하게 한다.

날의 벽 / 사진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날의 벽 / 사진 =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마지막으로 12미터 높이의 벽면 설치 '날의 벽'(2023)은 어린 시절 즐겨했던 놀이인 설탕 뽑기의 형태로 전 세계 다양한 농기구(마체테) 모양의 오브제를 만들고, 이를 디아스포라의 어원적 원류인 이스라엘 ‘통곡의 벽’에서 착안하여 거대한 벽의 형태로 쌓아 올렸다.

설탕이 주는 달콤함의 감각과 뽑기라는 유희적인 놀이, 그리고 시각적인 반짝임은 제국주의와 디아스포라를 촉발한 설탕의 정치학과 상충한다. 이러한 역설의 방식은 역사를 우회하고 낯설게 함으로써 오히려 그 본질에 다가가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잘 드러낸다. 

전시 기간 중에는 대담, 공연, 학술토론 등 다양한 전시 연계 행사가 예정되어 있다. 서경식 교수(도쿄경제대학 현대법학부)와 함께 디아스포라에 대해 대담을 나누며, 신작 '백년 여행기'를 구성하는 판소리와 기다유 연주자가 전시장에서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한 학예연구사와 진행하는 ‘작가와의 대화’에서 보다 심층적인 작품세계를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15년 만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이는 정연두의 대규모 개인전으로 그간 작품세계의 변모를 보여주며, 동시대 보편적 경험이 된 이주나 이민, 이동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전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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