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존재와 삶의 부조리 그린 작품
희극의 즐거움, 비극의 여운 갖춰
87세 신구, 83세 박근형, 81세 박정자...배우들 존재감 돋보여
내년 2월 18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사진=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 장면 / 파크컴퍼니 제공
사진=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 장면 / 파크컴퍼니 제공

[문화뉴스 장민수 기자] "생애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토해낸다면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과욕을 부렸다."(신구) "난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이걸 망친다 해도 다음에 또 도전하면 되니 큰 걱정은 안 한다."(박근형) "럭키를 통해 나의 '고도'를 만났다."(박정자)

지난달 열린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기자간담회에서 80대의 세 배우 신구, 박근형, 박정자가 밝힌 각오다. 그러나 결코 과욕은 아니었고, 도전은 성공적이었다. 대배우들이 오래도록 기다려 온 '고도'는 결국 '고도를 기다리며'였나. 이번 무대에서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대표작이다. 에스트라공(고고)와 블라디미르(디디) 두 방랑자가 실체가 없는 인물 고도(Godot)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내용의 희비극이다. 

사진=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 장면 / 파크컴퍼니 제공
사진=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 장면 / 파크컴퍼니 제공

1953년 파리 첫 공연된 후 지금까지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해석으로 공연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1969년 극단 산울림의 임영웅 연출을 통해 초연됐으며, 이후 50년 동안 약 1,500회 공연, 22만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파크컴퍼니 제작의 새로운 프로덕션으로 선보이는 이번 공연은 오경택 연출이 지휘한다. 오 연출은 앞서 이번 공연만의 특징을 묻자 "배우들이 다르다.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들을 믿고 가려고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말대로 에스트라공 역 신구, 블라디미르 역 박근형, 럭키 역 박정자, 포조 역 김학철, 소년 역 김리안까지, 배우들의 존재감이 무엇보다도 돋보인다.

사진=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 장면 / 파크컴퍼니 제공
사진=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 장면 / 파크컴퍼니 제공

무대 위에는 나무 한 그루, 바위 하나뿐. 은근한 조명 변화가 분위기 전환을 유도하지만, 음악은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오로지 배우들의 말과 행동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들의 이야기는 삶과 시간, 그 사이 기다림의 의미를 전한다. 무엇을 기다리는지는 모르지만, 만남에 대한 희망이 있기에 삶은 지속된다. 그러나 그 막연한 기다림에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해 보면 인생은 참 덧없고 고통스럽고 혼란스럽다. 그 상반되는 지점에서 인간존재와 세상의 부조리성을 확인하게 된다.

비전형적인 구조와 흐름. 우스꽝스러운 행동, 맥락을 벗어나는 대화. 난해할 수 있는 극이지만 이번 공연은 쉽고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특히 신구와 박근형 두 배우의 기막힌 케미에서 나오는 희극의 묘미가 예술이다. 

사진=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 장면 / 파크컴퍼니 제공
사진=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 장면 / 파크컴퍼니 제공

비관적이고 감정적인 고고, 낙관적이고 이성적인 디디. 정반대 성격의 두 인물이 주고받는 티키타카는 소소한 웃음을 자아낸다. 포조, 럭키의 캐릭터는 어떤가. 반세기도 더 지난 오늘날 보더라도 참 독창적이다. 무엇보다도 캐릭터를 살려낸 배우들의 힘이 가장 컸을 터. 오 연출이 배우들에 대한 믿음을 드러낼 만했다.

또한 신구, 박근형 두 배우가 그려낸 고고와 디디의 관계는 인간존재의 중요성을 더욱 끌어낸 듯 보인다. 

고고와 디디, 둘에게 서로가 없었다면 어땠을지 생각해 보면 그 끝은 비극의 극치이지 않았을까. 가족이든 친구든 혹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누군가든. 끝없는 기다림의 시간을 채워주는 인간존재의 중요성. 당신이 기다리는 고도가 무엇이든, 그 기다림의 시간을 유의미하게 하는 건 결국 누군가의 존재가 아닐까.

한편 '고도를 기다리며'는 오는 2024년 2월 18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문화뉴스 / 장민수 기자 jms@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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