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세 미술관에서 직접 마주한 로트렉의 진본 작품
예술가 흔적 따라 보낸 하루, 예술은 "백문이 불여일견"

오르세 미술관 전경 / 사진=오혜재
오르세 미술관 전경 / 사진=오혜재

[독학예술가 오혜재] 영어 속담 중에 ‘The proof of the pudding is in the eating.’이라는 말이 있다.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푸딩 맛을 입증하려면 먹어보는 수밖에 없다’인데, 우리식 표현으로는 ‘백문이 불여일견’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예술 또한 ‘씹고, 뜯고, 맛보아야’ 그 진가를 제대로 알 수 있다.

인상주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으로 향했다. 옛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재단장한 이곳은 루브르 미술관(Musée du Louvre),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와 함께 파리가 자랑하는 3대 미술관 중 하나다. 

프랑스의 화가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은 ‘굵고 짧은’ 삶을 살았다. 명망 있는 귀족 집안의 도련님이었지만, 부모의 근친혼은 그에게 유전적 결함을 주었다. 소년 시절 의자에서 떨어져 다친 그의 다리는 성장이 멈추었고, 상반신만 어른이 된 로트렉은 평생 지팡이를 짚고 살았다. 로트렉은 파리 몽마르트르에 있는 카바레 ‘물랭 루즈’(Moulin Rouge)의 한구석에서 쉼없이 그림을 그렸다. 그의 작품 모델이었던, 무희와 매춘부들의 화려하지만 고단한 삶에서 그는 큰 위안을 얻었다. 하지만 술과 여자로 괴로운 마음을 달랬던 그는 결국 매독과 알코올 중독으로 37세에 눈을 감았다.

생애 처음으로, 나는 오르세 미술관에서 로트렉의 진본 작품을 ‘영접’했다. 진부할지라도 그 감흥을 표현하자면, 소설 『플랜더스의 개』의 주인공 넬로(Nello)가 생의 끝자락에서 안트베르펜 대성당(Cathedral of Our Lady)에 걸려 있는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그림을 보았을 때의 심정이랄까. 150cm가 채 안되는 병약한 로트렉이 그렸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작품들은 크고 활력이 넘쳤다. 춤을 추면서도 얼굴에는 그늘과 피로감이 역력한 댄서 잔 아브릴(Jane Avril)을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다양한 색채와 섬세한 붓터치가 필요했는지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들 작품은 녹록치 않은 삶 속에서도 로트렉이 위트와 유머,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오베르-쉬르-우아즈의 공동묘지에 있는 빈센트와 테오 반 고흐 형제의 묘소 / 사진=오혜재
오베르-쉬르-우아즈의 공동묘지에 있는 빈센트와 테오 반 고흐 형제의 묘소 / 사진=오혜재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머지 않았던 11월 중순의 어느 날, 나는 파리를 벗어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파리에서 멀지 않지만, 기차를 두 번 갈아타야 도착하는 작은 시골마을 오베르-쉬르-우아즈(Auvers-sur-Oise)로 가기 위해서였다. 내가 사랑하는 또다른 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생의 마지막을 보낸 바로 그곳이었다.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처럼, 그날만큼은 예술가 고흐씨의 흔적을 따라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먼저 들른 곳은 빈센트와 그의 동생 테오 반 고흐(Theo van Gogh)가 잠들어 있는 마을의 공동묘지였다. 빈센트는 빈곤과 정신질환에 시달리다 로트렉과 같은 37세의 나이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빈센트의 가장 가깝고 든든한 친구이자, 형의 예술적 재능을 끝까지 믿고 지원했던 동생 테오는 형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6개월 만에 형을 따라갔다.

스산한 늦가을의 바람을 맞으며, 나는 프랑스의 시골 마을에 나란히 잠들어 있는 네덜란드인 형제의 묘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빈센트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했다.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돈은 꼭 갚겠다. 안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 눈물로 흐려진 시야로, 나는 죽어서도 함께하는 형제들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고흐의 작품에 대한 설명 안내판과 실제 풍경 / 사진=오혜재
고흐의 작품에 대한 설명 안내판과 실제 풍경 / 사진=오혜재

오베르-쉬르-우아즈는 그 자체가 ‘살아있는’ 미술관이다. 고흐가 그린 작품의 실제 배경지 앞에는 해당 작품의 이미지와 설명을 담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마을 곳곳을 돌며 나는 그의 작품 '오베르의 시청', '오베르의 계단', '오베르의 교회',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실제 풍경들과 함께 눈에 담았다. 정신병원을 나온 고흐가 삶을 마감할 때까지 이곳에서 머문 기간은 고작 두달 남짓이었다. 하지만 하루에 한 점 꼴로 그림을 완성할 만큼, 그는 이곳에서 자신에게 남은 모든 에너지와 열정을 쏟아부었다.

파리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돈 맥클레인(Don McLean)의 노래 '빈센트'의 후렴구를 연신 흥얼거렸다. ‘이제서야 저는 이해하죠 / 당신이 내게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아팠을지 / 그들을 놓아주기 위해 얼마나 애썼을지 / 그들은 듣지 않을 거예요 / 알려 하지도 않겠죠 / 아마 지금쯤 듣겠네요.’

예술가의 탄생지나 작업실을 돌아보든, 진품이 전시되는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찾든 직접 눈으로 예술작품을 보고, 마음으로 예술가의 삶과 철학을 느껴야 한다. 예술은 먹어야 제맛이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프랑스에서 만난 예술의 추억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고, 그 감동 또한 여전한 것도 그 때문이다.

사진= "예술은 먹어야 제맛이다" 오혜재 독학예술가
사진= "예술은 먹어야 제맛이다" 오혜재 독학예술가

필자 소개

한국의 독학 예술가(self-taught artist)인 오혜재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 학사(언론정보학 부전공)와 다문화‧상호문화 협동과정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2014년부터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려왔다.

2019년 홍콩 아시아 컨템퍼러리 아트쇼를 통해 해외에도 작품을 선보이면서, 국내외 다양한 예술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홍콩, 싱가포르, 이탈리아, 독일 등지의 공모전에서 입상한 바 있으며, 2024년에는 영국의 문화예술 분야 글로벌 구인/구직 사이트인 아트잡스(artjobs.com) 주최 ‘2024년 2월 이달의 아티스트’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직장인이자 저술가이기도 한 오혜재는 2007년부터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근무하고 있다. 예술서로는 『저는 독학 예술가입니다』(2021), 『독학 예술가의 관점 있는 서가: 아웃사이더 아트를 읽다』(2022), 『아르 브뤼와 아웃사이더 아트: 그렇게 외부자들은 예술가가 되었다』(2024)가 있으며, 예술 비평문과 칼럼도 꾸준히 기고하고 있다. 다년간의 국제 업무 경험과 석사 전공을 토대로, 예술을 통해 다양한 문화 간 이해와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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