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오혜재] 불혹(不惑)의 나이가 된 지금도 이따금 청소년용 자료를 본다. 무수한 전문 용어와 현학적 표현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 말이다. 성인조차 수 차례 읽고 곱씹어도 이해될까 말까하는 자료들을 심심치 않게 접한다. 학계나 전문 분야의 자료라 해도, 대중에게 선보일 목적의 것이라면 기초 교육을 받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20세기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저서 『언어와 상징권력』(Langage et pouvoir symbolique)에서 언어를 통해 사회 내 권력 구조와 불평등을 조명했다. 그가 주창한 개념 ‘아비투스’(habitus)는 개인의 성향 체계이자 행위 도식으로, 어린 시절의 가족 환경과 계급 조건 속에서 (무)의식적인 학습과 경험을 통해 오랫동안 쌓여 형성된 습성이다. 개개인이 지닌 언어적 아비투스는 각자가 속한 사회적 계급 및 집단 내 언어 자본, 문화 자본과 결합하면서 그 격차가 점차 강화된다. 다시 말해 정중할수록, 표준어에 가까울수록, 고급 어휘를 활용할수록, 문법적으로 완결된 문장을 쓸수록 나의 말은 언어 시장에서 값어치가 있게 되고, 이는 나의 사회적 지위와 권력에 영향을 미친다.

언어적 불평등 사례는 ‘대놓고’ 계급사회였던 과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금도 나의 ‘최애’ 드라마 중 하나인 2010년도 사극 <추노>에서 양반들은 자신의 학식과 권세를 뽐내고자 ‘천한 한글’ 대신 한문으로 대화한다. 양반집 노비들을 비롯한 기층민들에게 이는 그저 뜻모를 외국어로만 들릴 뿐이다. 결국 천민에 대한 억압과 폭정에 폭발한 노비는 주인 양반에게 일갈한다. “알아듣게 얘기 못하나?”

왕실과 귀족이 건재하는 영국에서는 지금도 ‘악센트 차별’(accentism)이 공공연하게 발생한다. 영국식 영어에는 왕실을 비롯한 소수의 상류층 사람들이 사용한다는 ‘포쉬 악센트’(posh accent), 런던 노동자 계급의 방언에서 비롯된 코크니 악센트(Cockney accent), 북부 여러 지역의 악센트 등 소속 지역·계급·집단이 확연히 드러나는 다양한 악센트들이 존재한다. 특정 악센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교내와 사내에서의 따돌림, 취업 시 불이익 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유발한다.

사회적 차별과 폐쇄성이 잔존하고 있다지만, 분명 현시대는 보다 많은 사람들을 아우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전 세계는 하나로 연결되어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제품, 서비스, 정보, 환경 등 실생활 내 모든 영역에서 ‘모두를 위한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젊은 세대일수록 활자보다 영상이, 한자어보다 한글이 익숙하다. 이는 영화 한줄평에 ‘명징’(明澄), ‘직조’(織造)라는 단어를 섰다가 논란의 중심에 섰던 한 평론가의 일화나, ‘금일’(今日)을 ‘금요일’(金曜日)로 오해하는 MZ 세대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다.   

이전에는 귀족 등 몇몇 소수 계층에서 향유하던 문화예술 분야도 그 문턱이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예술의 대중화, 대중의 예술화’라는 표어가 낯설지 않은 시대다. 그러나 여전히, 대중들에게 예술은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인 듯하다. 일반 대중들보다 상대적으로 예술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높을 나에게도 예술 비평글, 전시회 소개글과 작가노트는 암호처럼 해독이 필요한 존재로 느껴지곤 한다. 가뜩이나 난해하다는 게 현대미술인데, 별도 설명 없는 전문 용어와 추상적인 표현이 가득한 글로 예술을 접한다면 대중에게 이는 오를 수 없는 바벨탑이자, 넘을 수 없는 만리장성으로 여겨지지 않을까.

광고업계와 언론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어지는 수칙이 있다. 카피는 초등학교 4학년 수준으로, 기사는 중학교 2학년 수준으로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동주 시인은 <쉽게 쓰여진 시>에서 시가 쉽게 쓰여지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지만, 그때는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예술을 위한 글은 더 친절하고, 문턱을 더 낮춰야 한다. 프랑스의 소설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명확하게 쓰면 독자가 모인다. 모호하게 쓰면 비평가들이 달라붙는다”고 했다. 향후 예술계에서는 어떠한 글이 쓰여져야 할까.

사진 = 독학예술가 오혜재
사진 = 독학예술가 오혜재

필자 소개

한국의 독학 예술가(self-taught artist)인 오혜재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 학사(언론정보학 부전공)와 다문화‧상호문화 협동과정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2014년부터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려왔다.

2019년 홍콩 아시아 컨템퍼러리 아트쇼를 통해 해외에도 작품을 선보이면서, 국내외 다양한 예술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홍콩, 싱가포르, 이탈리아, 독일 등지의 공모전에서 입상한 바 있으며, 2024년에는 영국의 문화예술 분야 글로벌 구인/구직 사이트인 아트잡스(artjobs.com) 주최 ‘2024년 2월 이달의 아티스트’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직장인이자 저술가이기도 한 오혜재는 2007년부터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근무하고 있다. 예술서로는 『저는 독학 예술가입니다』(2021), 『독학 예술가의 관점 있는 서가: 아웃사이더 아트를 읽다』(2022), 『아르 브뤼와 아웃사이더 아트: 그렇게 외부자들은 예술가가 되었다』(2024)가 있으며, 예술 비평문과 칼럼도 꾸준히 기고하고 있다. 다년간의 국제 업무 경험과 석사 전공을 토대로, 예술을 통해 다양한 문화 간 이해와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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