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 한국에 '손님'으로 찾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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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해가 없고, 밤에는 달이 없는 날, 아이들은 죽을까 살까… 온다, 손님이!" (미숙, 청주댁)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 속 '피리 부는 사나이'는 광대처럼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했지만, 절대로 웃지 않는 속을 알 수 없는 남자였다. 바람처럼 조용하고도 예고 없이 마을에 등장한 그는 신비스러운 면도 갖추고 있었고, 수많은 쥐를 피리만으로 강물에 빠트리는 부분에서는 영웅적인 모습도 존재했다.

그러나 그는 인류의 행복을 보람으로 느끼는 영웅은 아니었다. 시장이 쥐를 없애면 지급하기로 한 돈을 주지 않자, 그는 돈 대신 마을의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마을 사람들은 약속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손님'의 감독을 맡은 김광태는 이번 영화가 약속에 관한 영화라고 말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약속에 대한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이런 점에서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가 매력적인 소재였음은 분명하다. 다만 내용을 전달하는 데 있어 관객들이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 김 감독은 많은 고민을 거듭해 영화로 만들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는지 싶다. 

수많은 고민을 통해 탄생했을 한국판 '피리 부는 사나이'는 동화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특히 주인공 피리 부는 사나이는 '우룡'이라는 캐릭터로 다시 태어났다. '우룡'은 세상의 모진 풍파를 온몸으로 겪은, 과거가 많은 남자다. 한쪽 다리는 절고, 전쟁통에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으며, 재주라고는 피리 부는 것밖에 없어 먹고 사는데 바쁘다. 그나마 살아남은 아들이 하나 있지만, 그마저도 폐병을 앓고 있다. 그의 희망이자 삶의 목적인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어렵게 서울로 향하고 있지만, 결코 그는 힘든 내색을 보이지 않는 든든한 아빠다.

   
 

그런 부자의 눈앞에 한 마을의 입구가 나타난다. 불길함을 느꼈는지 아들 '영남'은 돌아가자고 하지만, 무언가에 홀린 듯이 '우룡'은 마을로 발걸음을 내디딘다. 들어선 마을은 부족함 없이 풍족한 생활을 하며 평화로워 보였지만, 마을 곳곳에 숨어있는 쥐들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하룻밤만 묵고 가려는 '우룡'에게 쥐떼를 쫓아내면 '영남'의 폐병을 고칠 목돈을 준다는 제안에 솔깃해 약속을 받고 쥐들을 쫓아내지만, 돌아온 것은 약속이 아니라 마을의 비밀을 지키기 위한 배신이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강우석 감독의 2010년 작 '이끼'가 떠올랐다. 마을 사람들이 숨기는 비밀이 낯선 이방인으로 인해 드러난다는 구조가 비슷해서였다. 특히 마을의 비밀을 숨기는 우두머리인 '이끼'의 이장 '천용덕'과 '손님'의 촌장은 풍기는 분위기가 거의 일치한다.

다만 '이끼'는 주인공인 '해국'이 '박민욱 검사'와 함께 이장과 그의 측근들이 숨기는 비밀을 직접 파헤치지만, '손님'에서는 촌장과 마을 사람들의 비밀이 단지 관객들에게 보일 뿐, 이방인인 '우룡'이 비밀을 풀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는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마을장면에서도 두 영화는 다른 점을 보인다. '이끼'의 마을은 비밀이 숨겨진, 어둡고 스산한 분위기인데 반해, '손님'의 마을은 골칫거리인 쥐를 빼고는 밝고 활기찬 분위기다. '우룡'부자가 들어간 날에는 한 아이의 돌잔치가 있었고, 마을 공터에는 항상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김 감독은 영화 초반에 소소한 웃음 코드와 '우룡'과 '미숙'의 로맨스를 넣는 등 가볍고 밝은 분위기를 연출하려는 시도를 보였다.

감독으로서는 첫 스크린 데뷔무대를 마친 김 감독은 이번 영화를 '판타지 호러'라는 새로운 장르로 소개했다. 단순히 공포물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그에겐 기존의 장르가 좁게 느껴졌을 것이다. 관객들이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도록'하기 위해서 김 감독은 다양한 내용적, 연출적 요소를 극 중에 집어넣었다. 앞서 언급했던 웃음 코드나 로맨스, 부자간의 유대감과 원작동화의 서구적인 느낌 등이 그것이다.

특히 진부한 표현을 진부하지 않게 표현하려고 노력한 흔적들과, 관객들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열어놓은 몇 가지의 포인트들은 영화를 보는 동안 생각을 하게 해 영화에 몰입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관객에 따라서는 너무 많은 재료를 펼쳐놓았기 때문에 다소 엉성한 구조로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 공포영화를 잘 보지 못하는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항상 호기심 때문에 벌어지는 사건의 발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 호기심 때문에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야 후회하는 그들의 모습은 여느 영화에서나 마찬가지로 등장한다. '우룡'도 결국 아들에게 "영남아, 네 말을 들을 걸 그랬다. 그랬으면 이런 일도 안 생겼을 틴디…"라는 말을 던지며 애초에 이 영화가 공포물임을 상기시킨다.

이번 영화에서도, '우룡'에게 그렇게 후회할 거면 왜 마을에서 빨리 나오지 않았는지 묻고싶다. 애초에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가던 서울행을 멈추고 굳이 마을의 쥐를 잡아야만 했을까. 물론 영화가 이어지기 위해서는 '우룡'이 그냥 지나치면 안 되겠지마는.

동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시장이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대가는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영화에서 모든 것을 잃은 '우룡'은, 아이들이라는 대가로 만족할 수 있을까. 결말이 궁금하다면, 7월 9일부터 영화관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문화뉴스 김관수 기자 gs@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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