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의 김윤철 예술감독 이윤택 작 연출의 '문제적 인간 연산'

   
 

[문화가 있는 날_문화뉴스, Culture News·文化新聞] 연산군은 1476년(성종 7) 11월 7일 성종의 맏아들(적장자)로 출생했다. 당시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는 성종(成宗)의 첫 번째 후궁이었으며 이후 연산군을 잉태하면서 비로 책봉되었다. 이름은 이융(李)이고 7세 때 세자로 책봉되었다. 서연(書筵)을 통해 세자로서 수업을 받았으며 그의 학문적인 소양은 선대왕들에 비해 부족하지 않았다. 1494년 성종이 사망하자 조선의 제10대 국왕으로 즉위했다.

즉위 이후 신승선(愼承善), 노사신(盧思愼) 등 대신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였으나, 선왕의 명복을 비는 불교식 행사인 수륙재(水陸齋) 시행과 외척의 등용을 두고 삼사(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의 유생들과 갈등을 빚었고 즉위 1년 후 폐모 윤 씨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후 방치된 윤 씨 능묘 천장(遷葬)두고 삼사와 대립하였다. 이런 정치적 상황은 국왕(연산군)과 삼사는 더욱 갈등과 대립 속으로 치달았다. 재위 4년인 1498년 7월 김일손(金馹孫)이 작성한 사초(史草)의 내용이 세조를 비판하고 붕당을 만들어 국사를 어지럽게 했다는 조의제문 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문제삼아 훈구파(勳舊派) 이극돈(李克墩) ·유자광(柳子光) 등은 자신들의 세력을 강화하고자 했으며, 이미 죽은 김종직(金宗直)을 부관참시(剖棺斬屍)하고 많은 신진 사류(士類)와 삼사에 속한 대간들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조선시대 최초의 사화인 무오사화(戊午士禍)를 일으키게 하였다. 이 사건으로 국왕(연산군)과 갈등을 빚으며 왕권을 견제했던 삼사의 역할은 축소되었다.

이후 국왕(연산군)은 강력해진 왕권을 바탕으로 자신의 관심인 사냥과 사치를 즐겼고 국고의 사정은 나빠졌다. 1504년에는 손녀를 궁중으로 들이라는 연산군의 명을 거역하였다는 죄목으로 경기도관찰사를 지내던 홍귀달이 숙청되었다. 이 사건은 확대되어 생모인 폐비 윤씨의 문제로 번졌다. 성종의 후궁인 정씨(鄭氏) ·엄씨(嚴氏)의 모함으로 윤씨가 내쫓겨 사사(賜死)되었다고 해서 자기 손으로 두 후궁을 죽여 산야에 버리는 포악한 성정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또한 조모 인수대비(仁粹大妃)를 구타하여 죽게 하고, 윤씨의 폐비에 찬성하였다 하여 윤필상(尹弼商) ·김굉필(金宏弼) 등 수십 명을 살해하고, 이미 죽은 한명회(韓明澮) 등을 부관참시(剖棺斬屍)하는 갑자사화(甲子士禍)를 일으켰다. 또 국왕의 난행을 비방한 투서가 언문으로 쓰여지자, 한글 교습을 중단시키고 언문구결(諺文口訣)을 모조리 거두어 불태웠다.

한편, 각도에 채홍사(採紅使) ·채청사(採靑使) 등을 파견해서 미녀와 양마(良馬)를 구해오게 하고, 성균관의 학생들을 몰아내고 그곳을 놀이터로 삼는 등 황음(荒淫)에 빠졌다. 경연(經筵)을 없애 학문을 마다하였고, 사간원(司諫院)을 폐지해서 언로(言路)를 막는 등 그 비정(秕政)은 극에 달하였다. 급기야 1506(중종 1) 성희안(成希顔) ·박원종(朴元宗) 등의 중종반정에 의해 폐왕이 되어 강화도 교동(喬桐:江華)으로 쫓겨나고, 연산군으로 강봉(降封)되어 폐위된지 두달만에 역질로 죽었다고 기록되었다.

연산군의 재위 기간은 12년에 불과했다. 게다가 반정 군에 의해 폐위된 그의 기록은 실록이 아닌 '연산군일기'로 남아 있다. 그러나 영상시대에 그는 가장 널리, 가장 자주 스크린의 제왕으로 등극하는 스타가 되었다. TV시리즈에서도 연산군은 주기적으로 리메이크 되는 소재이며 시청률 또한 따 놓은 당상으로 통한다.

1961년 신상옥 감독의 <연산군>은 연산군에 관한 최초의 영화로서 흥행에도 성공했다. 이어 62년 신상옥 감독은 다시 한 번 신영균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폭군 연산>을 만들었다. 하지만 연산군에 대한 평가는 박종화의 소설 『금삼의 피』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연산군은 다만 폭군 네로 황제에 비교될 뿐이었다.

1987년 <연산군>은 임권택이 감독하고 유인촌·김진아가 주연을 맡은 <연산일기>를 통해 다시 영화화 되었다. 같은 해에 강수연·이대근 주연의 <연산군>과 동시에 개봉해, 흥행 면에서는 <연산군>의 승리로 보였다. 그러나 장녹수와의 성애에 빠진 연산군에 초점을 맞춘 영화<연산군>은 사실상 에로물에 불과했고, 임권택의 <연산일기>는 연산군에 대한 재해석으로 평가를 받았다.

2005년의 <연산군>은 새로운 모습으로 천만 관객을 찾아왔다. 김태웅의 희곡 <이(爾)>를 이준기가 감독해 <왕의 남자>라는 영화로 만들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역대 흥행 기록을 갱신한 <왕의 남자>는 왕이되 왕이 아니었던 한 남자와 '광대'를 비중 있게 등장시키고, 이전 영화와는 달리, 젊고 어린 장녹수를 등장시켜 대성공을 거두었다.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은 1995년 극단 유에서 이윤택 연출로 유인촌과 이혜영을 주인공으로 하여 초연되었다. 2006년에도 재연된 것으로 기억된다.

무대는 대나무 숲이다. 거기에 대궐의 굵은 기둥이 비스듬히 기울어진 채 무대 좌우에 서있고, 대궐로 들어오는 길은 배경 가까이 높은 계단을 통해 내려오게 되어있고, 통로에도 굵은 기둥을 밟고 들어오도록 되어있다. 물론 무대 좌우에도 등퇴장 로가 있다. 무대바닥은 객석을 향해 쏟아질듯 기울어진 무대이고, 상수 쪽에 신시사이저와 타악, 그리고 현악 연주석이 있다. 노래는 우리 고유의 소리로 작창을 해 부른다. 무대 중앙에 사각의 공간을 만들어 그 속으로 떨어지거나, 물속에 빠지는 것으로 설정이 된다.

연극은 도입에 상복을 입은 인물들이 배경 쪽 높은 계단에서 한 사람 한사람 등장을 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연산이 등장할 때는 긴 광목을 늘어뜨리며 무대중앙의 사각의 파인 공간에서 출연자들이 끌어내고, 연산군의 부친 성종, 대비 등도 모습을 드러낸다. 장녹수가 등장을 할 때는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같은 창과 함께 부분조명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

연극 초반부 연산군의 대사는 마치 프란츠 카프카의 말처럼 꽁꽁 얼어붙은 구태와 폐습을 도끼로 깨뜨리려는 신선한 인물처럼 묘사가 된다.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제도나 언짢은 풍습을 바꾸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게다가 억울하게 죽은 것으로 묘사되는 모친 폐비 윤 씨의 죽음은 젊은 연산의 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하다. 윤 씨의 죽음과 관련된 원혼에 대한 진혼굿을 펼치려는 연산을, 대신들이 당연히 제지하려 들고, 이에 분노한 연산이 대신들을 처벌하는 장면이 복수처럼 그려진다.

분노를 해소시키기 위해 연산이 장녹수 이외의 다른 아름다운 여인에게 몸과 마음을 밀착시키는 모습을 보고, 질투의 화신이 된 장녹수는 연적의 손목을 잘라 연산의 수라상에 삶아 올려 보낸다. 결국 연산의 분노가 화산처럼 폭발하고, 무대는 피비린내 나는 살육장으로 변한다. 다시 보수대신들의 비난이 되풀이 되고, 비난을 하는 대신들 하나하나를 죽음으로 다스리니, 연산을 옹호하고 떠받들던 환관들 중 1인이 죽음을 마다않고 절대 불가함을 충언하지만, 그 역시 자신의 바른 말 때문에 같은 죽음의 길로 향하게 된다. 시체가 산을 이루듯 상복을 입은 시신이 무대를 온통 덮을 즈음 중종반정이 일어나고, 결국 연산군도 처형을 당하듯, 처음 등장할 때 무대중앙의 사각의 공간에서 모습을 드러냈듯, 대단원에서 다시 그 공간 속 깊은 물에 강제로 수장되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백석광, 이자람, 오영수, 이문수, 김학철, 김남진, 김미숙, 김정은, 이승헌, 오동식, 김정환, 이종무, 이기돈, 김수연, 이원희, 황선화, 배보람, 이승헌, 김소진, 최현종, 주민준, 정태윤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 그리고 성격창출은 관객을 시종일관 극으로 끌어들이고, 새로운 관극의 경지로 이끌어 간다.

권선욱, 신승태, 한림의 능숙한 연주도 극적 분위기 상승을 주도한다.

제작총괄 박현숙, 무대디자인 이태섭, 작창·음악감독 이자람, 조명디자인 조인곤, 의상디자인 송은주, 안무 김남진, 분장디자인 김종한, 소품디자인 구은혜, 연습감독 김미숙, 편곡 권선욱, 음향디자인·오퍼레이터 최환석, 조연출 오동식 그 외의 스태프 모두의 열정과 기량이 하나가 되어, (재)국립극단의 김윤철 예술감독, 이윤택 작·연출의 <문제적 인간 연산>을 예술적 창의력이 평가되는 한 편의 탁월한 표현주의 연극으로 탄생시켰다. 

 
[글] 문화뉴스 박정기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pjg5134@mhns.co.kr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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