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보건축 사무실로 사용하는 '전봇대집' 등 6개 작품 제출
공간을 드나들면서 좋은 기억을 갖게 하고픈 '문지방 건축' 추구

올해 14회를 맞이한 '2021 젊은 건축가상'이 지난 6월 말, 1차 심사를 마치고, 총 8명의 후보자를 발표하였다.

'젊은 건축가상'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주최로 창의적이고 역량 있는 젊은 건축가들을 발굴하고 홍보함으로써, 그들이 잠재적 능력을 발휘하고 생각을 쳘처갈 기회 제공과 제도적, 실질적 도움을 주고자 하는 목적으로 지난 2008년부터 매해 개최되고 있다.

'2021 젊은 건축가상' 1차 심사를 통과한 젊은 건축가들을 만나 그들의 건축에 대한 열정과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들어보는 인터뷰 기획을 마련하였다. <편집자 주>


 

사람들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문지방에 특히 더 관심을 갖고 설계된 서울도시건축센터/사진=구보건축 홈페이지
사람들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문지방에 특히 더 관심을 갖고 설계된 서울도시건축센터/사진=구보건축 홈페이지

[문화뉴스 임나래 기자] 사람들은 하루를 공간에서 시작하여 공간으로 끝낸다. 그 형태가 주거시설·오피스·상업시설·공공시설 등 다양할 뿐, 하루 대부분 시간을 어떤 공간 안에서 보낸다.

어떻게 보면 현대인들을 건축과 가장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건축’이라고 하면 왜인지 모르게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아마 ‘건축’이라고 하면 우리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건물들이 아니라 어떤 상징성을 가진 랜드마크의 성격을 지닌 건물들을 떠올려서이지 않을까.

하지만 사람들이 감수할 수 있는 약간의 불편함조차 용납하지 못하고 우리와 같은 높이의 시선에서 바라보며 실생활에 밀접한 건축을 하고자 하는 설계사무소가 있다. 바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안의 구보처럼 평범한 소시민의 시선으로 도시를 바라보는 구보건축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도 사람들이 자주 방문하고, 또 좋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을 건축하는 구보건축의 조윤희 대표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구보건축 조윤희 대표 인터뷰

구보건축의 조윤희 대표
구보건축의 조윤희 대표

 

Q. 2021 젊은건축가상 본선에 진출하신 소감과 작품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희가 올해 젊은건축가상 공모를 내려고 계획하지 않았는데 공모 마지막에 즉흥적으로 제출했었어요. 특별히 기대도 안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포트폴리오에는 이화동 근린생활시설, 신명중학교 체육관 “교실 옆 체육관”, 궁정동 사회주택 청운광산, 서울 도시건축센터 라운지, 서계동 빌라집, 그리고 전봇대집 이렇게 6개 작품을 제출했어요.

 

이화동 근린생활시설

층별로 임대하는 보통의 근린생활시설(이하 근생)과는 다르게 세로로 분할을 해서 세 집이 모두 1층과 2층으로 이루어짐. 근생은 일반적으로 1층이 제일 중요한 공간인데, 주차공간을 만들기 위해 1층에는 주차장을 넣고, 사람들이 쓰는 공간이 모두 2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평소에 안타깝게 생각함. 이화동 근린생활시설은 세 집을 모두 동등하게 1층에 면하고, 각각 개별 출입구를 갖도록 하여, 상가로서 훨씬 활성화되기 좋도록 설계함.

세 집이 모두 동등한 평면을 갖고 있는 이화동 근린생활시설/사진=구보건축 홈페이지
세 집이 모두 동등한 평면을 갖고 있는 이화동 근린생활시설/사진=구보건축 홈페이지

 

궁정동 사회주택 청운광산

사람들이 거주하는 공간은 나무로, 물을 쓰는 공간들은 콘크리트로 하는 하이브리드로 설계함. 미국 유학생활을 하면서 실무에서 목구조를 접할 기회가 있었고, 목조 주택이 일반적인 미국에서 살다보니 콘크리트 집과는 다르게 ‘집이 살아서 숨 쉰다’라는 게 뭔지 느껴졌다고 함.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목구조가 일반적이지 않지만, ‘집’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사람이 주거하는 공간은 목조로 설계함.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은 목조로 설계된 궁정동 사회주택/사진=구보건축 홈페이지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은 목조로 설계된 궁정동 사회주택/사진=구보건축 홈페이지

 

서울 도시건축센터 라운지

어떻게 보면 방치되어 있었던 공간에 가구 켜(층층이 쌓아진 층 혹은 단)만 하나 더 댔을 뿐인데, 책을 전시하고 읽을 수 있는 다목적실로 바뀌면서 문화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는 따뜻한 공간으로 변화한 공간. 대대적으로 건물을 바꾸기보다 기존의 건물이 갖는 흔적의 변형을 최소화하면서 열린 건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함.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서울 도시건축센터의 다목적실/사진=구보건축 홈페이지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서울 도시건축센터의 다목적실/사진=구보건축 홈페이지

 

전봇대집

원래 1층에는 봉제공장, 2층은 가정집이었음. 현재는 1층에는 카페와 전봇대집에 관해 전시실로 2층에는 구보건축 설계사무소가 있다. 가정집 레이아웃을 크게 바꾸지 않고, 방문만 제거한 채 기존의 벽들을 파티션으로 살려서 열린 사무실 형태로 운영함.

건물의 계단이 도로까지 연장된 듯한 설계로 재미를 준 전봇대집/사진=구보건축 홈페이지
건물의 계단이 도로까지 연장된 듯한 설계로 재미를 준 전봇대집/사진=구보건축 홈페이지

 

 

Q. 건축을 어떻게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조금 멋있는 대답이었으면 좋겠는데, 제가 고등학생 때 이과를 선택한 후 가려는 과를 보니 가고 싶은 과가 많지 않았어요. 그중에서 좀 덜 이과다운 과를 선택하려다 보니 건축학과를 선택하게 됐죠. 제가 약간 고지식한 성격이라 한번 과를 정하면 “이걸 계속 해야 하는구나” 하면서 계속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웃음).

 

구보 건축으로 향하는 2층의 계단 옆에 그동안 설계했던 작품들의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구보 건축으로 향하는 2층의 계단 옆에 그동안 설계했던 작품들의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학생 때도 설계를 그렇게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잘하지 못해서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에 더 열심히 계속하게 된 것 같아요. 또 저도 다른 분야로 옮길까 생각은 몇 번 했었는데, 그때마다 설계가 더 재밌어졌고, 재밌게 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이 생각나고 그러길 반복하다 결국 빠져나가지 못하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우리가 실생활에서 만나는 것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Q. 설계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 있나요?

모든 단계가 어려운 것 같아요. (웃음). 학생 때는 힘든 일이라고 하면 좋은 설계안을 만드는 게 100%였죠. 그런데 실제로 일을 해보니 좋은 설계안은 전체의 20% 정도인 것 같아요. 나머지 80%는 건축주와의 관계, 발주처와의 관계, 예산의 문제, 또 법적인 문제, 시공사와의 문제 등 제가 컨트롤하기 힘든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잘 대처해 나가야 하는 거죠.

 

Q. 작품의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는 것인가요?

영감을 어디에서 얻는다고 특정하기보다는 설계할 때, 도시하고 건축의 관계에 집중하는 것 같아요. 저희는 건물 하나가 독립적으로 예쁘게 지어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도시적인 맥락에서 이 건물이 얼마나 도시와 잘 소통하고 있고, 얼마나 사람들을 환영하고 있고, 또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고민의 결과를 보여주는 듯한 1층 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는 전봇대집의 설계도
고민의 결과를 보여주는 듯한 1층 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는 전봇대집의 설계도

 

형태, 새로운 기술, 재료도 건축가로서 기본적으로 관심은 있지만, 더 나아가 도시 안에서 이 건물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에 대해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계속해서 유심히 보고, 고민하고, 사람들과 얘기도 많이 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Q. “일상의 가치를 발견하는 건축을 추구하시는데, 이렇게 생각하게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미국에서, 제가 일했던 회사가 굉장히 디자인을 추구하는 회사였어요. 그래서 남들이 하지 않는 종류의 디테일 등 처음 시도하는 걸 많이 했었어요. 되게 재미있고,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이었는데, 그만큼 어떤 순간에는 엄청 고급주택의 디테일에 대해 고민하는 나와 집에 돌아와서 내가 사는 환경 사이의 괴리감을 많이 느꼈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과잉이다’라고 느껴질 정도의 돈과 기술이 필요한 디자인이 저에게 와 닿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때 제 일을 하게 되면 ‘우리가 실생활에서 만나는 것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인테리어 같지만 실제로 자주 쓰이는 치수들을 천정과 기둥에 나타내어, 방문하는 건축주들에게 스케일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한 배려가 돋보인다.
인테리어 같지만 실제로 자주 쓰이는 치수들을 천정과 기둥에 나타내어, 방문하는 건축주들에게 스케일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한 배려가 돋보인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지금 우리 회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내년 초에 완공 예정인 노원구청 로비 공간의 증축·리모델링 설계예요. 현상설계 당선된 작품인데, 평소에 저희가 관심 있던 주제들과 노원구청의 비전이 잘 맞았죠.

기존의 관공서라는 곳은 딱딱하고 행정위주의 공간이지만, 저희는 노원구민들에게 개방을 해서 사무적인 목적이 아니더라도 아이들과 놀러, 또 옆집 이웃과 수다 떨고 싶을 때 와서 차 한잔할 수 있는 그런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지금은 이걸 실현하기 위해 많은 어려운 과정들을 거치는 중이라 저희로서는 되게 기대하고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내년 완공 예정인 노원구청 로비공간의 내부 투시도/사진=구보건축 홈페이지
내년 완공 예정인 노원구청 로비공간의 내부 투시도/사진=구보건축 홈페이지

 

2019년도 여름에 현상설계 당선되어 원래는 6개월 설계 기간이었는데 노원구와 이견조율이 잘 안돼서 계속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1년 6개월 동안 설계를 하게 되었어요.

 

흐트러진 질서를 하나하나 바로잡아가는 일,

오래 걸리더라도 끈질기게 지속해서 해야하는 작업

 

Q. 건축 설계할 때 구보건축만의 시그니처가 있나요?

시그니처라기보다는 저희가 모든 설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문지방 건축’이라고 해요. 영어로는 ‘threshold’ 문턱, 문지방, 건너가는 곳, 공간의 성격이 전이되는 곳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현관’ 같은 공간이에요. 

건물 문을 열고 나가서 길을 만나는 아주 좁은 영역이죠. 저희는 그런 공간을 건물마다 잘 배려해서 어떤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나가는 과정 자체가 불쾌하지 않고, 좋은 경험이 될 수 있게끔 건물을 설계하는 것을 항상 고민하고 항상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Q. 나에게 건축이란?

저한테 건축이란 흐트러진 사물의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사람이 400 (400mm) 높이의 계단을 한 번에 올라서 힘들게 집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건 사물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이죠. 그래서 내가 인식하지도 못하고 집에 들어갈 수 있게끔 사람들의 생활을 훨씬 더 편리하도록 미세하게 조정하는 것이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라 생각해요. 

전봇대집 1층 전시공간을 방문하면 모형을 비롯하여 전봇대집에 대한 간단한 설명, 거쳐온 과정, 설계도, 건축판넬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전봇대집 1층 전시공간을 방문하면 모형을 비롯하여 전봇대집에 대한 간단한 설명, 거쳐온 과정, 설계도, 건축판넬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작은 스케일에서 건축을 본다면, 아무것도 없던 땅에 새로운 건물이 만들어지면서 그 주변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고, 어떤 새로운 질서를 만들 것인가가 건축가가 도시에 개입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흐트러진 질서를 하나하나 바로잡아가는 일이 우리가 오래 걸리더라도 끈질기게 지속해서 해야 하는 작업이라 생각하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열심히 건축 일을 하는 거예요. (웃음). 이제 6년 차가 되면서 그동안 고생도 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왔지만, 지난 5년 동안 우리 사무실 식구들 다 같이 열심히 해왔기에 지금은 어느 정도 기반도 잡힌 상태죠. 그래서 이제는 조금 더 능숙하게 새로운 일들도 대처하고, 더 재미있는 것도 많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보건축 조윤희 대표
구보건축 조윤희 대표

 


도시 곳곳에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라운지' 같은 공간들을 건축하고 싶다는 조윤희 건축가의 앞으로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구보건축 조윤희 대표의 주요 약력>

한국건축사 KIRA  |  미국건축사 RA, NCARB
서울시 공공건축가 (2016~)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MIT 건축대학원 졸업
한국 이로재와 미국 보스턴 Howeler+Yoon Architecture 실무경험

주요기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