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김수근 건축가의 유작 영원히 역사 속으로
채 30년의 수명을 지키기 어려운 근·현대 건축물
'서울 미래유산', 근본적 대책이 되기엔 역부족

[문화뉴스 임나래 기자] 지난 5월 25일, 구 르네상스호텔 부지에 건설된 초대형 복합건물 센터필드에 조선호텔앤리조트의 최상급 호텔브랜드 ‘조선 팰리스 서울 강남, 럭셔리 컬렉션 호텔(이하 조선 팰리스)’이 개장하면서 일대가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역에서 강남역에 이르는 테헤란로를 걷다 보면 새로 등장한 커튼월 마감의 센터필드가 기존의 빌딩 숲에 예전부터 존재해왔던 것처럼 주변과 위화감 없이 잘 어우러져 있다. 하지만 과거의 르네상스 호텔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새롭게 우뚝 선 빌딩이 오히려 과거의 건물을 회상하게 될지도 모른다.
과거 강남의 랜드마크, 르네상스 호텔
1988년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개관한 르네상스 호텔은 강남에 위치한 특급 호텔로서 과거 강남의 랜드마크였고, 고(故) 김수근 건축가의 유작으로서 건축적 가치가 인정되어왔다.
건축물 외관 전체적으로 나타난 유려한 곡선은 ‘버선’이라는 전통적인 소재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으로, 가장 한국적인 모티프를 창의적으로 건축물에 입히는 고(故) 김수근 건축가다운 설계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고(故) 김수근 건축가의 작품들은 대개 어디서 본듯한 건축물이 아닌 근·현대 건축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건물로, 한 번이라도 건축물을 본 적이 있다면 쉽게 잊을 수 없는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수명이 채 30년 안되어 영원히 역사 속으로
르네상스 호텔의 수명은 29년으로 채 30년이 안되어 생을 마감했다. 모기업인 삼부토건이 경영난을 겪으면서 2013년 매물로 나왔지만, 4년동안 우여곡절을 겪은 덕에 건축물은 2016년 마지막 공매에 낙찰될 때까지 테헤란로에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수 있었다. 르네상스 호텔도 결국 건축물이 지니는 건축적 가치나 역사적 가치가 기업의 경영난과 재개발 앞에 무릎을 꿇고 철거를 피해갈 수 없었다.

르네상스 호텔만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건축물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근대 건축물들은 이미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
고(故) 김수근 건축가의 다른 작품인 서울 종로구 중학동의 한국일보 옛 사옥은 2007년 무렵 재개발로 사라졌고, 1969년 지어진 서울 중구 장충동의 ‘타워호텔’은 유리로 뒤덮여 겨우 형태만 보존한 채 2010년 ‘반얀트리 서울’로 리모델링되었다.
세계의 근·현대 건축물 보존을 위한 움직임
근·현대 건축물에 대한 보존은 최근 전세계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보존에 있어서 우리나라(서울)와 유사한 도시 스케일을 가지고 있는 영국(런던)의 경우 21세기 들어서면서 건축된 지 최소 30년 이상의 근·현대 건축물을 건축적 가치, 역사적 가치의 기준에 따라 목록화(Listed Building)하기 시작했다. 지정된 근·현대 건축물은 문화재로서 그 가치를 인정을 받으며 보존의 의무를 지니게 된다.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전세계적으로 많은 20세기 근·현대 건축물들이 인식의 부재나 재개발로 인해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보존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2010년부터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첫 발행본이 2011년에 마드리드 헌장(ICOMOS 2011 Madrid Document)이 발표된 이후 2014년 개정된 헌장(2014 The Madrid Document Second Edition), 그리고 2017년 마드리드-뉴델리 헌장(Madrid-New Delhi Document 2017)이 발표되기까지 꾸준히 근·현대 건축물 보존에 기여하고 있다.
한국의 '서울 미래유산'
서울시는 2012년 ‘근현대 유산의 미래유산화 기본구상’을 발표한 이후, 2013년부터 시 미래유산보존위원회가 시민과 전문가 등으로부터 서울 전역의 문화유산을 추천·심사를 거쳐 서울 근·현대 유·무형유산을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하고 있다.
‘서울 미래유산’은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근·현대의 문화유산을 보존하고자 하는 일환으로 현재까지 약 500여개가 선정되었다.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고(故) 김수근 건축가의 작품들로는 아르코 미술관, 아르코 예술극장, 잠실종합운동장, 쌍용빌딩, 공공일호(옛 샘터사옥), 불광동 성당, 서울대학교 예술관, 서울법원 종합청사 본관동 등이 있다. 비록 르네상스 호텔은 미래 유산으로 지정받지 못한 채 철거되었지만, 일부 건축물들은 그 가치를 인정 받은 것이다.
하지만 미래유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았을 뿐, 재개발이나 철거의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해외의 움직임과는 달리 ‘서울 미래유산’은 잊혀져 가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발굴·홍보할 뿐, 문화재로 지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건축물의 경우 문화재로서 법적으로 보호되지 않을 뿐 아니라 보존에 대한 의무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최근 서울시는 ‘서울 미래유산’이 앞으로도 ‘자발적 보전 원칙’이 고수되고 재산권 사용이나 개발 등을 막는 장치가 없다면 미래유산으로서 의미가 없어질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근·현대 건축물들은 시대와 역사를 반영하고 때로는 중요한 자료가 되지만, 지어진지 오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건축적 가치나 역사적 가치가 쉽게 과소평가된다. 우리나라는 특히 건축물을 부동산 자산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기 때문에 철거와 재건축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더 많은 근·현대 건축물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 전, 이제는 되돌아보아야 미래 세대에게 남겨줄 우리나라의 건축적 유산이 생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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