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대신 기록한 텍스트와 AI, '청사진 인화'와 만나
정통적 사진 가치에 대한 도전이자 예술적 경계 탐구
11~18일 전주 한벽문화관서…책자로 작품 숫자 찾아야

작품 010-2. 작가 제공
작품 010-2. 작가 제공

 

(문화뉴스 정성훈 기자) 10여 년간 '행복한 찍새'라는 이름으로 사진 작업을 이어온 성환 작가가 일곱 번째 개인전 ‘SILENT BLUE #01 / 이것은 사진이 아니다. 가짜 사진, 진짜 이야기’를 전북 전주한벽문화 전시관 1층에서 연다. 전시는 11일부터 18일까지며 일‧월요일은 휴관이다.

작가의 오랜 시간 축적된 '진짜 이야기'인 텍스트와 최첨단 인공지능(AI) 기술, 그리고 사진의 가장 오래된 인화 기법 가운데 하나인 ‘청사진 인화’를 결합한 독특한 형식의 이번 전시는 기술 문명의 확장 속에서 예술의 새로운 형식을 제시하며 정통적 사진의 가치와 예술적 표현의 경계를 심도 있게 탐구한다.

전시는 ‘이것은 사진이 아니다’라는 역설적인 부제를 통해 작업의 출발점이자 핵심을 명확히 한다. 작가는 “기록하는 것을 좋아해서 언제나 조금씩 메모해 오던 것들에서 작업의 영감을 얻었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작가의 심연에 가라앉아 있던 텍스트가 바로 작업의 '진짜 이야기'다.

'행복한 찍새' 성환 작가. 작가 제공
'행복한 찍새' 성환 작가. 작가 제공

작가는 오랜 시간 직접 기록한 자신의 텍스트를 출발점으로 삼아 가상의 도구, 즉 AI를 통해 시각적 자료들을 생산하고 재구성했다. 사진을 직접 촬영하지 않고 텍스트 기반으로 이미지를 생성하는 이 과정은, 사진의 정통적인 가치를 부인함과 동시에 확장된 예술적 정의 안에서 새로운 형식을 추구한다.

흥미로운 점은, AI 기술로 생성된 이미지를 전통 한지 위에 청사진 인화라는 아날로그 기법으로 구현했다는 것이다. 청사진 인화는 19세기 중반에 개발된 오래된 사진 인화 기법으로, 특유의 푸른색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가장 새로운 문명의 도구인 AI와 가장 오래된 사진 인화 기법의 시간적, 기술적 충돌과 융합을 상징하며, 예술의 확장된 정의 안에서 AI를 수용하고 새로운 형식으로 끌어안으려는 작가의 노력을 보여준다.

전시 제목 ‘SILENT BLUE #01’은 작가의 내면적 사색을 은유한다. 어둡고 불안했던 오늘의 밤이 거치고, 내일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새벽녘의 시간을 누군가는 SILENT BLUE라고 불렀다. 작가는 이 밝음도 어둠도 아닌 경계선, 즉 반복되는 끝과 시작의 중간에서 마주치는 현상들을 작품에 담아냈다.

작가는 "저 아래 어두운 심연에서, 또 다른 내가 언제나 나와 같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라며 관람객들 또한 스스로의 내면에 잠재된 불안과 마주하고, 그 안에서 공감과 치유를 경험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작품 103. 작가 제공
작품 103. 작가 제공

작품 아래에 표시된 번호에 해당하는 글들이 담긴 책자를 들고 작품을 관람하는 것은 이번 전시의 중요한 관람 팁이다. 관람객들은 한 장의 사진과 그에 해당하는 작가의 글을 함께 찾아 읽으며, 작가의 심연에 가라앉아 있던 불안과 그리움을 공유하게 된다.

한편 ‘광고쟁이’로 서울에서 15년 넘게 활동하다 '행복한 찍새'라는 이름으로 홀로 사진 작업을 시작한 성환 작가는 전북 진안의 작은 시골집에서 자신만의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50대에 접어든 작가는 지난 10여년간 ‘만명의 사람을 만장의 사진으로’, ‘소녀상은 살아 있다’, ‘사람들의 물건 이야기’ 등 사람들과의 공감을 통한 내면 탐구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문화뉴스 / 정성훈 기자 until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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