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의 가장 큰 장점을 희생하고 다른 장점을 얻는다는 이론에 대한 '짧은 견해'

▲ 제주고 재학 시절 청소년 대표팀 선발 당시의 임지섭. 사진ⓒ김현희 기자

[문화뉴스 MHN 김현희 기자] 야구를 하다 보면, 의외로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와 같은 유형의 질문을 많이 받는 경우가 있다. 고교 때 투-타 모두 재능을 드러내 보인 이들에 대해 어떠한 포지션에 더 애착이 가는가에 대한 질문 역시 마찬가지. 둘 다 좋아하고 잘 하기 때문에 욕심내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다만, 스프링캠프를 통하여 본인이 제대로 된 성과를 낼 수 있는 포지션이 어디인지 결정하면 된다. 내야 전 포지션에 대한 소화가 가능한 선수들에 대한 질문도 마찬가지다. "유격수, 3루수, 2루수, 1루수 중 가장 편한 포지션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답을 잘 못 한다. 고교 3학년 때에는 유격수로 나섰지만, 1~2학년 때에는 3루수나 2루수로 나서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역시 앞서 언급한 것처럼 팀 사정에 의해 조금씩 조정을 하면 그만이다. 아니다 싶으면 선수 역량에 따라 중복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도록 팀에서 여건을 마련해 주면 된다.

이처럼 야구에서는 의외로 답을 정하기 어려운 질문이 많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정답이 없는 것'이 정답이 될 때도 있다. 이러한 묘미가 바로 야구인 것이다. 그래서 '야구에 정석은 없다.'라는 명제 또한 틀린 것이 아니다. 나에게 맞는 타격 폼이 타인에게는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남에게 맞는 투구 폼이 나에게는 소화하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야구는 생물과 같기 때문에, 교과서적인 법칙에서 예외가 항상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구속을 버리고 제구를 얻었다?
임지섭이 가야 할 방향은?

그런 의미에서 보면, 장훈 선생의 광각 타법도 사실 교과서적인 타격폼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이렇게 쳐야 본인이 편하게 칠 수 있고, 타구의 질도 좋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현역 시절 내내 이 방법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러한 뚝심이 있었기에 500홈런과 3,000안타를 동시에 기록한 것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한 가지 타격 방법으로 100명의 선수를 똑같이 가르친다는 것도 이제는 시대에 맞지 않는 지도 방법이 됐다. 간혹 필자에게 "제가 치고 있는 지금 이 타격폼이 맞는 것인지 한 번 봐 달라."라고 동영상을 보내 오는 어린 선수들이 있는데, 그럴 때면 꼭 놓치지 않고 해 주는 이야기가 바로 위의 장훈 선생의 사례다. 또한, "전 세계에 1,000명의 타자가 있다면, 1,000개의 타격폼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교과서적인 방법으로 1,000명을 똑같이 가르친다고 해도 결국은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게 된다."라고 덧붙이면서 대신에 어떤 시기에 프리 배팅을 했을 때 '가장 자연스러워 보이는지' 정도만 이야기해 주는 선에서 끝을 낸다. 그리고 이는 보는 야구에 길들여진 비전문가 입장에서 매우 현실적인 조언이기도 했다.

이러한 사례를 거론하는 것은 얼마 전 넥센과의 경기에서 조기 강판당한 임지섭(LG)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최고 151km에 이르는 빠른 볼을 던졌던 임지섭은 2014 시즌을 앞두고 부활한 연고지 1차 지명에서 LG의 선택을 받는 등 꽤 촉망 받는 유망주였다. 제주고교 3학년 시절인 2013년에 청소년 대표로 발탁된 것은 그래서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당시 청소년대표와 LG 2군과의 연습 경기가 열리던 날, 임지섭을 보기 위해 구리 챔피언스파크(이천으로 이전하기 전)에 이대형(현 kt)을 포함한 선배들이 더그아웃에 몰려 오기도 했다. 그만큼 소속팀 1차 지명을 받은 선수에 대한 관심이 꽤 컸다.

당시 마지막 투수로 나선 임지섭은 LG 2군을 상대로 1이닝 1볼넷 무실점 투구를 펼쳤다. 삼진은 없었지만, 빠른 볼로 배짱 있게 선배들을 상대하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러한 기대감 속에서 고교생 데뷔전 선발승을 거두기도 했고, 상무 입대 전에도 2015 시즌 초반 임펙트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전형적인 좌완 파이어볼러로서의 면모를 과시한 바 있다. 2016 시즌을 앞두고 임한 군 복무는 그래서 더욱 임지섭에게 기대를 갖게 했다. 충분한 2군 경험을 통하여 완성형의 투수로 거듭날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 고교 및 입대 전 투구폼(윗 사진과 아래 왼쪽 사진)과 현재의 투구폼(아래 오른쪽 사진)을 비교해 보면 미세하게 다르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전역을 앞둔 지난 시즌에서 임지섭은 놀라운 활약을 선보였다. 18경기에서 11승 4패, 평균자책점 2.68이라는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이었다. 94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탈삼진은 무려 117개, 볼넷은 겨우 48개밖에 내주지 않았다. 입단 전부터 제구력이라는 측면에서 약점을 보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저 성적은 분명 유의미한 숫자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런데 이러한 성적 뒤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들려 오기도 했다. 제구력을 잡기 위해 구속을 포기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하여 2군에서 통했던 변화구의 구질과 투구폼의 변화가 1군에서 얼마나 통할지 지켜봐야 한다는 이야기 등이 그러했다. 어찌 보면 상당히 이분법적인 논리이기도 했다. '제구가 좋아, 구속이 좋아?'라는 질문 자체가 앞서 언급한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과 똑같기 때문이었다. 이 상황에서 가장 좋은 것은 구속을 어느 정도 유지하는 상황 속에서 제구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물론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를 평가하는 것은 선수 본인에게나 지도자들에게 큰 실례일 수 있다. 이에 대해 필자는 고교 및 프로 초창기 시절의 투구폼 자료와 전역 이후 중계방송을 통하여 직접 목격한 그의 투구폼을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 봤다. 전역 이후 첫 선발 등판 경기에서 무엇인가 임지섭답지 않게 던지고 있다는 것을 포착했기 때문이었다.

비교 결과 확실히 던지는 방법이 달라졌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교 시절에도 팔꿈치를 완전히 다 편 상태에서 타점을 높게 가져간 것은 아니었지만, 좌완 정통파 투수의 투구폼의 범위를 넘어서지는 않았다. 이는 프로 초창기에도 거의 비슷했다. 그러나 전역 이후에는 팔꿈치를 바로 위로 올린 이후 투구를 하는, 예전 송유석 선수(前 해태-LG)와 비슷하게 던진다는 점을 포착했다. 투포환 선수 출신인 송유석은 하루 빨리 실전에 적응하기 위해 본인이 가장 던지기 편한 자세로 반복 연습을 진행한 바 있다. 그러다보니, 투포환을 던지는 것 같은 본인의 독특한 투구폼을 완성한 것이다. 이러한 투구폼이 제구력에 도움을 줬는지는 모르겠으나, 결과적으로 그는 넥센전에서 난타를 당한 이후 현재 피칭 아카데미에서 이상훈 원장의 지도를 받고 있다. 어찌되었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판단을 한 셈이다.

사실, 제구력을 찾기 위해 본인의 장기를 어느 정도 희생한다는 논리가 정확히 들어 맞는다는 보장은 없다. 정말로 그렇게 해서 1류로 거듭나는 경우도 있고, 구속은 유지한 채 제구력을 잡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가는 경우(놀란 라이언을 만난 랜디 존슨의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전 세계에 투수가 1,000명이라면 투구폼도 1,000개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임지섭을 비롯한 젊은 투수들이 잊지 말아야 하는 점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eugenephil@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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