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김민주가 국립극단 청소년극 '오렌지 북극곰'에서 '지영' 역할로 출연한다.

[문화뉴스] "청소년 시기에 느끼는 여러 가지 갈등은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계속 나누면서, 청소년의 마음을 읽어주는 그런 공연이 됐으면 좋겠다."

 
국립극단이 9월 1일부터 11일까지 한국과 영국의 청소년극 프로젝트로 제작한 연극 '오렌지 북극곰'을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막을 올린다. '고등어'와 '죽고 싶지 않아'에 이어 국립극단의 올해 세 번째 청소년극으로, 2014년 국립극단의 '청소년예술가탐색전'으로 시작된 장기 프로젝트다.
 
2014년 2월부터 8월까지 국립극단은 한국의 고순덕 작가와 영국의 에반 플레이시 작가, 그리고 양국의 청소년과 함께 희곡개발 공동워크숍을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진행했다. 이런 토대로 15세 '소년'과 '지영', 두 청소년 캐릭터의 이야기가 완성됐다. 영국에 사는 '소년'은 이민자의 아들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고, 한국에 사는 '지영'은 엄마 없이 맞이하는 신체의 변화를 두렵게 생각한다.
 
이번 작품은 영국 어린이청소년극 현장을 30여 년간 지킨 연출가 피터 윈 윌슨과 '비행소년 KW4839'로 새로운 형식의 청소년극을 선보인 차세대 아티스트 여신동이 공동 연출을 맡아 감각적인 얼음 무대 위에서 청소년의 미묘한 심리를 세밀하게 담아낸다. 8월 31일 오후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프레스콜이 열렸다. 하이라이트 시연 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엔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 고순덕 작가, 여신동, 피터 윈 윌슨 연출이 참석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인사말을 남기고 있다.
 
이번 공연의 의의를 말해 달라.
ㄴ 김윤철 : 국립극단이 추구하는 여러 일이 있는데, 국제 협력은 대단히 중요한 사업이다. 특히 청소년극을 놓고 보면, 한국은 청소년극을 개발하는 단계에 있고, 영국이나 스웨덴 등 유럽의 많은 나라는 청소년극이 꽤 발달했다. 유럽에선 청소년극을 통해, 연극의 아방가르드적인 실험도 하는 독립적 장르의 역할을 많이 하고 있다. 우리 청소년이 연극에 대한 갈증이 많은데, 제작 단체나 우수한 예술적 작품이 많이 생산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국립극단은 국제협력을 통해 좋은 레퍼토리를 개발하고, 토대가 되어 한국 청소년극의 발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공연은 오랜 준비 기간을 걸친 프로젝트다. 2년 전부터 고순덕 작가와 에반 플레이시 작가가 서로 미팅을 했고, 한국과 영국 청소년들의 만남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두 작가가 작품을 썼다. 청소년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초점이 맞춰졌다. 올해는 한국 버전으로 시도를 해봤다. 내년 영국에서 양국의 배우가 함께 진정한 의미의 협업을 하길 희망한다.
 
공연을 올리게 된 소감을 듣고 싶다.
ㄴ 피터 윈 윌슨 : 김윤철 예술감독의 말처럼 이번 프로젝트는 긴 준비 기간이 있었고, 매력적이었다. 나는 보통 청소년과의 작업을 통해, 청소년을 위한 작품을 영국에서 많이 만들었다. 이 프로젝트는 청소년을 만나는 과정을 지속했기 때문에 중요했다. 양국 학생이 만나 서로의 차이점을 말하는 것이 있었다.
 
또한, 지난 7월엔 1주일간 버밍햄에서 양국의 배우들과 워크숍을 거쳐 두 언어 버전을 생각하며 작품을 만들게 됐다. 우리의 희망은 두 나라의 배우와 모두 작업해서, 두 언어로 된 작품을 최종적으로 올리는 것이다. 그 과정에 이번 기회에 멋진 배우들과 좋은 극단과 극장에서 공연을 올리는 것이 큰 이득이라고 본다. 정말 긴 프로젝트였지만, 하루하루가 새롭고 다채로워서 즐거웠다.
 
   
▲ 피터 윈 윌슨 연출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텍스트 기반의 작품 연출은 처음이었다. 여기에 공동연출도 하게 됐는데, 소감을 들려 달라.
ㄴ 여신동 : 텍스트를 기반으로 해서 작품을 연출한 것은 처음이다. 그래서 흥미로웠다. 텍스트가 있는 대본을 가지고 연출한다는 것은, 대본이 없이 하는 것과는 다른 재미가 있었다. 여기에 혼자 연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연출과 공동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처음 작품을 만날 때 '어떻게 해야하는 지', '한 작품에 두 연출이 말이 될까'라고 생각해 걱정했다. 배에 선장이 두 명이 있는 것과 같은데, 호흡이 잘 맞지 않으면 배가 산으로 갈 수 있으므로 서로 고민을 많이 했다.
 
어떻게 조율을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을 했고, 피터 윈 윌슨 연출이 잘하는 것과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이 작품에 '연출'이라는 이름으로 보탬이 돼야겠다고 선택했다.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배우들과 캐릭터들이 살 수 있는 집과 공기를 만들어줬다면, 피터 윈 윌슨 연출은 배우들이 어떻게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작업이 이뤄져서 솔직히 초반엔 쉽지 않았다. 어제까지 연습을 계속하며, 흥미로운 작품이 나왔다고 생각했다.
 
'오렌지 북극곰'의 의미는 무엇인가?
ㄴ 여신동 : '오렌지 북극곰'의 원래 제목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2년 전 처음 작품이 나왔을 때는 다른 제목이었고, 디벨롭해서 다른 제목을 설정했는데, 공연을 앞두고 제목을 다시 정하자고 해서 국립극단에서 회의를 했다. '오렌지 북극곰'은 어감도 재밌고, 이미지도 분명했다. 오렌지 색에 북극곰을 하면 누구나 다 생각할 수 있는 이미지여서, 그 이미지가 떠오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름을 붙인 후에, 어떤 의미를 넣을지 생각했다. 대본에선 북극곰이라는 심볼이 계속 나온다. 여기에 프롤로그엔 청소년 자기 자신을 떠도는 '빙하 조각'이라고 자기들이 말을 한다. 북극곰은 춥고 얼어붙은 이미지가 있고, 떠다니는 빙하는 불안해 보인다. 여기에 오렌지 색을 떨구면 북극곰이 따뜻하고, 청소년들도 마냥 버려지고, 외롭고, 소외된 것이 아니라 조금은 보듬어지고, 그들의 가능성이나 미래가 좀 더 느껴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오렌지 북극곰'을 정했다. 다들 정하고 나니 좋아했다.
 
   
▲ 여신동 연출이 '오렌지 북극곰'으로 작품 이름을 정한 이유를 밝혔다.
 
에반 플레이시 작가와 공동 작업을 했다. 뒷이야기가 있다면 들려 달라.
ㄴ 고순덕 : 에반 플레이시 작가는 영국에 있고, 나는 한국에 있으니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영국으로 날아가서 만날 때, 이번에 만나면 어떤 목적까지 달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주일 미션이라 생각하고, 1주일 동안 이 단계를 달성해야 한다고 계획을 했다. 
 
작품 내용에 대한 고민도 고민이지만, 헤어질 때 다시 만날 때까지 어떤 것을 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도 들어가서 작업 방식에 어려움이 있었다. 혼자 할 때보다 더 긴장감이 높은 작업이었다. 이메일도 주고받았고, 난생처음 스카이프로 영상통화도 해봤다. 기계치인데, 그런 혜택 덕분에 멀리 떨어져도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즐겼다.
 
에반 작가 집 근처에 숙소를 얻어서 찾아갈 때가 있었다. 그때는 전혀 모르는 공간이었지만, 무언가 서로 통하는 인간적인 정이 느껴져서 참 좋았다. 에반의 입양한 아이도 봤고, 서로 글을 쓴 조각을 보며 우리가 작가로 만나긴 했지만, 인간으로도 만난다는 것을 느낀 시간이었다. 작업 중간 공식적으로 청소년과의 워크숍이 두 차례 있었다. 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이야기를 완성하는 2~3단계가 있었다. 만남이 한정될 수밖에 없지만, 그 안에서 교류했던 것 같다.
 
   
▲ 2014년 '오렌지 북극곰'의 국립극단 청소년예술가탐색전 당시 모습. ⓒ 국립극단
 
작품을 어떤 방향으로 연출했으며,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은가?
ㄴ 피터 윈 윌슨 : 청소년극 분야에서 오래 활동하면서, 많은 작품이 청소년 관객을 과소평가하거나, 이렇게 해야 한다고 지시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됐다. 나는 청소년들에게 질문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줄 수 있는 작업을 좋아한다. 그래서 이 작품을 통해 그러한 결과물을 냈으면 좋겠다. 이 작품이 좋았던 것은 스타일면에서 독특하다는 점이었다. 리얼리즘을 넘어 청소년이 순간 느끼는 감정을 표현할 수 있고, 청소년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내가 보기에 이 작품에 나오는 청소년들은 극단적인 문제를 갖고 있지 않고, 평범한 청소년들이 겪는 평범한 문제가 등장한다. '소년'과 '지영' 두 사람 모두 공통점이 있다면 눈에 띄지 않는 것 같다고 느끼는 부분이다. 그래서 종종 사라지고 싶다는 욕구를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을 보는 청소년들이 우리의 감정을 알아준다고 느꼈으면 좋겠고, 이들의 고민도 우리와 똑같다는 것을 느끼면 좋겠다.
 
연출방향에 관해 물어보셨는데, 한국 배우들과 한국어로만 제작되는 작품이어서 혼자 하면 연출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최대한 배울 수 있을 만큼 배우고, 한국 청소년극에 가장 적합한 게 무엇일까 고민했다. 그리고 여신동 연출이 협업했던 과정을 잘 설명했지만, 배우들과 작업하면서 이야기 전달에 초점을 줬다. 다른 나라의 배우들과 작업한다는 것이 즐거웠다. 그리고 여기 계신 분들에게 농담일 수도 있는데, 여기 있는 분들보다 청소년 관객들이 빨리 공연장에 오셔서 공연을 재밌게 보시면 좋겠다.
 
여신동 : 작품에선 두 청소년이 나오는데, 청소년이라고 하기 전에 두 사람이다. 어른들에겐 내가 지나왔던 시간이고, 청소년들에겐 내가 겪고 있는 시간이다. '소년'과 '지영' 두 캐릭터는 평범한 청소년들이다. 두 캐릭터는 밤에 자기 마음을 일기장에 쓰는 것 같았다. 청소년 시기에 느끼는 여러 가지 갈등은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계속 나누면서, 청소년의 마음을 읽어주는 그런 공연이 됐으면 좋겠다.
 
   
▲ 고순덕 작가가 청소년들과의 작업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청소년들과 이야기하면서 작품을 수정한 사례가 있다면 말해 달라.
ㄴ 고순덕 : 많은 청소년이 이번 프로덕션을 거쳐 갔다. 나는 40이 넘은 나이라 감각을 회복하는 차원에서, 지금 청소년들이 느끼는 사용하는 언어 등 일반적인 리서치를 할 때 청소년들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 어떤 장면을 쓸 땐 더 구체적인 도움을 받았다. 예를 들어, 생리를 처음 할 때 초경 파티를 해주고 공개적으로 말하기도 하는데, 리서치를 하면서 의외로 초경 파티를 떠들석 하는 것도 싫어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생리를 일상적으로 편하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와의 관계뿐 아니라, 할머니와의 관계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우리나라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들을 보살피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번에 만난 아이들도 할머니 손에 자란 경험이 다 있었다. 그래서 항상 밥을 잘 챙겨주시는데, 어릴 때 잘 먹다가 커서 투정부리기도 하는데 후회했다고 말한 적도 있다. 공연 중에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데, 밥을 이렇게 준다는 갈등이 나오는 부분이 있다. 이렇듯 여러 요소가 있고, 살아있는 캐릭터를 만드는 데 청소년들의 도움이 많이 있었다.
 
이번 공연에 한국 배우들만 출연하게 된 이유가 있는가? 양국 배우들이 같이 나왔으면 좋았을 것 같다.
ㄴ 피터 윈 윌슨 : 우리 목표는 영국과 한국 배우들이 같이 작업해서 공연을 올리는 것이다. 지금보다 조금 어렵긴 하겠지만, 분명 더 쉬운 과제가 될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국립극단이 관대하게 지원을 해준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비용도 많이 드는 복잡한 프로젝트인데, 영국에선 한국만큼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최종적으로 말씀하신 버전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하겠다.
 
   
▲ '오렌지 북극곰'에서 '소년'을 맡은 배우 안승균이 한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끝으로 이번 시즌 남은 청소년극 계획과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들려 달라.
ㄴ 김윤철 : 피터 연출이 이야기했지만, 내년에 희망을 섞어서 영국 배우들과 함께하는 작업을 다른 버전으로 접근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분명 지원이 이뤄질 거라 본다. 다들 작품에 대해 소박하게 말씀하셔서 사실 속이 상하다. (웃음) 평범한 청소년들의 이야기라고 하셨지만, 자세히 보면 사회적인 컨텍스트가 많이 있다.
 
'소년'은 이민자의 아들로, 어머니는 허드렛일을 하면서 아들을 영국 사회에 동화시키려 노력하는 소외된 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국의 '지영'은 이혼한 부모 밑에서 나와 할머니와 함께 자란다. 여기에 미모에 자신이 없어 열등감을 느끼는 모습 등은 우리 사회의 핵심 문제를 다룬다. 작품의 숨어 있는 의미를 찾아가는 것도 재미난 관람 포인트가 되리라 믿는다.
 
이번 한국과 영국의 프로젝트가 지속해서 발전할 수 있길 바란다. 영국이 청소년극에 대해 오랜 심혈을 기울여서, 교류하면 배울 점이 많을 것이다. 여기에 미국 케네디 센터와 한-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청소년극의 장르화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본다. 청소년은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고, 미래의 고객이 된다. 이들을 지금부터 좋은 연극에 중독을 시켜, 평생 연극 관객을 만들자는 뜻도 있다. 좋은 단체들과 예술가들의 협업을 통해 한국 청소년극을 개발해보겠다는 웅대한 뜻이 있다. 많은 협조 부탁드린다.
 
올해 '고등어', '죽고 싶지 않아' 등을 해왔고, 이번 가을엔 이 작품과 함께 여러관객들과 관계자들의 요청에 힘입어 '타조소년들'을 재공연하게 됐다. 지방투어 계획도 있어서,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청소년극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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