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으랏차차, 세우다!' 작품공모전 참가팀 극단 별지 '바날리자시온' 인터뷰

   
(왼쪽부터) 연출가 이벼리, 배우 전준호, 배우 홍신정, 배우 박종훈

[문화뉴스] 지난 19일 '으랏차차, 세우다!' 작품공모전 첫 작품의 첫 공연이 세우아트센터 무대에 올랐다. '으랏차차, 세우다!'는 대학로 세우아트센터와 문화콘텐츠제작사인 으랏차차스토리가 최근 침체한 대학로 공연계에 이바지하고자 공연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주고,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문화예술 인큐베이팅 작품공모전이다.

제1회 공모전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5월부터 6월까지 약 40여 편의 작품들이 공모됐다.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나온 4개의 작품은 극단 별지의 '바날리자시온', 레이지비디오의 '본배드', 최정윤프로젝트의 '개,돼지', 아틀리에스토리의 '맞장'이다.

이중 가장 첫 순서를 맡은 극단 별지의 연극 '바날리자시온'은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총 4회의 공연을 진행했다. '바날리자시온(banalización)'은 평범함이라는 뜻의 스페인어다. 이들이 '평범함'이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내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연출가 이벼리는 "평범하다는 게 굉장히 상대적인 것이다. 누구한테는 제빵사가 되는 게 평범한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런 소박한 꿈조차 평범한 것일 수 없다"며 "가해자한텐 평범할 수 있는 게 피해자에게는 평범하지 않을 수 있다. 당신들의 평범한 세계가 보람한테도 평범한 세계일까?"라 묻고 싶었다고 전했다.

바날리자시온은 이승과 저승,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극단 별지만의 상상적 공간이다. '시온(전준호 분)'이라는 바텐더가 지키고 있는 이곳은 간절히 만나기 원하는 이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꿈의 공간이다. 여기서 보람(홍신정 분)이 간절히 만나고 싶어 했던 이는 바로 자신을 성폭행한 경훈(박종훈 분)이다.

가면을 쓴 바텐더, 나를 너무나도 잘 아는 낯선 여고생, 들어오기는 했지만 출입구는 없는 바(bar), 물에 젖은 휴대폰, 멈춰있는 시간과 장소……. 연극은 경훈의 시선에서 아무 것도 명확하지 않은 세계를 그린다. 그러나 더불어 아주 극명한 사실을 지적한다.

보람은 경훈을 너무나도 잘 알지만, 경훈은 보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범죄로 인한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피해자에 대해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가해자, 그리고 가해자에 대해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 피해자. '평범함이 꿈'이었다고 말하는 피해자를 보며, 그 동안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어떤 2차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던 것인지 가슴을 치며 되돌아보게 된다.

경훈은 파렴치한 가해자는 아니다. 20여 년 전 자신이 저지른 범죄로 인해 무려 146번의 자살시도를 하며 자신의 삶을 고통스럽게 지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해자의 고통이 자신의 범죄의 무게를 가볍게 해주거나 없애주는 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 피해자들의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인데, 가해자의 삶이 고통스럽다고 해서 그의 죄악이 가벼워질 수가 있는 것일까? 만약 그럴 수 있는 세상이라면 우리는 도대체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일까? 우리 사회의 공감 능력은 가해자와 피해자 중, 누구를 향해있는 것일까?

극단 별지는 이 땅의 별이 되고 싶다 말한다. 숨어 지낼 수밖에 없는 이들, 상식과 논리라는 이름으로 못 박힌 가슴을 제대로 치료조차 받지 못했던 이들을 비춰주는 별이 되고 싶다 말한다. 그래서 이들은 극단 첫 번째 공연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을 택했고, 두 번째 공연으로 성폭행 피해자들을 위한 연극 '바날리자시온'을 택했다고 말한다. 넉넉한 극단 살림을 꾸리고 싶지만 '의미 있는 일'을 포기할 수 없기에 여전히 그 어려움을 감내하고 있는 이 극단, 너무나도 젊고 생생하고 열정적이다.

본지는 지난 19일 오후 8시 공연이 끝난 후, 당일 공연에 참여했던 배우 홍신정, 박종훈, 전준호, 그리고 연출가 이벼리와 함께, 연극 '바날리자시온'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우리 사회를 아우르고 있는 폭력적인 시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공연을 치루고 있는 소감은?

ㄴ 이벼리 연출가 : 세우아트센터가 다른 소극장에 비해 굉장히 시설이 좋은 편이다. 무대를 표현하는 조명, 음향 등을 사용할 때 연출가 입장에서 굉장히 흡족했다. 공모전 본선에 진출했기에 누릴 수 있는 부분이다. 즐겁다.

ㄴ 전준호 배우 : 큰 무대에 처음 서보게 돼 긴장된다. 지금까지 나는 주로 혼자 연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큰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내 에너지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그리고 공모전이다보니 욕심도 나더라(웃음). 그래도 공연하는 동안은 즐겁다.

ㄴ 홍신정 배우 : 연습할 때는 좁은 공간에서 해왔다. 그러다가 넓은 무대로 오니 발성 자체나 모션 등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관객들에게 최대한으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관객들게 잘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점을 염두에 뒀다. 우리의 극이 끝난 후 관객들이 더 남아서 공연의 여운을 느끼셨으면 좋겠다. 첫 공연이라 많이 떨리기도 했고 긴장도 많이 했다. 그래도 공연이 일단 진행됐으니 내일 공연을 더 보완해서 올리도록 하겠다.

ㄴ 박종훈 배우 : 으랏차차 스토리에서 올해 처음으로 공모전을 시행하는 걸로 알고 있다. 첫 페스티벌의 첫 번째 팀, 게다가 첫 공연이다 보니 부담감이 굉장했다. 그만큼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한편, 연출가뿐 아니라 우리 극단 모든 배우들이 이렇게 좋은 극장에서 연습을 하고 공연할 수 있다는 사실에 다들 정말 좋아하고 있다. 우리의 공연을 더 나은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에 큰 기대가 됐었다.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본선에 올랐다. '우리 공연만의 강점'을 꼽자면?

ㄴ 이벼리 : 우리 공연은 난해하면서도 젊고 신선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ㄴ 박종훈 : 실험극에 대한 도전의식을 가지고 있다. 우리 극단은 이전에 크라우드 펀딩으로 공연을 한번 올린 적 있다. 다른 극단이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우리는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상업극이라는 경계선 안에서는 할 수 없는 부분들에 대해, 우리는 더 열정과 패기를 가지고 다양한 극에 도전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신생 극단이라 그런 것일지도 모르고 다른 극단도 마찬가지일지 모르겠지만, 특히나 우리 극단은 우리만의 끈끈함, 으쌰으쌰하는 에너지가 강하다.

ㄴ 이벼리 : 그렇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공연을 만들어내는 집단이다

ㄴ 홍신정 : '바날리자시온'은 적나라한 연극이다. 실제로 사회적 이슈를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 있는 극이 많지 않은 상황이다. 우리 극은 사회의 이면을 드러내면서 관객들에게 생각해보라고 던지는 부분이 있다. 누구든 다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말이다.

 

 

   
 

극단 별지는 '바날리자시온'으로 공모전에 참가하기 이전부터 크라우드 펀딩 통해 공연을 이미 올린 바 있다고 들었다. 

ㄴ 이벼리 : '바날리자시온'을 쓰고 기획하면서 막막했다. 우리가 만든 극의 티켓팅부터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데, 단원 중에 크라우드 티켓에 대해 알려주더라. 그래서 공연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집중적으로 하시는 분을 알게 됐다. 그렇게 펀딩 페이지를 만들고 펀딩하다 보니 목표 도달 금액을 넘기기도 했다.

기존의 인터파크와 티켓몬스터 같은 대형 티켓 중개사이트는 수수료를 많이 가져가더라. 그래서 지난 공연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할 때도 그쪽은 이용하지 못하고 플레이티켓이라는 곳을 이용했다. 수수료가 적은 예매 사이트다. 크라우드 펀딩은 정말 좋았다. 관객들과 함께 참여해서 공연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보니 더욱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공연의 의도가 궁금하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제작에 임했는지.

ㄴ 이벼리 : 글을 쓰며 연출할 때 생각했던 것이 대한민국 사회에 편만해있는 시선이다. 누가 봐도 명백히 피해자로 나오고 있는 '보람'이라는 여자가 있다. 또한 분명히 가해자로 나오는 '경훈'이 있다. 그런데 극이 끝났을 때 사람들은 경훈을 옹호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훈을 옹호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의견은 각 사람들의 가치관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게 이 극의 피해자는 바뀔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 편만해있는, 기존의 남성만이 주체로 여겨졌던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이 극을 본다면 피해자는 경훈이다. 그러나 요즘 많은 교육을 통해 성차별에 대한 인식들이 개선되고 있다. '남자가 나무라면 여자는?'이라는 질문에 '여자는 나무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햇빛이나 물'이라는 답이 아니라 '여자도 나무다'라고 답할 수 있는 인식으로 개선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인식에서 본다면 이 극에서 피해자는 너무나도 분명히 보람이다.

물론 둘 다 피해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내가 연출을 맡아 염두에 뒀던 것은, 관객들의 가치관에 따라 피해자가 바뀔 수 있는 극이었고 결말 또한 바뀔 수 있다는 지점이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인물의 심리적 변화, 갈등을 최대한 보여주고 싶었다.

결국 보람은 용서한다. 자신을 성폭행했던 남자를 용서한다는 게 대부분의 관객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절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고민했다. 보람이가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을 말이다. 복수를 하면 그 순간은 후련해지지만, 복수한다 해도 내가 피해자인 사실, 그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가장 일그러진 사건 속에서 보람을 유일한 승자로 남기는 것이, 바로 보람이 용서하는 자의 위치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해자는 피해자에 대해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정말 웃기는 일이다. 극에서 보람을 통해 '네가 알지도 못하는 피해자에게 저지른 짓이 뭔지 봐라' 고 하고 싶었다. '네가 죽인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이다. 사실 경훈은 비인격적인 인물은 아니다. 보람을 성폭행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고통스러워 자살을 굉장히 많이 시도한다. 자신이 사죄하고 싶은 대상은 자신에게 그저 '실루엣'만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서 내 눈앞에서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장소가 바로 바날리자시온이다. 죄의식을 극대화시켜주는 곳이다.

경훈은 보람이 누구인지 알게 됐을 때 진심어린 사과를 하게 된다. 보람은 그 사과를 받고 용서를 한다. 사실 누군가 죄를 저지른다면,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진정한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그런 상태가 거의 없다. 벌을 받는 건 나중 일이다. 사과가 먼저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 그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여자는 그 사과를 받았기 때문에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경훈의 진정어린 사과를 받았을 때 보람의 마음이 동했다.

 

   
 

"내가 싸워서 이겼더라면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

나는 마지막 보람의 대사에 의의를 둔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서 강간으로 고통 받은 피해자들은 가해자들과 싸워 이겨서 벌을 준다 해도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들은 결국 끊임없이 감추고 숨긴다. 관객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봤을 때 이 여자가 만약 경훈과의 법정 싸움에서 승리했다면,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까?

사실 관객들을 포함한 이 사회의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올바른 것이었다면 이 여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적 두려움 때문에, 피해자를 피해자로만 만드는 구조 때문에 보람이 죽은 거다. 보람은 그걸 이겨낼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관객들의 가치관을 묻고 싶었고 그들이 깨달을 여지가 있었으면 했다.

경훈을 용서하는 보람을 보며 아이러니했다. 같은 여자로서, 보람의 결정을 동의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ㄴ 홍신정 : 여자로서 수치스럽기도 하고 분노도 일어났다. 경훈은 극중에서 살아있을 때 146번의 자살을 시도한다. 그렇다고 해서 보람의 분노가 가라앉는 것은 아닐 테다. 그러나 보람이 언제까지고 분노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지치기도 할 테고 내려놓기도 할 거다. 그렇게 진심으로 괴로워하고 사죄하는 경훈을 지켜보는 보람은 용서를 한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한 인터뷰 기사를 봤다. 성폭행 당한 피해자들의 인터뷰였다. 그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자신이 평범하게 사는 것이라고 했다. 펑펑 울었다. 용서하든, 용서하지 않든 그 사람들은 그 상처를 지울 수 없는 채로 살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절대 용서를 할 수가 없겠더라. 너무 힘들어서 연출에게 도저히 나는 경훈을 용서할 수 없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처를 받은 나는 너처럼 평범하게 살지는 못했다. 하지만 너는 딸도 있으니, 다시는 죄짓지 말고 그 용서를 빌었던 마음 그대로 살아라' 이런 의미로 용서를 하게 되더라.

'시온'의 존재의 의미가 궁금하다.

ㄴ 전준호 : 나도 항상 고민하는 질문이다. 연출님한테도 계속 여쭤봤다. 막과 막 사이에 시온이 관객들에게 외치는 방백은 극 전반을 아우르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사실 시온은 극 도중에는 존재감이 거의 없다. 그래서 나도 항상 그걸 고민한다. 공연을 하면서도 내가 왜 그들의 대화를 보고 있을까 하며 말이다(웃음).

시온은 방관자다. TV를 보는 시청자 같은 느낌. 나는 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님을 염두에 두며 연기한다. 지금까지 같이 얘기를 나누며 기다렸던 시간이 있으니 보람이 안쓰러워진다. 그러면서도 경훈을 조사하고 바라보면서 그에 대한 동정도 느끼게 된다. 둘의 사정을 다 알지만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둘의 일이니 둘이 풀어야 한다. 중재조차 할 수 없다.

ㄴ 이벼리 : 덧붙이자면, '바날리자시온'의 속편이 나올 예정이다. 뮤지컬로 제작되는 속편에서는 시온의 이야기를 다룬다. 신이 만든 바날리자시온이라는 공간에 사람이었던 시온이 어떻게 처음 들어오게 됐는지 말이다. 시온도 사실 박춘삼 같은 우리와 친근한 이름의 본명이 있다. 그러나 신이 '바날리자시온'을 지키는 파수꾼이니까 끝의 두 글자를 따서 '시온'이라 이름을 지어준다.

사실 이 친구도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계속 바텐더로 있는 거다. 이미 몇 곡은 제작돼 있고 뮤지컬을 통해 시온의 이야기를 전개시킬 예정이다. 여기서 보람을 다시 만날 수도 있다. 시리즈물로 보시면 된다. 바날리자시온이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장소다 보니, 영웅이나 동화 속 인물들도 만나게 해주는 곳이 된다.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바날리자시온의 마지막 편은 시온이 만나고 싶었던 한 여인을 만난다는 것이다.

 

 

   
 

각자의 꿈이 있다면? 본인들의 공연이 어떤 의미를 가졌으면 좋겠나?

ㄴ 이벼리 : '별지'가 원래 '별찌'라는 순 한글 단어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유성(流星)이라는 뜻이다. 한 자 한 자 짚어보자면 '별'은 하늘에 떠 있는 별, '지'는 땅을 의미한다. 즉 우리 극단은 '지상에 있는 별'이 되고 싶은 극단이다. 이 땅에 어두운 곳들을 비추는 존재가 되자는 것이다.

그래서 첫 공연을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로, 둘째는 이번 공연으로 삼았다. 숨어서 살 수밖에 없는 그들을 위한 작품. 별지의 목표는 의미 있는 일을 하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사회적으로 힘도 없는 극단이다. 그러나 별지의 도달점은 의미 있는 일을 많이 실행해, 사람들이 극단 별지를 떠올릴 때 참 '의미 있는 단체다'라고 인식해줬으면 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대한민국을 주름잡는 극단이 됐으면 좋겠다.

ㄴ 전준호 : 앞서 우리 극단의 꿈을 연출님이 말해줬으니, 나는 배우로서 개인의 꿈을 말씀드리겠다. 사실 성우를 지망한다. 극단에 들어온 것도 성우를 준비하다가 들어오게 됐다. 그동안 성우를 준비하면서 '나는 내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참 부족한 사람이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남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연기를 통해 부끄러움을 없애고 자신감을 키우길 바랐다.

느닷없이 연출님께서 나를 불러서 노래를 시키더니 대본을 줬다. 그게 '바날리자시온' 대본이었다. '바날리자시온'에서 내가 맡은 '시온'이란 역할은 거의 대사가 전부다. 행동이 별로 없다. 바에 서서 관객들을 향해 내뱉는 말이 많다. 덕분에 자신감에 대한 콤플렉스는 많이 극복할 수 있었다. 배움의 시간이었다.

ㄴ 홍신정 : '바날리자시온'을 준비하면서 '보람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 '보람이라면 이럴 것이다'라는 생각들을 통해 보람의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사실 보람도 한 '사람'이더라. 성폭행을 당했던 사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부터는 잡다한 설정들을 버렸다. 배우들은 흔히 캐릭터를 맡으면서, 캐릭터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한테 공감이 되고 싶다고들 얘기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보다 보람이라는 사람을 치유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도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내가 맡은 역할이 겪었던 감정이나 사건을 비슷하게 겪은 관객들을 치유해주는 배우 말이다.

ㄴ 박종훈 : 우리 극단에는 처음부터 배우의 꿈을 키우며 달려온 사람은 몇 없다. 하늘의 별이 무수한 것처럼, 지상의 별도 수만 가지의 별이 있다. 갖가지의 별들이 모여 만들어진 단체가 우리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연기력이 엄청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는 배우가 많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가 무대라는 곳을 쉽게 생각하고 들어온 것은 아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빛나는 재능을 여기에 쏟기 위해 들어온 거다. 우리가 무대의 의미를 쉽게 생각하고 있다고 비춰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도전한다. 나의 꿈도 끊임없이 계속 달려 나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배우로서도, 그냥 사람으로서도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다. 적어도 한 분야에서만큼은 끊임없이 가열차게 달리는 보통의 사람이 되고 싶다.

 

   
 

[글]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사진] 으랏차차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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