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다양하고도 역동적인 공연예술이 선보여지는 나라를 들라면 아마도 벨기에를 으뜸으로 손꼽아야 할 것이다.

벨기에가 이렇게 공연예술의 첨단을 걸으며 특히 현대무용에선 성지와도 다름없이 여겨지게 된 것은 물론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일은 아니다. 일찍이 현대 발레의 거장인 모리스 베자르가 1960년 브뤼셀에 '20세기 발레단'을 창단했었고, 1970년에는 무용수를 양성하는 '무드라 스쿨'을 설립하기도 했었지만, 세계 무용계에서 차지하는 벨기에의 지분은 그다지 보잘것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부터 심상치 않은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로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라는 낯설고도 긴 이름을 지닌 젊은 여성에 의해서였다. 무드라 스쿨을 거쳐 뉴욕대에서 공부하며 미국의 포스트 모던 댄스를 접했던 그는 겨우 스물두 살이었던 1982년에 안무작 'Fase'를 발표했다.

리듬과 멜로디를 점차 전환해가는 음악을 따라 구성된 이 듀엣 작품에 무용수 둘 중 하나로 직접 출연까지 했던 안느 테레사는 완전히 추상적이고도 정교한 움직임, 나란히 돌아가는 기계처럼 반복적이고, 일사불란하면서도 어딘가 어긋나는 듯한 움직임으로 환각 효과를 일으키며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고 그야말로 전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혜성과도 같았던 안느 테레사의 등장은 '현대 무용'의 존재조차 확인하기 힘들었던 벨기에에 획기적인 대전환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1980년대 말 이후 그를 위시해 얀 파브르, 빔 반데키부스, 알랑 플라텔, 시디 라르비 셰르카위 등 벨기에의 엄청난 안무가 군단이 저마다 창조적인 저력을 발휘하며 형성되기 시작한 벨기에 현대 무용의 큰 파도는 급기야 전 세계를 향해 무섭게 몰아치기에 이르렀다. 안느 테레사는 그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줄곧 그들의 선두에 서서 혁신을 이끌어왔던 인물이다.

1983년 로사스 무용단을 창단한 이래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정신으로 다양하고 반복적인 움직임의 패턴을 탐구해온 그는 견고한 구조 속에 감정과 메시지까지도 뚜렷이 담아낸 작품들로 의미와 표현의 주체로서의 몸이 지녔을 가능성을 끊임없이 확대해왔다. 이제 전설로만 전해 듣던 이 위대한 안무가의 천재성을 직접 확인해 볼 기회가 생겼다. 우리 시대의 거장으로 남을 안느 테레사의 대표적인 걸작 두 편이 드디어 오는 5월 한국의 관객들을 찾아온다.

   
▲ '로사스 댄스 로사스' 공연 장면

'로사스 댄스 로사스(Rosas danst Rosas 로사스는 로사스를 춤춘다)'는 1983년 안느 테레사를 포함한 4명의 여성 무용수들이 출연했던 작품으로, 이들 멤버들을 주축으로 하여 곧바로 로사스 무용단이 창단됐다. 특유의 여성성과 더불어 반복과 미니멀리즘이라는 안느 테레사의 초창기 안무 특징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이 작품은 총 5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무음의 정적 속에 서 있던 무용수들이 갑자기 무너지듯 온몸을 바닥에 던지고, 구르고, 부딪히는 첫 번째 섹션부터 관객의 온 집중력을 끌어당긴다.

특히 긴박한 비트 속에 머리를 쓸어내리고 다리를 교차시키며 빠르고 격렬하게 이뤄지는 의자 위의 춤으로 유명한 이 작품은 초연 후 30년이 훨씬 지난 오늘까지도 로사스 무용단 최고의 인기 레퍼토리로서 아직도 세계 전역에서 활발히 공연되고 있다.

'로사스 댄스 로사스'는 이제 막 발표된 작품이라고 해도 믿어질 만큼 그 강렬함과 현대성을 조금도 잃지 않은 놀라운 작품이다. 이를 방증해준 이가 바로 세계적인 팝스타 비욘세이기도 하다. 그는 2011년 발표된 싱글 'Countdown'의 뮤직비디오에 '로사스 댄스 로사스'의 안무와 세트, 의상을 교묘히 따라 했다가 표절이라며 거세게 비난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모던 클래식이자 로사스 무용단의 상징으로 영원히 살아남을 이 작품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1998년에 발표된 '드러밍'은 미국의 미니멀리즘 음악가인 스티브 라이히가 작곡한 동명의 곡에 붙여진 작품이다. 안느 테레사는 안무를 위해 여러 시대와 각기 다른 장르에 걸쳐 다양한 작곡가들을 포용하는 천부적인 음악 감각으로 유명한데, 그중에서도 현대 음악의 대가인 라이히와는 여러 작품을 통해 환상적인 조합을 선보였던 바 있다.

'드러밍'에선 하나로 시작된 리듬 모티프가 점차 배가되고 풍부한 텍스처로 발전되어 가면서 움직임의 프레이즈 역시도 음악처럼 시공간을 통해 다양하게 변주, 발전되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봉고와 마림바, 글로켄슈필 등 섬세하게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힘이 넘치는 퍼커션 소리에 입혀진 안느 테레사의 안무는 음악에 얽매이기 보다는 그걸 파트너로 삼아 자유롭게 춤을 펼쳐낸 느낌을 준다.

   
▲ '드러밍' 공연 장면

'드러밍'은 안느 테레사가 독보적인 탁월함을 지닌 '음악과 무용의 완벽한 결합'을 보여준다. 여기에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드리스 반 노튼의 의상은 작품에 세련미를 더해주고, 오렌지빛의 무대와 조명 속에서 잠깐의 휴지 시간도 없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며 가속화되는 리듬을 따라 다이내믹하게 움직이며 절정으로 치닫는 12명의 남녀 무용수들은 소용돌이처럼 차오르는 삶의 에너지를 관객들에게 생생하게 전해줄 것이다.

'로사스 댄스 로사스'는 5월 7일 오후 8시, '드러밍'은 5월 9일 오후 5시와 5월 10일 오후 3시에 LG아트센터에서 열린다. 각각 R석 8만 원, S석 6만 원, A석 4만 원이다. 한편 로사스 무용단의 '드러밍'은 5월 13일 오후 7시 30분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도 열린다.

문화뉴스 편집국 press@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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