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부커상 최종 후보 오른 ‘저주토끼’
‘희망 예찬자‘ 김초엽이 절망을 노래한다, ’므레모사‘
조선시대를 장악한 서슬 푸른 악귀 관찰기 ‘외눈고개 비화’

사진='므레모사', '저주토끼', '외눈고개 비화'/현대문학, 아작, 북오션 제공
사진='므레모사', '저주토끼', '외눈고개 비화'/현대문학, 아작, 북오션 제공

[문화뉴스 백승혜 인턴기자] ‘비주류’라 일컬어지던 SF 호러 장르가 국내 소설계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재난, 외계인, 악귀, 저주인형 등 듣기만 해도 머리털을 곤두세우는 소재로 마니아층을 사로잡은 국내 SF 호러 소설 3편을 소개한다. 

저주토끼

정보라

사진=아작 제공

2017년 출간 후 이렇다 할 관심을 얻지 못했던 정보라 작가의 SF 호러 소설집 ‘저주토끼’는 2022년,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며 베스트셀러 순위 역주행을 하기 시작했다.

죽은 친구를 대신해 복수를 감행하는 ‘저주토끼’, 배설물로부터 창조된 기이한 존재 ‘머리’, 인조인간과의 사랑이야기 ‘안녕, 내 사랑’ 등, 소설집 ‘저주토끼’는 환상적이면서도 오싹한 단편 8편을 수록하고 있다. 

‘저주토끼’는 모호한 결말로 인해 책장을 덮은 후에도 독자들의 의문점을 더욱 증폭시키지만, 이는 소설 말미에서 작품을 관통하는 ‘작가의 말’을 통해 완벽히 해소된다. 

"원래 세상은 쓸쓸한 곳이고 모든 존재는 혼자이며 사필귀정이나 권선징악, 복수는 경우에 따라 반드시 필요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필요한 일을 완수한 뒤에도 세상은 여전히 쓸쓸하고 인간은 여전히 외로우며 이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쓸쓸하고 외로운 방식을 통해서, 낯설고 사나운 세상에서 제각각 고군분투하는 쓸쓸하고 외로운 독자에게 위안이 되고 싶었다."

그러니 어쩐지 잔인하고도 매혹적인 서사 구조를 통해 쓸쓸한 위로를 건네받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저주토끼’를 추천하는 바이다. 현재 서점에서는 절판 상태이며, 원 창작 버전이 수록된 개정판이 오는 13일 출간 예정이다. 

므레모사

김초엽

사진=현대문학 제공

‘므레모사’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지구 끝의 온실’로 널리 알려진 김초엽 작가의 SF 호러 장편소설이다. 귀엽고 통통 튀는 표지와는 다르게, 유토피아를 둘러싼 개인의 이념적 갈등을 섬뜩하게 풀어내고 있다. 

삶의 여러 등선들을 ‘희망’과 ‘절망’, 이 두 이분법적인 극단으로만 나눌 수 있을까? 소설 ‘므레모사’의 주인공 유안은 이에 대한 의구심으로 끝내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제3의 낙원을 찾아 나서게 된다. 사고로 한 쪽 다리를 잃은 그녀에게 끝없이 ‘장애를 극복한 희망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유안은 강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고파하는 절망적인 희망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러 등장인물들과 달리 유안은, 재난으로 인해 폐허가 된 마을 ’므레모사‘를 비정상적이거나 열등하다고 취급하지 않는다. 되려 희망을 거부하고 절망을 부인하지 않는, 아득한 멈춤의 나라에 경이로움을 표하며 그곳에서 안식을 취하기를 택한다.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고 그곳을 향해 움직이는 것이 당연하다’는 메시지가 누군가에게는 폭력으로 다가갈 수 있음을 현시하는 소설 ‘므레모사’. 이를 집어 든 독자라면, 그동안 자신이 함부로 극복의 소재 내지 비극의 주인공으로 치부해버렸던 수많은 반짝 스타들을 돌이켜볼 수 있을 것이다. 

외눈고개 비화

박해로

사진=북오션 제공
사진=북오션 제공

국내 오컬트 장르의 대부, 박해로 작가의 SF 호러 연작소설 ‘외눈고개 비화’는 조선시대에 출몰한 미지의 존재들을 파헤치는 과정을 공포스럽고 생생히 묘사한다. ‘귀경잡록’이라는 조선시대 현존 예언서를 바탕으로 쓰인 작가의 시리즈 ‘화승총을 가진 사나이’, ‘전율의 환각’ 등과도 동일한 세계관을 공유한다. 

소설에 수록된 첫 번째 단편 ‘외눈고개 비화’는 40년 만에 나타난 옛 친구 김정겸이 ‘나’에게 외눈고개라는 비경에서 겪은 악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계의 생명체를 물리치려는 선인들과 악귀들을 이용해 권력을 차지하려는 악인들의 대립은, 결국 인간에게 가장 위협이 되고 해를 끼치는 존재는 미물도, 괴물도 아닌 ‘인간’이라는 서늘한 사실을 독자들에게 일깨운다.

두 번째 수록 단편 ‘우상숭배’는 부패한 관리 권윤현이 기괴한 탈바가지를 쓴 남자 천승도를 조우하는 장면으로부터 전개된다. 외계의 존재들에게 목숨이 위협받자 그들을 숭배하며 영생을 얻지만, 평생을 하릴없이 꼭두각시로 살게 된 권윤현은 스스로의 의지 없이 연명하는 삶의 무의미함을 드러낸다. 인간을 파멸시키려는 괴이한 존재들의 욕망은 책장을 덮으려던 독자를 붙잡고 이내 섬찟함으로 물들여줄 것이다. 

작가의 명성에 힘입어 ‘윌라’에 오디오북으로도 출시된 ‘외눈고개 비화’는 생동감 넘치는 성우들의 연기와 실감 나는 BGM 효과로 스산하고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한층 더 고조됐다. 바쁜 일상으로 종이책을 집어 들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면, ‘외눈고개 비화’ 오디오북을 통해 기이하고 괴상한 전통사극의 세계로 빠져들어가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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