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가족 탈피 막장 감동극 ‘고령화가족’
4대에 걸친 여성의 연대와 사랑 ‘밝은 밤’
흰바위코뿔소와 아기 펭귄의 애틋한 여정 ‘긴긴밤’

[추천도서] ‘가정의 달’ 5월맞이 가족소설... ‘밝은 밤’ 外 / 사진=문학동네 제공
[추천도서] ‘가정의 달’ 5월맞이 가족소설... ‘밝은 밤’ 外 / 사진=문학동네 제공

[문화뉴스 백승혜 기자] 5월은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가정의 달이다.

태양빛이 흠뻑 내리쬐는 여름이 다가오기 전에, 늦봄에 어울리는 따듯하고 감동적인 가족소설 3편을 소개한다.   

고령화가족

천명관

사진=문학동네 제공
사진=문학동네 제공

소설 ‘고래’로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울 수상한 작가 천명관의 두 번째 장편소설, ‘고령화가족’은 한 가정에서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벌이는 온갖 사건사고와 얽히고설킨 비밀들을 유쾌하게 풀어낸 이야기다. 2010년 출간 후 호평에 힘입어 2013년, 박해일·공효진·윤여정 주연의 영화로 재탄생했다. 

데뷔 영화가 흥행에 참패한 ‘충무로 한량’인 '나',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보상금을 사업으로 다 날린 120kg 거구의 백수 형 '오함마', 연이은 불륜으로 두 번째 남편에게 이혼을 통보받고 딸 ‘민경’과 무단침입한 여동생 '미연'까지, 이른바 ‘노답’ 삼남매는 20여 년 만에 다시 엄마 품으로 돌아와 복닥복닥 한살림을 차린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나’와 형, 여동생이 이부남매라는 사연이 드러나며 평화로웠던 다섯 식구의 일상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정상가족의 틀을 깨는, 막장드라마 같은 소설 ‘고령화가족’은 기존과는 다른 솔직한 가족의 의미를 찾아나선다. 삶의 풍파에 쓰러진 자녀들을 무심한 듯 다시 일으켜주는 엄마의 모습을 통해, 그리고 혈연으로 이어지지 않은 자신들을 거둔 부모에게 어이없으리만치 큰 감격을 받은 자식들의 모습을 통해, 절망적인 인생이라 할지라도 든든한 가족과 따듯한 집밥이 있다면 재기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전한다. 

그러니 삶의 변곡점 가운데 주저앉은 사람이라면 소설 ‘고령화가족’을 추천하는 바이다. 숨 막히는 현실 속에서도 가족애를 통해 세차게 일어난 이들의 이야기에 크게 고무될 테니 말이다.   

밝은 밤

최은영

사진=문학동네 제공
사진=문학동네 제공

국내 소설계를 이끌고 있는 대세 작가 최은영의 첫 장편소설. “엄마나 할머니, 아주 옛날에 이 땅에 살았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던 작가의 바람에 걸맞게, 소설 ‘밝은 밤’은 ‘증조모-할머니-엄마-나’로 이어지는 4대의 삶을 비추며 현재 ‘나’에게로 이어진 사랑의 기원을 따라 올라가 당시 여성들의 고달팠던 영겁의 세월들을 하나하나 되짚어간다. 

바람을 피운 남편과 이혼한 서른 두 살의 ‘나’, 지연은 서울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어릴 적 머물던 ‘희령’으로 떠난다. 실연의 상처에 허덕이던 지연은 우연히 이십 년이 넘도록 만나지 못했던 외할머니와 재회한다. 조심스럽고 따듯한 분위기 속에서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며, 지연은 놀랄 정도로 자신과 닮아 있는 증조할머니의 이야기부터 자신의 엄마의 어린 시절까지 고루 듣는다. 

‘밝은 밤’은 지연이 희령에서 새로운 삶을 이어나가는 현재 시점과 할머니에게 전해듣는 과거 시점이 교차한다. 증조할머니와 할머니, 새비아주머니와 엄마, 그리고 영옥이까지. 무수한 과거의 인연들도 제각기 상처 속에서도 서로를 버팀목 삼아 질곡의 시간들을 이겨냈음을 절감하며 지연 역시 상처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다. 충분히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에게 위로를 건네는 질긴 연대의 끈이, 실은 현재 자신에게까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외로운 내가 더 외로운 누군가의 어깨를 토닥이며 마음 속 찬란한 밝은 밤을 맞이하게 해주는 소설, ‘밝은 밤’을 추천한다. 

긴긴밤

루리

사진=문학동네 제공
사진=문학동네 제공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와 코뿔소 품에서 태어난 어린 펭귄. ‘긴긴밤’은 언뜻 보면 동화에 나올 법한 소재로 어린이 독자층을 겨냥한 도서라고 간과할 수 있지만, 실은 작지만 위대한 사랑의 연대를 뭉클하게 그려내 성인들의 마음에도 울림을 선사한 소설이다.

외톨이가 된 후 죽은 친구의 부탁으로 본 적 없는 바다를 찾아 나선 코뿔소 노든과, 그런 노든을 의지하며 악착같이 살아내는 어린 펭귄은 수없이 많은 밤들을 함께 보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른 두 존재가 ‘우리’라는 이름 아래 나아가는 여정의 끝에는 그토록 고대하던 푸른 바다가 있었다. 어린 펭귄은 두려운 마음에 노든과 함께 푸른 초원에 머물겠다고 하지만, 노든은 이렇게 답한다.

“너는 이미 훌륭한 코뿔소야. 그러니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네. 이리 와. 안아 줄게. 그리고 이야기를 해 줄게. 오늘 밤 내내 말이야. 너는 파란 지평선을 찾아서, 바다를 찾아서, 친구들을 만나고, 우리 이야기를 전해 줘.”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긴긴밤’은 ‘나’로 살아가는 숙명의 무게와 두려움, 환희를 아름답고 애틋하게 펼쳐낸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치쿠와 윔보의 희생, 그리고 한결같은 노든의 사랑 덕에 어린 펭귄이 잔존할 수 있었듯,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나를 향해 있던 모든 이의 긴긴밤을, 그 눈물과 사랑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해준다.

잠이 오지 않는 밤, 닮은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지만 따듯한 공동체를 이룬 코뿔소 노든과 어린 펭귄의 이야기 ‘긴긴밤’을 통해 ‘별이 빛나는 더러운 웅덩이’ 속에 찬란하게 빛나고 있을 스스로를 마주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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